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를 성공시켰다.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반면에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은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상하이를 떠나야 했다. 그동안 임시정부를 보호해 주던 프랑스 조계 당국은 윤 의사 의거로 인한 상황의 심각성 때문에 일제의 독립운동가 체포 인도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일제 경찰이 프랑스 조계에 투입되어 임정 요인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벌였다. 이때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다수 독립운동가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마당로 임시정부 안에 있던 문서들
바다이야기게임2 도 압수당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임시정부 사람들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 백범 선생도 급히 몸을 피해야 했다. 백범은 안공근과 엄항섭을 불러 미국인 목사 피치(George Ashmore Fitch)에게 피신처를 교섭하도록 했다. 피치 박사의 도움으로 백범은 그의 집에 몸을 숨겼다.
릴게임몰 매만가 76번지 가는 길
백범은 피치 박사의 집에서 몸을 보전할 수 있었지만, 혼자만의 안위를 위하여 가만히 숨어지낼 수만은 없었다. 도산 선생을 비롯한 일경에 붙들려간 사람들을 구명하고, 임정 피해를 최소화하기
우주전함야마토게임 위해 윤봉길 의사 의거의 주모자가 자신임을 밝혔다.
일제 군경은 백범을 붙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일제는 백범이 피치 박사의 도움 속에 그의 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피치 박사는 백범을 상하이에서 탈출시켜 자싱(嘉興, 가흥)으로 피신시켰다.
자싱의 피신처는 중국 국민당의 천궈푸(陳果夫, 진과부)와 천리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푸(陳立夫, 진립부)가 주도하는 CC단(團)에서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백범의 신변 보호를 자싱에 있는 추푸청에게 부탁했다. 1873년 자싱에서 태어난 추푸청은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1905년 쑨원과 중국동맹회 창립, 신해혁명에 적극 가담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항일운동가였다.
백범은 당시 아버지 외가 쪽 성을 따서 '장진구', '
릴게임사이트 장진'이란 가짜 이름을 사용하며, 중국 광둥 출신 사람으로 위장하여 추푸청의 양자인 첸둥셩(陳桐生, 진동생)의 별채에 머물렀다. 현재 매만가 76호이다. 이 집은 난후(南湖)로 불리는 큰 호수와 연결되어 있어서 유사시 배를 타고 피난하기에 적절했다.
일제 경찰의 수사망이 자싱까지 확대되었다. 백범은 하이옌(海鹽, 해염)에 있는 추부청 며느리 주자루이(朱佳?, 주가예) 집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별장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하이옌에서 중국 경찰에게 신분이 노출되어 자싱으로 되돌아와 지냈다.
유사시 피신할 수 있게 준비된 배.
자싱으로 돌아온 김구는 뱃사공을 하는 주아이바오(朱愛寶, 주애보)라는 중국인 여자에게 의탁하여 숨어 지냈다. 피난처의 2층 침실 바닥에는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어서 비상시에는 1층으로 내려가 주아이바오가 노를 젓는 쪽배를 타고 난후로 피신할 수 있었다.
유사시 이용할 배와 연결된 비상구.
실제로 백범 선생은 낮에는 주아이바오와 함께 배를 타고 난후로 나갔다가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의 색깔이 집 주변 상황을 알리는 표시물이었다. 붉은색이 걸려있으면 안전, 검은색 옷이 걸려있으면 위험하다는 표시였다.
자싱에서의 독립운동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 안의 백범 김구 동상
백범이 자싱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시절에 임시정부는 항저우에 청사를 마련했었다. 이 시기에 백범은 중국 측으로부터의 재정 지원을 둘러싸고 임시정부 내에서 발생한 오해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내부 갈등 속에 임시의정원과 국무위원직을 사퇴했다. 오로지 한인애국단 운영 및 장제스와 국민당의 지원 아래 군사간부 양성에 주력했다.
한편 백범은 자싱에 머무르던 1934년, 사람을 비밀리에 국내로 들여보내 어머니와 두 아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였다. 10여 년 만에 가족이 온전히 재결합한 것이다. 다음은 첸둥셩의 아들이 훗날 회고한 것이다.
"우리 어머님이 백범의 어머니를 유람시켜 드리려고 하자, '지금 우리는 나라가 망하고 집이 없는 유랑 생활을 하오. 우리 동포들은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정말로 유람 다닐 기분이 아니네. 진 부인님 마음만은 고맙게 받아들이겠네.'라고 했다.
백범 어머니 생신이 다가오자 임시정부 여인들이 생일 축하 선물로 비단을 사서 드렸다. 어머니는 노하여 '나는 생일을 쇠지 않네. 그리고 이 비단도 싫네. 지금 유랑 생활을 하는데 어찌 비단을 입을 수 있겠나. 혁명이 승리한 날에 비단을 입을 수 있다면 나는 한국 비단을 입겠네. 외국 제품은 싫네'하며 단호히 선물을 거절했다."
영화 <암살>에서 약산으로 분장한 배우 조승우가 '밀양사람 김원봉이요.'라고 자기 신분을 밝히면서 백범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항저우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자싱에서 백범이 피난살이를 할 때, 두 사람이 만났다.
해방 후 김구의 둘째 아들 김신이 자싱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는 자싱이 1930년대 백범의 피난지였으며,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이 함께 지냈던 곳임을 확인해 주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숨어지낸 매만가 76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자싱시 당국은 2000년 5월과 2005년 3월 매만가 76호를 각각 자싱시 문물보호단위와 저장성 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해 놓았다.
(왼쪽 위) 추부청의 며느리로 백범을 하이옌 자기 집안 별장으로 인도했던 주자루이(왼쪽 아래) 백범이 자싱에서 숨어지내던 시절 그의 뒷바라지를 하며 함께 지냈던 뱃사공 주아이바오(단체 사진) 임정 요인들이 자싱에 숨어지내던 시절 추부청 집안 사람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뒷줄 왼쪽 3번째부터 김의한, 이동녕, 박찬익, 김구, 엄항섭, 추푸청의 큰아들. 앞줄 왼쪽 두 번째 임정의 잔다르크로 알려진 정정화와 그의 아들 김자동. 세 번째 민필호의 어머니. 네 번째 아들 기동이, 딸 기선이를 데리고 사진을 찍은 엄항섭의 부인 연미당. 나머지 사람들은 추(저)씨 집안 중국인들이다.
현재 매만가 76호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2001년부터 독립기념관과 자싱시 문물관리소가 협력하여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전시관으로 2006년 5월 27일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김구 피난처 옆 건물은 추푸청 사료 진열실이 조성되어 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이 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자.
장용준 역사저술가·전 역사교사
장용준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