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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소 문을 두드리며
어젯밤에 잡혀 온 사람 조반을 가져왔다고 했다"
"도망갔시오, 도망 가"
"주재소 마당에 눈발자국이 뽀드득 뽀드득 찍힌다"
"행여나 발자국 때문에
남편이 잡히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김예진(1889~1950)
병인의용대
대한일신 청년단 결사대
한도신(1895~1986)
김예진의 부인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 기록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은 늘 쫓겼습니다
아내는 일평생 마음 졸이며 남편을기다렸습니다
총칼을 들고 함께 전선에 서진 않았지만
부부는 늘 같이 있었습니다
1920년 8월 평남부청 폭파
김예진 장덕진
거사를 주도한 대한민국 광복군 결사대
수시로 변장을 하며
도주전을 벌인 김예진
어느 날 밤 불쑥 집에 찾아왔다
"밥 한술 빨리 주시오"
"순사들이 들이닥칠까 무서우니
찬밥을 얼른 드릴까 하다가"
"한겨울 한밤에 먼 길 떠나는 남편한테
따뜻한 밥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 새로 했다"
"이제 가면 또 언제나 오시렵니까?"
"눈물은 안보이고 보내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일본 경찰은 집을 급습
남편의 행방을 추궁했다
"죽일 테면 죽여라!
너희 육법전서에 아무나 죽여도 된다는 법이
있으면 죽여라!"상해로 간 김예진
병인의용대 조직
결성 두 달 만에
일본 밀정 5명 척살
1926년 3월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 투척15년 구형
나는 나카무라(경찰)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틀어쥐고 귀때기를 후려쳤다
나라 잃고 당했던
오랜 울분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한도신의 회고록> 中남편이 수감된 동안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6명의 아이들과 시부모를 책임진 한도신
모진 세월을 끝내 이겨냈다
1967년 화창한 봄날
그녀는 남편의 무덤을 찾아 갔다
"여보 나 왔시오"
"당신 부탁대로 여섯 자녀 다 기르고
이제 저의 책임을 다했시오"
"여섯 꽃송이 당신에게 바칩네다 여보"김예진 한도신 부부
그곳에선 오래오래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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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여성독립운동가 한도신 회상기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 출간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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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injok.or.kr/archives/83323한도신은 세 살 연하인 김예진과 혼인한 뒤, 독립운동에 뛰어든 남편을 도와 그 이상의 역경을 견뎌내며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다.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는 가슴과 눈물로 쓴 우리 근현대사로 기어이 승리하고야마는 ‘남자보다 더 강한 조선의 여인상’을 담고 있다. 남편의 투옥과 옥바라지, 망명, 만주 이주, 6·25전쟁과 남편의 순교 등 파란곡절의 가족사는 그 자체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웅변해준다.
남편을 일본영사관에 넘겨준 상해의 영국전차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며 회사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한 일이나, 재판정에서 남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일본 경부의 뺨을 때린 사건은 가녀리지만 강인했던 여성투사의 면모를 짐작케 해주는 일화들이다.
기록자 한도신
한도신 여사는 1895년 평남 고평에서 태어났고 1986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15년 스무 살 때 김예진과 결혼한 후,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한 평생 모진 눈보라 속에서 살았다.
1919년 2월 그믐밤 재봉틀로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에 참여한 남편을 도왔고 이를 기점으로 투옥과 수배로 이어지는 남편의 고난에 찬 삶을 활량거리는 가슴으로 함께 겪었다.
1922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안창호 선생,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등을 가까이 모시면서 항일투쟁을 도왔다. 후에 경교장에서 돌아가신 김구 선생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일평생 조국과 이웃을 위해
성자처럼 자신을 바쳐 살아온 남편 김예진이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학살당한 후, 혼자 힘으로 슬하의 2남 4녀를 훌륭하게 길러내었다. 1963년 서울시로부터 모범어머니상을 수상했다. 놀라울 만큼 총명한 기억력, 섬세한 글솜씨, 솔직한 글쓰기 자세로 지나온 삶을 1962년부터 15년 동안 꼼꼼히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