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알라딘.
책을 당장 읽기 위해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러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동안 책장에 머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떤 책들은 결국 특정한 시점에 다시 꺼내 읽게 된다. 내게 마크 피셔가 쓴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저 뒤늦게 읽은 책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비로소 필요해진 텍스트였다.
왜 '자본주의 리얼리즘'인가?
피셔가 말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특정한 정치 이념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이 세
바다이야기합법 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무엇을 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지를 규정하는 인식의 틀에 가깝다. 여기서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특정한 사회 질서를 유일한 현실로 경험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리킨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피셔는 널리 알려진 문장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오히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야마토무료게임 것이 더 쉽다." 이 표현은 현대 사회의 정치적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가 되었다. 많은 사람은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심화하고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사회 체제를 떠올리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자본주의는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동시에 대체 불가능한 현실로
릴게임 받아들여지는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나에게 피셔의 설명은 자본주의가 마치 하나의 '자연종(natural kind)'처럼 이해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읽혔다. 자연종은 인간의 지각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며 다른 방식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예를 들어 금은 인간과는 무관하게 분명히 존재한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본래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정치?경제적 체계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치 자연적 질서처럼 경험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적 구성물이 존재론적 필연성으로 오인되는 상태를 드러낸다. 물론 이런 해석은 사회?정치적 차원의 논의를 존재론적 문제로 확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신중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할 필요가 있다.
피셔는 이 상황이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적 설득의 결과라고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의 다양한 제도와 문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고 본다. 여러 영역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현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치들이 작동하며, 이런 장치들은 자본주의적 질서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피셔는 소설, 영화, 음악, 노동, 교육, 행정 등 다양한 영역을 언급하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일상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접근 방식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작동 방식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작동 방식: 정신건강과 새로운 관료주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두 영역은 정신건강 문제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관료주의이다. 이 두 영역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개인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내면화되고, 사회 속에서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자.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 불안, 주의력 결핍 장애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는 매우 만연해 있으며 널리 논의되고 있다. 피셔에 따르면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지속적인 경쟁과 성과 압박 그리고 불안정한 노동 환경을 특징으로 한다.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며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이와 같은 환경은 개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가하고, 그 결과는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증상들은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이나 생물학적 요인으로 설명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설명 방식은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문제를 개인의 병리로 환원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질환이라기보다 사회적 고통이 개인의 내부 문제로 번역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피셔에게 이런 내면화 과정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핵심적인 작동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피셔는 특히 영국 학생들 사이에 퍼져있는 반성적 무기력 상태, 즉 사태가 나쁜 걸 알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하는 상태를 진단해 내고, 이런 상태가 '우울증적 쾌락'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우울증처럼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기보다 오히려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즉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실제로 피셔가 관찰한 학생들은 무기력과 냉소 속에 머물면서도 끊임없는 자극과 오락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단순한 개인적 병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정동적 상태로 이해된다.
정신건강 문제는 교육 제도의 성격 변화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피셔는 학교가 더 이상 푸코가 말한 '규율'과 '훈육'의 공간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대신 오늘날의 교육 환경은 들뢰즈가 말한 '통제사회'의 양상을 띠며, 학생들은 규율에 따라 억압되기보다는 끊임없는 선택과 소비 그리고 자기관리의 요구 속에서 통제된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소비 주체로 호명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평가와 자기관리의 압력 속에 놓이게 된다. 이런 이중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정동이 바로 우울증적 쾌락이며, 이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개인의 내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피셔가 분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관료주의이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시장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국가의 관료적 통제를 축소하는 체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피셔는 실제 현실이 이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가 제시한 '시장 스탈린주의'라는 기발한 조어는 시장 논리와 관료적 관리가 결합한 새로운 통치 방식을 드러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오히려 다양한 평가와 관리 체계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동 현장, 교육 기관 혹은 공공기관에서는 성과 지표, 평가 시스템, 감사 절차 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체계는 조직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직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규율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료주의적 통제를 만들어낸다. 특히 교육 기관에서는 성과 평가와 행정 보고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교육의 실제 내용이나 교육적 관계보다 평가 지표와 보고 절차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촘촘한 관리 체계는 효율성을 위한 도구로 제시되지만, 동시에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유지하는 통치 기술로 기능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신건강 문제와 새로운 관료주의는 각각 개인의 경험과 사회 제도의 차원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전자는 사회적 고통이 개인의 문제로 전환되는 과정을, 후자는 제도적 장치가 특정한 현실 인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이 두 차원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구조가 개인과 제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의학과 의학교육의 맥락에서 본 자본주의 리얼리즘
이 책은 문화비평의 맥락에서 쓰인 작업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의학과 의학교육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피셔의 분석은 현대 의학이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검토하게 만든다.
현대 의학은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나 뇌 기능의 이상과 같은 생물학적 기제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접근은 정신질환을 객관적인 질병으로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제로 약물 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생의학적 개입은 많은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는 사회적 맥락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 경쟁적인 교육 환경,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 구조, 지속적인 성과 평가와 같은 조건은 개인의 정신적 부담을 구조적으로 증폭시키지만, 이런 구조는 질병의 원인으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고통은 개인의 생물학적 문제로 재구성되며, 치료의 대상 역시 개인의 뇌와 신경계로 한정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회 문제의 의료화는 이런 경향을 증폭시킨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고통과 불편이 점점 더 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으며, 특히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 과정에서 약물 치료는 가장 표준적이고 유용한 개입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정신질환에 대한 대응은 점차 약물 중심으로 조직되는 경향을 보인다. 약물화의 확대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지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생물학적 상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피셔의 논의는 정신질환을 둘러싼 현재의 의료적 접근이 단순히 과학적 진보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그것은 특정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개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즉,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생물학적 환원과 약물 중심의 치료는 단순한 의학적 선택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현실 속에서 고통을 처리하는 하나의 제도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피셔가 말하는 새로운 관료주의의 문제는 의학교육의 제도적 환경에서도 분명하게 관찰된다. 현재 한국의 의과대학 교육은 평가인증 체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기준과 지표가 마련되어 있다. 각 대학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런 제도는 일정한 수준의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표준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평가인증 중심의 운영 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행정적 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교육 활동은 점점 더 다양한 문서와 지표, 보고서의 형태로 기록되고 관리되며, 교수와 교육 담당자들은 실제 교육 활동 못지않게 많은 자료를 생산하고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입하게 된다. 그에 따라 교육은 점차 수행되는 활동이라기보다 관리되고 보고되는 대상으로 재구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변화는 교육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지표는 측정할 수 있고 표준화한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실제 교육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관계적·맥락적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주변화할 위험이 있다. 그 결과 교육의 실제 내용이나 학습 과정의 질보다 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되는 상황이 나타나며, 이는 교육의 형식화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새로운 관료주의는 전통적으로 임상 현장에서 이루어져 온 도제식 의학교육과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임상 교육은 환자와의 상호작용,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 그리고 실제 진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 학습에 크게 의존해 왔다. 임상 교육은 본질적으로 표준화하거나 정량화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으며, 그 가치 역시 단순한 지표로 환원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가인증 체계가 강화될수록 비가시적이고 관계적인 요소들은 점점 더 평가의 외부로 밀려나면서 임상 교육의 중요한 장점들이 약화하고 있다.
결국 의학교육의 평가인증 체계는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 동시에, 교육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피셔가 말하는 새로운 관료주의가 단순한 행정적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하나의 통치 기술이라는 점과 맞닿아 있다. 의학교육의 제도적 환경 역시 이러한 통치 방식의 영향 아래에서 재구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넘어설 가능성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른 가능성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는 특정 체제 안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공유되며, 비판 역시 그 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순은 체제 자체가 아니라 그 운영 방식의 효율성이나 관리의 문제로 축소된다.
이런 비판은 비평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조직하는 방식과 직결된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는 방식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그 결과 다른 사회적 가능성을 사유하는 일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출간 당시의 특정한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2008년 이후에도 자본주의적 경쟁과 불안정 그리고 개인화의 논리는 완화되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이 강화됐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일시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인식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넘어서는 첫 단계는 그것이 현실을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있다. 현실을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인식의 틀, 바로 그 지점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피셔의 논의는 단순한 거리두기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 인식의 조건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런 관점은 의학과 의학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특정한 의료 관행이나 교육 제도 자체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왜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묻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개별 제도의 적절성 여부를 넘어 그러한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틀에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는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구체적인 대안이나 완결된 정치적 프로그램의 형태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셔는 자본주의의 리비도적 순환과 욕망의 구조로부터 단순히 물러나거나 이탈하는 방식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일상의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강조하는 데 머문다. 이 점은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또한 2008년에 처음 발간된 이 책의 논의가 이제는 다소 익숙하고 반복된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익숙함 자체가 여전히 동일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피셔의 통찰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존 질서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역시 그런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황임경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박사. 의철학, 의료인문학, 서사의학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 《팬데믹, 모빌리티, 테크놀로지》(공저), 《Body Talk in the Medical Humanities: Whose Language?》(공저),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2》(공저), 《의학의 전환과 근대병원의 탄생》(공저), 《내러티브 연구의 현황과 전망》(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