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김혜순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학'이며, '김혜순 시학'은 하나의 공화국이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김혜순의 시집 '당신의 첫'에 붙인 해설에서 그의 시가 한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이광호가 주목한 것은 김혜순 시학이 단지 여성 시의 전범(典範)이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창발을 거듭해왔다는 점이었다.
익숙한 문법을 비틀고 관습을 타파하며 시의 새로운 자리
릴게임한국 를 맨 앞에서 개척해온 김혜순의 문학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을까.
김혜순의 '공중의 복화술-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문학과지성사)는 이런 물음에 시인 스스로 답하는 책이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방식으로 여성성과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바다이야기게임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독일 국제문학상 등을 거머쥐며 국제적으로도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이번 책에는 시인이 2020년 가을부터 2년 남짓 문예지 '악스트'(Axt)에 연재한 산문 13편과 2022∼2025년 국내외 강연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한 산문 가운데 6편을 묶었다.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눈길을 끄는 텍스트는 2023년 베를린 시 축제에서 김혜순이 진행한 기조연설인 'Tongueless Mother Tongue'(혀 없는 모국어)이다.
유신 체제 말기의 검열과 폭력의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김혜순의 시론이 압축된 글로, 독일 비평가 베아테 트뢰거는 이를 두고 "현대문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학 텍스트 가운데
릴게임사이트 하나에 속한다"고 상찬했다.
공중의 복화술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글에서 시인은 암울했던 1970년대 말 긴급조치 9호 치하에서 겪은 내밀한 기억을 떠올린다.
당시 모든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원고는 군의 검열을 거쳐야 했고, 시청에 상주한 군인에게 원고를 제출하고 받아 가는 게 출판사 말단 편집사원이었던 김혜순의 일이었다.
검열을 마친 원고는 출판할 수 없는 글자나 페이지 곳곳에 검은 콜타르가 칠해진 채 돌아왔다. 숯덩이처럼 까맣게 변한 원고를 마주한 경험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회고한다.
"말을 빼앗기는 경험은 내 죽음에 앞서 혀가 먼저 죽는 경험이었다. 혀에서부터 온몸으로 죽음이 퍼지는 경험이었다."
공포에 질려 속으로 말을 삼켜야만 했던 시절, 입이 있어도 말할 권리는 제한된 현실. 상처 입고 절단된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 비명, 기침, 딸꾹질, 신음 같은 것들에 시인은 귀를 기울인다.
"죽임을 다한 혀가 잃어버린 것들을 향해 가는 길목에, 혹은 혀가 추방되어 쫓겨나는 그 가장자리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시인은 이 목소리를 들을 때만 시인이다."
부조리에 대한 인식은 역사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김혜순은 남성 중심적 문법을 해체하고, 억눌린 여성의 몸과 목소리를 기괴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포효하듯 드러내며 전위적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김혜순 시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보잘것없는 무색무취무명의 말단 편집사원"이었던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긴 사건도 털어놓는다.
"그 시절 한 형사는 나를 경찰서로 부른 다음 나의 출판사가 출간한 책의 번역자의 주소를 대라고 내 뺨을 일곱 대 때렸다."
그 일을 겪고 시인의 목구멍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인은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일곱 편의 시를 썼다. 그중 여섯 편은 시집 '어느 별의 지옥'에 실렸다. 이 일화는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김은숙이란 인물의 이야기로 그려지기도 했다.
시인의 가장 내밀한 고백이 암울했던 시대의 탁본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고백할 수 없는 고백'이란 글에서 작가의 윤리도 말한다.
그는 고백적 글쓰기가 자칫 자기 정당화와 나르시시즘으로 기울 수 있단 점을 경계하며 '대신 말하기'가 아닌 '다시 쓰기'를 강조한다.
시인은 "고백적 진술은 글 쓰는 자의 정당성과 상처를 증명하려는 도구가 되기 쉽다"며 "그리하여 펜을 가진 자, 끝없이 사건 속에서 다치고 죽은 자를 위해 대신 말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서 거듭 자신을 돌려세워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21년 퇴직 후 명예교수로 있는 그는 문학적 글쓰기를 꿈꾸는 학생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글을 시작하고 싶으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학생들에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며 누구나 자신 안에 싱싱한 새로움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문학의 새로움이란 곧 글 쓰는 자신이라는 말을. 인간 각자가 경험하고, 품고 있는 감정과 생각, 그 모든 것이 신선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올해로 시력(詩歷) 47년. 여전히 가장 새로운 시를 써 내려가는 김혜순 문학의 시작점, 글쓰기의 원천을 가장 시적인 언어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김혜순 읽기'를 위한 정밀한 해설서이자 '김혜순 시학'이란 공화국에 대한 안내도라 할만하다.
330쪽.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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