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유산 보호운동의 시작
유네스코는 2023년 9월 17일 오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말이산고분군이 세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 '역사적 순간'의 밑바탕에는 수십 년 동안 말이산고분군을 비롯해 함안지역 문화유산을 꿋꿋이 지켜온 지역 시민단체의 노력이 깔렸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가 지역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함안군민들과 연대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길을 4회에 걸쳐 조명하고자 한다.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1994년 11월 6일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가 함안군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말이산고분 답사 설명회 모습.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정현규 선생, 뜻있는 주민 설득아라가야 공부하는 연구회 조직1994년 7월 함안 아라초교서지역주민 15명 모여 창립
바다이야기 총회강좌 학습토론회 답사회 열고지역사 바로 알고 지키기 운동 시작
1994년 7월 7일 함안군 가야읍 아라초등학교 한 교실에서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이하 연구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창립총회에는 15명이 참석했다. 정현규(독립운동가), 이규석(함안종합고 교장), 박석도(아라초등학교 교장), 조용희(중앙감리교 장로), 김영일(함안군청 근
야마토무료게임 무), 조희영(삼남공무사 대표), 배종대(함안여자상업고 교사), 이순일(신반중 교사), 이정환(시인과농부 서점 대표), 김수정(함안군농촌지도소 근무), 이주헌(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근무), 구영모(가야치과 원장), 조재영(대학생) 등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현규 씨가 회장을, 조희영 씨가 부회장을, 김영일·배종대 씨가 감사를, 김수정 씨가 총
야마토무료게임 무를 맡기로 했다. 연구회 앞에 놓인 길이 험난했기에 '뽑혔다'는 표현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로 했다는 의미에서 '맡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연구회가 창립하게 된 것은 고 정현규(1924~1995) 선생이 시발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현규 선생이 지역에서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연구회를 결성해 활동해보자고 설득한 것이 시작
릴게임손오공 이었다. 정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에 보면 그에 관한 설명이 있다.
1924년 2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도항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다이치 2정목에 거주하며 쇼와정기공업소에서 철공으로 일하였다. 그러면서 1943년 4월 마에즈실업학교 야간 1학년으로 입학하였다. 일찍이 "조선 청년 대부분은 겉으로 내선과 협화를 표방해도 마음속으로 독립을 희망한다. 일제의 식민 통치는 착취와 억압뿐이며 이대로 식민 통치가 유지되면 한민족은 멸망한다"고 여기고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나고야의 한인 청년을 대상으로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전쟁 중 일본의 국력이 약해지고 공습을 받아 혼란할 때를 이용하여 조선 민중이 봉기해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한인은 민족적 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독립의 주체는 조선 청년이다" 등의 주장을 전하며,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다 1943년 8월 3일 붙잡혔다. 1944년 7월 11일 나고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정현규 선생은 일본 곳곳에 남은 아라가야의 흔적을 함안 사람들에게 알라고자 애를 썼고, 우리 역사는 우리 손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선생은 일본 천황가의 발상지가 아라가야였다고 주장해 경향신문 등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 천황가의 뿌리가 아라가야였다는 정현규 선생의 주장을 보도한 1991년 6월 4일자 경향신문. /함안군
함안군 가야읍 사거리에는 '시인과농부' 서점이 있었다. 함안지역 시민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정 선생은 이 책방 주인 이정환을 비롯해 배종대, 이순일, 김수정 등 이곳을 자주 드나들던 이들을 설득해 연구회를 창립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성한 연구회는 틈틈이 현장 답사와 학습 토론을 하기로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1994년 7월 29일 첫 학습토론회를 열었다. 정현규 선생이 '포상8국 3년 전쟁'을 주제로 발표하며, 회원들에게 '아라가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습토론회에 이어 현장답사가 이어졌다. 8월7일 조선시대 '함주지'에 기록된 아라가야 왕궁지 유적을 조사했다. 회원들은 언덕과 물길, 마을의 경계 등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과거 기록과 비교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회원들은 그다음 주에도 같은 장소를 답사했다. 섣부르게 단정하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보고자 함이었다. 8월 28일에는 왕궁지 주변과 삼봉산 일대, 봉산산성을 찾아가 조사했다. 회원들은 산 능선을 오르내리며 왕궁과 산성의 관계를 추정하고, 특정 지점에 매몰되지 않고 지형과 방향에 따라 당시 도시가 어떻게 분포했을지 가늠해고보자 노력했다.
학습토론회는 당시 곽준석 신부의 배려로 함안성당 베데스다 회의실에서 주로 진행됐다. 거점이 마련되면서 회원들의 발걸음이 잦아졌고 학습·회의 자료가 차곡차곡 쌓였다. 회원들은 연구회가 행정적 권한을 가진 조직이 아닌 순수 민간단체였기에 문화유산을 보전하려면 '자료와 논리'로 싸워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며 학습토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8월 31일 2차 학습토론회 때는 이주헌 창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함안지역 고고학적 현황과 발굴 개요와 성과'를 강의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함안 일대에서 발굴한 고고학적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었다. 정현규 선생은 '일본 신사 및 지명에 나타나는 아라가야의 흔적'을 강의했다. 이를 통해 바다 건너 일본에도 아라가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등 회원들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연구회의 활동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홍용식, 박종오, 김창렬, 이덕규, 구순근, 한현상, 변종완 씨가 신입회원으로 합류했다.
아라아가야향토사연구회 학습토론회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 권위자인 일본 시가현립대 다나카 토시아키 교수가 특강을 하고 있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연구회는 이후로도 학습토론회를 수요강좌 형식으로 꾸준히 열었다. 1994년 9월 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수요강좌는 함안종합고 교사였던 홍용식 씨가 이끌었다. 홍 씨는 지구의 기원부터 가야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국까지 역사를 강의해 아라가야의 역사적 위치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이듬해 4월 13일 학습토론회에서는 이주헌 학예연구원이 '삼국시대 토기와 함안지역 출토토기의 특징'을 강의해, 이후 연구회의 학습이 문헌과 고고학, 공간 구조 분석을 결합한 방식이 되도록 길라잡이 노릇을 했다.
1995년 11월 9일에는 가야사와 한국 고대사 연구 권위자로 알려진 일본 시가현립대 인간문화학부 다나카 토시아키 교수를 초청해 '고구려 산성'을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회원들은 이 강의를 통해 산성이 단순 방어시설이 아니라 정치·안보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또 이후 함안 지역 산성을 조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1999년 7월 22일부터 6개월 동안 이균은 박사가 중국 25사와 위서 동이전 등을 강의했다. 이 박사는 재일교포 사학자이자 고고학 연구가로, 한일 고대 관계사와 가야사 전문가였다.
연구회 회원들은 비록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지역 역사를 바로 알고 지키자는 일념으로 실력을 쌓아갔다.
그러는 사이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의 씨를 심었던 정현규 선생이 겨우 새싹이 되어 자라기 시작한 연구회를 남겨 둔 채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1995년 1월 21일 별세했다.
/조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