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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 주유하는 모습. ⓒ 연합뉴스[데일리안 = 조인영 기자] 횡재세(Windfall Profit Tax). 얼핏 들으면 로또라도 맞은 이한테 ‘불로소득으로 횡재했으니 세금 좀 내라’는 얘기 같다. 이 얘기가 뜬금없이 정유사를 향하고 있다. 그것도 실제 벌어들인 돈도 아닌 장부상의 이익을 놓고 말이다.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정유업계는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다"고 불을 붙인 고통 분담 요구는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 의장이 "정유사들이 기금으로 내든지 아니면 마진을 줄이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거들며 증폭된 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정유사들이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동조하며 정점을 찍었다.이런식의 압박은 가파른 기름값 상승에 따른 민심이반을 두려워하는 정치권의 조급함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유류세를 20% 내렸지만 여의치 않자 인하폭을 30%로 확대했고 최근에는 최대 한도인 37%까지 조정했다.그래도 기름값이 꺾이지 않자 국회를 중심으로 유류세 탄력세율 범위를 37%에서 50%까지 확대하는 방안 논의를 시작했다. 이렇게 국회와 정부가 조 단위 세수를 포기하면서까지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으니 기름으로 돈 많이 번 정유사도 가만히 있지 말고 기금을 내던 지, 기부를 하던 지 하라는 으름장으로 해석된다.말이 협조 요청이지 강제나 다름없는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은 국내 정유사에 대한 대단히 잘못된 시각에서 기인한다.사실 횡재세는 우리나라에서만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다. 영국, 미국 등에서도 석유 및 가스 회사들의 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많이 번다는 이유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기업은 국내 정유사들과 이익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쉘, 엑슨모빌, BP 등은 자체 유전에서 원유 생산과 원유 정제를 병행하고 있다. 상·하류 부문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원유값이 뛰면 벌어들이는 이익 규모가 껑충 뛰는 구조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직접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틱한 이익 구조를 기대하기도, 만들기도 어렵다.횡재세에 대한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는 점도 우리나라와 다른 부분이다. 영국 횡재세는 공급이 부족한 원유나 가스 공급에 에너지 기업이 투자를 하면 세금 90%를 경감해주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석유·가스 요금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세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도 강조한다.횡재세를 왜 걷는 지, 초과 기준은 무엇인지, 이 초과이윤이 정유업계 생태계를 위해 쓰이는 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없이 무작정 세금 타령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정유사들 더욱이 매년 흑자만 거둔 것도 아니다. 2020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로 원유값이 폭락하고 수요가 급감한 정유사들은 5조원대의 영업적자를 거뒀다. 이 손실을 보전하는 데만 1년 가까이 소요됐다. 직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그렇다고 해서 앓는 소리는 없었다. 당연했다. 이익 증가와 감소에 따른 회사 사정은 오롯이 민간기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간의 고통을 감내하고 어깨 좀 펴자니 고통 분담을 하라며 야박하게도 청구서를 들이미는 것이다.'어깨를 폈다'는 표현도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정유사들의 올해 실적은 회계장부상 '착시효과'가 절반에 달하기 때문이다.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벌어들인 영업이익 중 40%는 재고평가이익이 깔려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 등 지정학적 이슈로 인한 재고자산 평가이익(원유 구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 차이를 통해 갖는 이익)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다.재고평가이익은 회계장부상 결과일 뿐, 실제 현금 흐름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정유사들이 나홀로 배 부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으니 정유업계가 당연히 난색을 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정유업계가 정치권의 요구에 등 떠밀려 기금이건, 마진 축소건 횡재세를 만들어낸다 해도 뒤탈이 있을 수 있다. 정유사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액수가 나오게 되면 주주들이 경영진을 대상으로 배임을 걸고 넘어질 수 있다. 주주 이익을 저해하고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다. 실제 횡재세라는 언급이 나온 이후 정유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심상치 않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이미 각종 환경 보전 명목으로 각종 세금을 떠안고 있는 정유사들은 이제는 '횡재세'라는 상상하지도 못한 세폭탄을 맞을 위기에 있다. 가뜩이나 탄소중립 시대에 홀대를 받는 상황에서 속앓이가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세금을 쥐락펴락하는 동안 정유업계는 묵묵히 손실을 감당해왔다. 이들에게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을 이유로, 국민 경제를 위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당하라는 처사는 지나치다.기름값 상승이라는 단면만 보고 정유업계가 배만 불리고 있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판단은 거둬야 한다.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이라면 기업들의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이 나오지 않도록 건전하고도 적절한 정책을 모색해야만 한다. 새 정부가 강조한 '기업활력 제고' 약속이 처음부터 퇴색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