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통구이는 미국·캐나다에서 추수감사절에 즐겨 먹는 음식이다. 클립아트코리아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힌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고 수없는 낙선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전해진다.
남북전쟁을 북군의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 연방의 분열을 막고 비인간적인 노예제를 추방한 링컨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과도 같다. 인종이나 정파와 관계없이 그의 공은 널리 인정받는다. 노예해방이라는 이미지에 더해 그에게는 소탈하
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던 듯하다. 한 소녀가 편지로 보낸 조언에 따라 구레나룻을 길렀다거나 백악관 앞에서 아이들과 공놀이했다는 등의 일화가 이를 말해준다.
매년 추수감사절 전날 열린다는 ‘칠면조 사면 행사’를 처음 시작한 대통령도 바로 링컨이다. 재임 당시 그는 아들이 아끼던 칠면조를 차마 도축할 수 없어 백악관 뜰에서 키우도록 했다고
한다. 이후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칠면조 살리기를 재현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면된 칠면조는 동물원 등에서 여생을 보낸다고.
우리나라 추석과 자주 비교되는 미국·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네번째 목요일이다. 이튿날 금요일은 ‘블랙 프라이데이’로 영미권 최대의 쇼핑 대목이기도 하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20년경 아
메리카 대륙에 건너온 영국인 청교도들이 칠면조를 잡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낯선 땅에 무사히 정착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신대륙에는 영국인이 명절에 즐기던 거위 대신 칠면조가 흔했다. 그래서 통째로 구운 칠면조 요리, 칠면조고기로 맛을 낸 그레이비소스, 곁들이기 좋은 으깬 감자나 고구마 등은 오늘날 추수감사절을 상징하는 음식이 됐다.
특히 대가족이 모여도 양이 충분한 칠면조는 명절에 안성맞춤이다.
한국인에게 칠면조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실제 먹어볼 기회는 드문 음식이었다. 재미교포나 유학생을 통해 미국 식문화가 유입되고 양식이 보편화되면서 칠면조고기도 이제 낯설지만은 않은 존재가 됐다. 대형 유통매장인 ‘코스트코’에선 냉동 칠면조고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10㎏ 가까이 되는 양을 보면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미국의 풋볼 경기장이나 야구장에 가면 야구방망이만 한 고기를 파는데 이게 바로 칠면조 다리다. 국내에서 칠면조고기 요리는 일반 가정에선 쉽게 도전하기 힘들고, 수요도 적다. 우선 칠면조가 들어갈 만한 대형 오븐을 갖춘 집이 드문 데다 각종 채소 등을 다져 만든 ‘스터핑’을 속에 채워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칠면조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닭이나 오리로 미국식 명절음식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 깍둑썰기를 한 빵 조각과 양파·당근 등을 속에 넣고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통째로 익히면 된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 한 식감에 채소의 풍미가 더해져 늘 먹던 닭 요리와는 또 다른 별미가 된다. 칠면조를 많이 소비하던 미국·캐나다도 이제 대가족이 줄고 있는 만큼 닭고기 같은 다른 육류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점은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남은 칠면조고기 활용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 한국에서도 명절 후 남은 전을 찌개에 넣는 ‘재활용’ 요리가 있는 걸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 가나 비슷한 듯하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기자 admin@119sh.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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