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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랑라래 (25-08-2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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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설산처럼 하얀 머리를 지닌, 그 거대한 산처럼 불가해하고 무자비한 존재였다. 그 눈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깊이가 깃들어 있었고, 등에는 폭풍과 싸운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허먼 멜빌은 소설 ‘모비 딕’에서 여러 차례 포경선을 격침시키며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된 거대한 흰 고래를 이렇게 묘사했다. 작품 속 모비 딕은 단순한 거대 고래가 아니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모비 딕의 모티브가 된 향유고래(sperm whale, Physeter macrocephalus)는 성체 무게가 20톤을 훌쩍 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이빨 노숙 고래다. ‘향유(香油)’라는 이름은 ‘향이 나는 기름’을 뜻하며, 영어 이름의 ‘sperm’은 정자(精子)를 의미한다. 17세기 포경 선원들은 향유고래 머리에서 발견된 반고체 흰 기름 덩어리를 고래의 정액이라 오해해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 기름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적고 오래 타 18~19세기 무렵 향유는 고급 양초의 재료로 각광받 비영리법인 았다. 실제로 이 기름 덩어리의 정체는 온도에 따라 상태가 변하는 지방산 에스테르로, 고래가 잠수하거나 소리를 낼 때 부력을 조절하거나 음향을 제어하는 기능을 한다. 향유고래 머리의 약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경랍기관(spermaceti)은 음파를 증폭하거나 방향과 부력을 조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기관을 가득 채운 기름의 온도를 낮춰 밀도를 높이 sc저축은행 햇살론 면 단단해지고, 온도를 올리면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심해로 하강하거나 수면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런 능력 덕분에 향유고래는 최대 2250미터 이상 잠수할 수 있으며, 몸길이가 8미터 이상 나가는 거대한 대왕오징어(Giant squid)를 취식하기 위한 사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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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고래는 대왕오징어를 잡기 위해 400m까지 내려간다. 이 깊이의 수압은 피아노를 새끼손톱 위에 내려놓는 것과 비슷하다. 발랑틴 플레시 일러스트레이션. 해나무 ‘바다의 천재들’ 제공
대왕오징어 역시 호락호락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10개의 다리에 달린 빨판으로 저항하기 때 남양주별내지구공공임대 문에 향유고래 몸에는 ‘폭풍과 싸운 흔적’이 새겨진다. 또한 동물계에서 가장 큰 눈에 속하는 지름 27센티미터 크기의 커다란 눈으로 미약한 빛 변화도 감지하기 때문에 120미터 밖에서 접근하는 향유고래 물살의 음영을 알아챈다. 하지만 향유고래의 머리에서 발생되는 음향은 미세한 먹이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어서 빛에 의존하는 대왕오징어를 압도한다. 이는 마치 박쥐가 어둠 속에서 비행을 할 때 음파를 내고 그 반향을 분석해 위치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전문 용어로는 ‘반향정위(反響定位)’라 한다. 반사되는 울림으로 위치를 정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에코로케이션(echolocation)’이라 부른다.
향유고래의 반향정위 능력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예전부터 향유고래가 반향정위를 이용할 것이라는 추측은 많았지만, 2002년 덴마크 페테르 마센(Peter Madsen) 연구팀은 노르웨이 북쪽 바다에 설치한 수중 음향 녹음장치를 분석해 수컷 향유고래가 0.5~1.5초 지속되는 ‘딸깍음(click)’을 내며 이는 고래 정면에서 5~10도를 벗어나지 않는 고도로 정렬된 탐색 빔처럼 발사됨을 확인했다. 또한 최대 236데시벨(dB)에 달하는 이 신호는 동물이 낸 소리 중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됐다.
딸깍음이 정말 먹이를 사냥하는 데 도움이 될까? 2004년 영국 패트릭 밀러(Patrick Miller) 연구팀은 지중해 리구리아해 및 멕시코만에 서식하는 23마리 향유고래에 흡착식 디지털 태그를 부착해 움직임과 소리를 정밀 기록했다. 그 결과 향유고래는 사냥 시 0.02~0.2초 간격의 딸깍음을 냈으며, 이 과정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딸깍음의 빈도가 높을수록 먹이 사냥 시간이 길어졌고, 이는 해당 소리가 먹이 위치를 찾는 정밀 탐색 신호일 뿐만 아니라 주변 개체와의 의사소통에도 쓰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향유고래의 ‘딸깍음’은 고도로 정렬된 탐색 빔이다. 이 딸깍음은 3~10개가 한 묶음을 이뤄 지역마다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위키커먼스
실제로 향유고래의 짧고 규칙적인 딸깍음은 일정한 간격과 리듬으로 배열돼 짧은 시퀀스를 이뤘는데, 보통 3~10개의 딸깍음이 한 묶음을 이루며 마치 인간의 사투리처럼 지역마다 방언을 가진 것으로 보고됐다. 따라서 이는 무리 내에서 서로를 식별하며,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협동하는 의사소통 신호일 것이라 추정된다.
바다의 심연에서 울리는 향유고래의 딸깍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어둠을 가르는 탐색 빔이자, 동료를 부르는 통신 신호이며, 거대한 몸집을 유지할 수 있는 사냥 수단이다. 과거 인간의 귀에는 그저 정자로 가득 찬 머리에서 나오는 미묘한 ‘클릭’ 소리로 들렸으나 과학을 통해 비로소 정밀한 반향정위와 의사소통 기능이 있음을 조금 알게 됐다. 하지만 그 거대한 머리에서 울리는 딸깍음은 여전히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심연의 영역이다. 구체적으로 딸깍음이 거리를 조절하는 것인지, 아니면 먹이 반응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지 불확실하다. 또한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의 사냥 장면은 직접 관찰된 적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추론에 의존하고 있으며, 다른 개체들과 무리 사냥을 하는지에 대한 여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모비 딕은 지금도 설산처럼 하얀 이마로 깊은 바다를 가르며 우리의 상상 너머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원영의 아주 극한의 세계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줄기러기를 아시나요? 영하 272도에서도 죽지 않는 곰벌레는요? 인간은 살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은데요.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구 끝에서 살아가는 경이로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이원영의 아주 극한의 세계(https://www.hani.co.kr/arti/SERIES/3304?h=s)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물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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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동물행동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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