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에릭 루가 24일 서울 강남구 L7 강남 바이 롯데에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최고 수준의 음악계에서 경력을 쌓는 길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특히 젊은 아시아계 피아니스트들은 기회는 더 적고 경쟁은 가장 치열하다."
지난달 대만·중국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에릭 루(27)가 제19회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이뤄낸 '재수 끝 우승'은 개인의 집념을 넘어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의 구조적 현실을 드러낸 장면이다. 조성진이 우승한 2015년 대회에서 4위에 올라 이미 명성을 얻은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그가 다시 극도의 압박을 감수하며 10년 만에 경연장으로 돌아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루는 "(음악가로서) 내 경력은 좋았지만 꿈꾸던 만큼은 아니었다"며 "내게는 더 큰 야망이 있었고 미래를 위한 더 안정적인 기반을 원했다"고 말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 KBS교향악단과의 협연과 리사이틀을 위해 황금성사이트 내한한 루는 무척 지쳐 보였다. 대회 우승으로 폴란드,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미국 등에서 이미 18회 공연을 마친 그는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 공연은 26일 쇼팽 콩쿠르 5위 입상자 빈센트 옹과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사이틀을 남겨 두고 있다. 그는 우승 후 변화에 대해 "연주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커졌다"며 "콩쿠르의 기억이 워낙 골드몽 강렬해 어떤 것도 바꾸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하려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루는 2018년 리즈 콩쿠르 우승자 자격으로 예선 없이 이번 대회 본선에 직행했다. 그는 "리즈 콩쿠르 우승은 좋은 경력이지만 쇼팽 콩쿠르처럼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건 아니다"라며 "지난 20년간 리즈 우승자들 중 세계 최정상 콘서트 연주자가 된 사례는 김선욱(2 릴게임종류 006년 우승)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되고 싶은,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 협연 기회를 얻는 35세 이하 연주자는 손에 꼽는다"며 "쇼팽 콩쿠르는 경력을 급상승시켜 줄 유일한 경연이어서 이번이 내 운명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도전은 분명 도박이었다. 커티스 음악원 출신으로 워너 클래식과 전속 계약을 사이다쿨 맺고 음악가로서 순항해 온 루에게 재도전은 경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선택이었다. 본선 3라운드 전에는 손가락 부상과 감기로 기권을 고민했다.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많이 생각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현실적 위험 부담은 있어도 쇼팽 콩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는 콩쿠르여서 수백만 명 앞에서 연주할 기회가 보장되는 게 큰 동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에릭 루는 "콩쿠르의 엄청난 압박을 이겨낸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더 큰 야망 있었고, 안정성 원했다"



쇼팽 콩쿠르 3라운드에서 연주 중인 에릭 루. ⓒKrzysztof Szlezak


루에게 지난 10년은 자신의 스타일과 확신, 무대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탐구한 시간이었다. 결선에서는 지난 대회 때 연주한 쇼팽 협주곡 1번 대신 덜 연주되는 2번을 선택했다. 쇼팽 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우승한 사례는 45년 만이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가 맺어준 10년 인연도 다시 이어졌다. 조성진은 2라운드를 앞둔 루를 찾아 응원했고, 우승자가 된 루는 베를린에서 조성진과 재회했다. 루는 "10년 동안 모두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결과는 5시간이 넘는 심사위원단의 토의 끝에 나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루는 우승자 발표 직후 간단한 감사 인사 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사실 발표 10분 전에 문자로 통보를 받아, 실제 이름이 불린 순간은 안도의 마음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으며 뜻을 이룬 루에게, 자신처럼 큰 꿈을 좇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온전히 예술에 집중하세요.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들에 흔들리지 말고, 이 작품에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만 집중하세요. 콩쿠르는 운도 필요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통제 가능한 예술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두 번째 도전 끝에 정상에 선 루의 말은, 콩쿠르를 넘어 클래식 음악계를 견디는 그의 단단한 원칙으로 들렸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