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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아 씨가 자신이 최근 펴낸 책 <스며들며 살아갑니다>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봉화 기자


장영아(41) 씨는 2016년 거제시로 이사 왔다. 고향 부산에 신혼집을 마련했지만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해 만삭이었던 영아 씨 사아다쿨 는 태어날 딸에게 아빠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남편은 거제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했다.
남편을 따라 온 낯선 도시에서 영아 씨는 삶의 변화를 겪었다. 그는 10년간 거제에 살며 마음에 남은 흔적을 기록했다. 그 글들을 모아 엮은 에세이집 <스며들며 살아갑니다>(생각비행)가 지난달 출간됐다. 영아 씨가 펴낸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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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거제시 수월동?한 카페에서 작가로 데뷔한 영아 씨를 만났다. 지역을 주제로 글을 쓴 이유를 묻자, 그는 "이방인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있었던 곳이면 당연하게 지나쳤을 것들이, 이방인의 시선에서는 낯설고 당연하지 않게 다가왔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쓸 만하지 않아도 써야만 했던' 시간으로 야마토연타 이어졌다는 것이다. 책에는 노동자 가족의 시선에서?본 노동 현실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이야기 등 거제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장영아 씨가 그림책 강사로 활동하는 모습. /장영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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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아내가 본 '조선 도시' 이야기
거제의 첫인상은 기대했던 풍경과 달랐다. 남편 직장인 조선소 근처에 집을 구하다 보니 창문을 열면 산과 바다 대신 거대한 배들과 골리앗 크레인이 보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도로를 메웠고, 거리는 회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로 출렁였다.
축구장 690개를 펼쳐놓은 크기라는 조선소 터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출입구가 네 개나 있나? 회사 안에서 길 잃겠다!"라며 놀라워 하는 영아 씨에게 남편은 "구내식당은 10개가 넘는다"라고 답했다.
영아 씨를 더 당황하게 한 것은 낯선 질문들이었다. "다온이 엄마는 건강검진 언제 받아요?"라는 질문이 정규직 여부를 떠보는 우회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게 왜 궁금하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질문 의도를 알기에 되묻지 않았다. 조선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제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경계는 유독 뚜렷했다. 남편은 조선소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처음 거제에 정을 못 붙였던 이유 중 하나가 차별이었어요. 남편이 협력업체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네에…'라며 말끝을 흐리는 반응이 찝찝했죠. 남편에게 그만두라고 말한 적도 많아요. 돈을 많이 못벌어서가 아니라, 일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전반적인 문화처럼 느껴져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개인 삶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고,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차별 문화가 사라진 건 아닌 것 같아요."
영아 씨는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했다. 남편이 일하다 손가락 사이에 철심이 박혀 수술을 했는데도 산재가 아닌 공상합의(사업주와 합의해 보상)로 처리됐을 때 그는 분노했다. "정규직이라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조선소 일은 낯설고 복잡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거제 토박이 이웃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 가족 초청 행사에 다녀온 가족들이 고된 작업 환경을 보고 나면 다시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들이 자기 일을 자세히 말하지 않는 건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지인들이 제 책을 읽고 울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대부분 남편이 조선소에서 일하니까 공감하는 부분이 컸나 봐요."




바다쓰레기를 줍는 환경 활동하는 모습. /장영아 씨


이웃에게서 전해진 온기로 버티다
3년 전, 남편은 이직 결심을 밝혔다. 딸을 키우며 거제 생활에 이제 겨우 적응하려던 영아 씨에게는 날벼락 같은 선언이었다. 남편은 조선소에 다니면서 틈틈이 꿈꾸던 일을 준비해왔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남편을 그는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은 3~4개월 일하러 떠났다가 1~2개월 집에 머무는 기관사가 됐다.
영아 씨는 졸지에 '독박육아 워킹맘'이 됐다. 애초 맞벌이를 계획했지만,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여러 단기간 일자리를 거쳐 그는 결국 다시 사서가 됐다. 책을 좋아해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현실은 달랐기에 한때는 숨이 막혀 떠났던 곳이었다. 지금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됐다. 한 중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는 "이제야 사서 일을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지칠 때마다 그를 버티게 한 건 거제에서 만난 이웃들이었다. 거제 토박이는 친한 언니를 '성'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나서 '성'이라고 부르는 언니는 늘 반찬이며 생활용품이며 이것저것을 챙겨줬다. 엘리베이터에서 서먹하게 인사하던 아랫집 이웃은 출근 시간과 딸아이 등교 시간 사이에서 허둥대던 영아 씨에게 등교를 맡아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영아 씨는 이웃들의 '선을 넘는 다정함'에 조금씩 거제에 기대기 시작했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서모임 모습. /장영아 씨


'나'를 찾아 이곳에 머물다
남편을 따라 아무 연고 없는 거제로 왔던 영아 씨는 어느새 남편도 이직했고, 거제를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002년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뒤 홀로 계신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거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이곳에 남고 싶어졌다. 그 감정이 낯설었지만, 그는 여전히 거제에 머물고 있다.
"거제 생활이 유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 번쯤 정리하고 싶어져서 글을 썼는데, 쓰면서 거제에서 받은 게 많다는 걸 느꼈어요. 나도 모르게 스며들면서 거제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글로 정리하니까 더 확 다가왔어요."
영아 씨는 공간이나 환경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차로 5~10분만 나서면 산과 바다가 있는 자연환경도 좋지만, 공동체에서 느낀 온기가 벌써 그립다고 했다. 거제를 떠나야 할지, 그럴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리움은 떠나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거제는 이미 그에게 그리운 곳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거제에서 바다 쓰레기를 줍는 환경동아리에 참여하고,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하는 등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살 때는 공동체라는 걸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거제에서는 독박육아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거제에 와서 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처음으로 스스로한테 친절하고 다정해진 사람이 됐다는 것을 느꼈어요. 나 자신에게 친절해진 삶을 잃고 싶지 않아서 지금도 거제에 살고 있어요." /정봉화 기자




그림책 강사로 활동하는 모습. /장영아 씨





환경활동에 참여한 뒤 딸과 함께. /장영아 씨 기자 admin@gamemong.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