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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베트남 수교 이끈 레득아인 前주석 98세로 별세

1992년 주석취임 3개월만에
한국과 공식수교 결단 내려

중국·프랑스 등과 외교전
美와 국교정상화 이끌어

2013년 공산당 가입 75주년 기념 꽃다발을 받은 레득아인 전 국가주석 [VNA연합뉴스] "그는 베트남 독립 신화와 개혁개방 정책을 잇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전쟁 영웅 출신으로 수차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그를 베트남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레득아인 베트남 제4대 주석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베트남 국민은 한결같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23일(현지시간) 베트남 국영통신사(VNA)에 따르면 레득아인 전 주석은 22일 오후 8시 10분께 하노이 제108 군병원에서 98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고인은 베트남 독립운동을 이끈 군인이자 정치가, 외교가, 행정가였다. 한국과도 남다른 인연을 과시했다. 그가 1992년 베트남 권력 서열 1위 주석으로 재임하던 시절, 한국과 베트남은 공식 수교를 체결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는 1920년 12월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에서 태어나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던 1938년 베트남 공산당에 가입해 독립운동 선봉에 섰다. 1945년 군에 입대해 베트남 인민군 부참모총장 등을 역임하며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주로 베트남 남부에서 활동했다.

베트남 통일 이후인 1981년 고인은 국방부 차관을 겸직하며 캄보디아에 주둔하던 베트남군 최고사령관을 맡았다. 군인으로서 업적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즈음이다. 그는 '킬링필드' 폴 포트가 지휘하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주군에 대항해 베트남군을 지휘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공을 인정받아 1987년부터 1991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어 1992년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베트남 국가주석 자리에 올랐다.

군인 출신임에도 급변하는 국제관계를 맞아 긴밀한 움직임을 과시하는 정무 감각이 뛰어났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분쟁이 잦아지며, 베트남이 친중파인 폴 포트 정권 산하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중국은 이를 마뜩잖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자칫 국경 왼쪽에는 캄보디아, 오른쪽에는 중국을 놓고 베트남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 판이었다. 국회의원 신분을 겸하고 있던 그는 악화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1978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베트남 입장을 피력했다. 그 덕에 베트남은 중국과의 분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캄보디아에서 큰 피해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외교적 역량은 국가주석에 오른 뒤에도 여전했다. 그의 결단 덕분에 베트남전쟁 당시 대규모 파병으로 피를 흘렸던 한국과 베트남이 공식 수교 세리머니를 펼칠 수 있었다. 그가 주석에 취임한 지 불과 3개월 만인 1992년 12월이었다. 지난해 베트남이 교역액 기준으로 한국의 3대 무역국 자리에 오른 데에는 레득아인 전 주석이 놓은 초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1992년 하노이에서 당시 이상옥 외무장관 예방을 받은 그는 하노이 주재 한국연락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공식 승격하는 데 동의했다.

국가주석 취임 다음해인 1993년에는 국가주석으로는 38년 만에 최초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외교 활동을 펼쳤다. 군인 시절에는 주로 야전을 뛰며 일선에서 활동했지만, 주석이 된 이후에는 개혁개방을 이끄는 선도자 역할을 자처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유연한 움직임을 보였다. 베트남 개혁개방 기조인 '도이머이' 정책을 이끌기 위해 존 케리 전 미국 상원의원,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등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노력 덕에 베트남과 전쟁을 했던 미국은 1993년 7월 베트남에 대한 신규 차관을 제공했다. 다음해인 1994년 2월에는 무역제재 해제를 발표한 데 이어 1995년 1월 연락사무소 개설 협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95년 7월 11일 미국과 베트남은 관계 정상화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역시 그가 주석 재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통 큰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그는 1996년 11월 뇌졸중이 찾아와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97년 건강을 회복했지만 주석직을 수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당 중앙위원회 고문을 지낸 뒤 은퇴했다. 90세가 넘는 고령인 탓에 위독설이 끊이질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줄곧 병석에 누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 = 홍장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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