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유선전화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감도가 깨끗하네요"
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남인천영업소에서 CDMA 세계 1호 가입자가 남긴 첫마디였다. 그리고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ICT 산업 30년 역사의 서막이 될 줄은 그 당시 아무도 몰랐다.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코드분할 다중접속)는 하나의 주파수 대역을 고유 코드로 구분해 여러 사용자가 간섭 없이 동시 통화할 수 있게 하는 2세대(2G) 이동통신 핵심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단말기 'SCH-100'을 출시하고 한국
릴게임골드몽 이동통신이 같은 해 4월 서울·수도권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한국은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1995년 6월 12일 '정보통신 전시관 행사'에서 경상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CDMA 시험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SKT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가보지 않은 길대한민국 이동통신의 기원은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카폰(차량전화)이다.?
최초의 카폰은 1946년 6월 17일에 미국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최초로 도입됐으며 1960년 한국에 입성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서비스 한 달 만에 2000여 명이 가입할 만큼
게임릴사이트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나아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휴대형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되며 1세대(1G)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문제는 기술의 장벽이다. 1990년대 들어 아날로그 방식의 한계가 드러났다. 가입자 급증으로 통화 품질이 떨어지고 용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이 불가피해진 상황.?
세계 시장은
바다이야기다운로드 TDMA(시분할 다중접속) 방식을 사실상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CDMA는 이론적으로 TDMA보다 훨씬 많은 이용자를 동시 수용할 수 있었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상용화에 성공한 적이 없는 미지의 기술이었다.
격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장고의 끝에서 한국은 TDMA 대신 전격적으로 CDMA를 택했다. 주파수 수용 용량이 더 크고, 산악
릴게임가입머니 지형이 70%인 한국에서 다중경로 간섭에 강한 CDMA가 유리하다는 기술적 판단이 작용했다.
기술 자립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정부는 CDMA 단일 표준을 선언하고 민관 합동 개발에 착수했다. 1991년 ETRI와 퀄컴이 원천기술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하면서 본격 궤도에 올랐다.
위기도 있었다. 1995년 10월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이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CDMA 단일표준을 고집할 이유가 있느냐"며 TDMA 방식 병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 장관은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CDMA 개발이 사장된다"며 강단있게 거부하고 그해 12월 경질됐다.?
CDMA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석채 장관이 1996년 1월 대통령을 독대해 CDMA 방식을 최종 확정하면서 논란이 마무리됐다. CDMA 상용화가 기술 개발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정치적 결단과 관료의 소신, 민간 기업의 투자가 결합된 결과였다.
이후로는 속도전이다. 당장 상용화 이후 전국망 구축에는 9개월이 걸렸다. 가입자는 1998년 1000만 명을 돌파했고, 1999년에는 유선전화를 추월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압도적이었다. ETRI가 2002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CDMA 산업은 1996~2001년 연평균 37.2% 성장하며 누적 생산액 42조원, 생산유발효과 125조원, 고용유발효과 142만 명을 기록했다. 부품 국산화율은 70%까지 올라갔다.
통신 인프라의 확산은 디지털 기기, 반도체, 콘텐츠 산업으로 파급됐다. GDP 내 정보통신산업 부가가치 비중은 1996년 2.2%에서 2025년 13.1%로, 규모는 17조8000억원에서 304조원으로 17배 성장했다.
IT 산업 수출은 412억 달러에서 2643억 달러로 6.4배 늘며 전체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4년에는 IEEE로부터 트랜지스터 발명, 인터넷 탄생과 같은 반열의 'IEEE 마일스톤'으로 인정받았다.
1996년 10월부터 지하철 2호선 4개 역사와 지하상가 등 전파 음영지역에 순차적으로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고객이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SKT
세대마다 열린 새로운 산업 생태계이동통신의 진화는 속도 향상에 그치지 않았다. 3세대(3G) 시대인 2000년대 초반에는 네이트, 멜론, 준(June) 등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가 탄생했다. 2006년 세계 최초 HSDPA(3.5세대) 상용화로 데이터 통신 시대가 본격 개막했고, IT 수출은 2005년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4세대(4G) LTE가 2011년 상용화되면서 모바일 인터넷 혁명이 촉발됐다. 배달 앱, 모바일 결제, OTT 서비스가 일상에 파고들었고, K팝·K드라마의 글로벌 유통도 LTE 인프라 위에서 이뤄졌다.
2019년 세계 최초 5세대(5G) 상용화는 통신의 영역을 산업 인프라로 확장시켰다. 스마트 팩토리, 원격 건설장비 제어, 무인 물류 등의 디지털 전환 기반이 마련됐고, 초저지연·대용량 특성은 클라우드 AI 서비스의 토대가 됐다.
30년 전 CDMA가 전국을 연결하는 '통신 고속도로'를 구축했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데이터와 AI를 실어 나르는 'AI 고속도로' 구축의 전환점에 서 있다. 초고속·초저지연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AI 모델이 결합된 인프라가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최초 CDMA 상용화가 ICT 도약의 출발점이었듯, AI 인프라 구축은 향후 30년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인천 영업소의 한 통 전화가 304조원 규모 ICT 산업의 시작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세계가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은 그 선택이 오늘의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를 만들어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