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다. 마음을 두드리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다. 한국의 판타지 독자들에게 ‘두드림’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은 “붓이나 펜이 아닌, 키보드를 두드려 소설을 써 내기에 필자(筆者)가 아니라 타자(打者)”라 칭하는 어느 작가 손끝이 움직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 판타지 전설이 된 타자, 마산 출신의 이영도 작가가 7년 만에 새 장편 소설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을 두드려 냈다.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신작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심장에 칼이 꽂힌 상태로도 멈추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가는 한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작가 ‘어스탐 로우’는 할라도 백작 ‘눌드 레초’의
야마토릴게임 초청으로 백작의 별장인 ‘오소리 옷장’에 방문했다가 의문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한다. 칼을 맞은 어스탐 로우의 육신은 ‘죽었으나 죽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살인 사건에 대한 임사전언(다잉메시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다른 어떤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죽음을 맞이했던 공간에 앉아서, 남들의 시선이 닿을 땐 동작을 멈추고
손오공릴게임 홀로 있을 땐 손을 움직여 임사전언을 쓸 뿐이다.
소설은 이 기묘한 행각이 4년째 이어져 그가 죽은 후 쓴 원고가 아홉 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이룬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임사전언이 완결에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어스탐 로우의 유산 관리인으로 임명돼 진범을 찾아 나선 ‘더스번 칼파랑’ 경과 ‘어스탐 로우가 언데드(되살아난 시체 형
릴게임몰 체의 악한 괴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신전의 답을 가지고 온 전달자 ‘사란디테’ 양이 오소리 옷장에서 조우한다. 무적의 기사로 불리는 더스번 경과 지혜를 겸비한 늑대 인간 여인 사란디테 양은 이영도 작가의 전작들에서도 종종 나란히 등장해 모험을 펼쳤던 주인공들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임사전언이 가진 의미와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다룬다.
바다이야기게임장여기까지 소개를 들으면 이 이야기가 마냥 무겁고 어두운 추리 소설, 혹은 미스터리물이라 짐작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 속 빼곡한 이영도 작가의 유머와 전개를 뒤트는 장치들이 책장을 쉽게 넘기게 만든다. 소설 초반 더스번 경은 어스탐 로우의 길고 긴 장편 소설 집필을 두고 “시간이 없는 작가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며 “장편은 단편을 쓸 시간이 없는 작가가 쓰는 거잖소(9쪽)”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작중 인물의 대사에 불과하지만, 이 말은 이 작가가 자신의 새 장편을 7년째 기다려온 애독자들에게 건네는 장난스러운 인사로도 들린다.
이영도 작가./황금가지/
이영도 작가./황금가지/
출간 직후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장편을 쓰는 시간이 “가끔 울화가 치밀었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더스번 경의 말을 빌려 이번 장편을 쓰는 날들이 촉박한 시간 속 완벽한 원고를 위해 애쓰는 날이었는지, 지난하고도 설레는 과정이었는지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이 작가는 “게임 시작할 때 난이도를 고르는 화면에서 무조건 제일 어려움을 고르는 이가 세상엔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있어야 즐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키보드 두드릴 때도 비슷하다. 적당한 어휘나 문장을 못 떠올리는 자기 머리에 실망하거나 화를 낼 땐 우울하지만 그것까지 다 포함해서 전체적으로는 즐거웠다”고 소회를 이었다.
그는 닫혀있던 한국 판타지 문학계의 문을 두드려 대유행의 시대를 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98년 컴퓨터 통신 게시판에 연재했던 첫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는 종이책 출간 후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며 이 작가를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렸다. 또 30년째 꾸준히 자판을 두드려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그림자 자국’ 등 장편과 엽편, 단편을 오가며 탄탄한 ‘이영도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더스번 경과 사란디테 양이라는 연결고리로 세계관이 확장되고 있음을 언급하자, 이 작가는 “맛집을 많이 안다는 건 어떤 특정 음식이 끌릴 때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넓어진 세계관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을 때 고를 만한 배경이 늘어났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고 정리했다.
그가 수십 년 몸담아온 판타지 장르를 두고는 “어떤 분들은 독자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설명해야 해서 어렵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특별히 더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며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쓰며 ‘독자 여러분, 카리브해나 어부가 뭔지 아시죠?’하고 묻지 않았다. 대신 카리브해의 늙은 어부가 할 만한 상상을 보여줬을 뿐이다. 판타지 장르에서도 그런 식으로 리얼리티를 획득해야 하고, 그 어려움은 다른 장르에 비해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고 전했다.
구태여 설명을 붙이거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그저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 타자 이영도가 자신만의 원칙으로 빚어낸 또 하나의 비밀투성이 세계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으로의 초대장이 지금 도착했다.
저자 이영도, 출판 황금가지, 492쪽, 가격 2만원
장유진 기자 ureal@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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