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기자]
▲ ?흔히 '박정희 생가'로 불리는 이곳은 동학 접주 박성빈의 집이다. 박성빈은 박정희의 아버지이다. 사진은 2012년 11월 11일의 이곳 풍경이다.
ⓒ 김명희
동학농민혁명기념재
바다신2릴게임 단 누리집(아래 누리집)은 구미에 동학 '유적지'가 세 곳 있다고 소개한다. '구미 동학농민군 박상희 부부 추모비', '구미 동학농민군 선산 전투지(선산읍 동부리 162-1)', '구미 선산 관아 동학농민군 점령지터(선산읍 완전리 59-3)'가 그들이다. 필자는 '구미 동학농민군 박상희 부부 추모비'는 제외하는 대신 '구미 쌍암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 해평면
릴게임예시 해평리 239)'과 이른바 '박정희 생가(상모동 171)' 두 곳을 보태어 네 곳으로 소개하려 한다.
쌍암고택은 1894년 당시 동학농민군 집결지이자 일본군 병참기지로도 쓰였던 곳이다. 박정희 생가는 무과 급제 뒤 관직에 진출했다가 그만두고 동학 접주가 되어 관군·일본군과 싸웠던 박성빈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1917
게임몰릴게임 년 막내아들 박정희를 얻은 곳이다.
'박상희 생가'와 '동학농민군 박상희'는 무리
박정희 생가를 '박상희 생가'로 묘사하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박상희는 경북 왜관 약목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집은 박상희 생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동학 유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버지 박성빈은 동학군이었고, 1916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년부터 1938년 타계시까지 이 집에서 22년 동안 거주했다.
박상희 부부 추모비를 '구미 동학농민군 박상희 부부 추모비'라 이름붙이는 것도 무리이다. 1905년에 출생한 박상희가 1894년에 동학농민군 활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박정희 생가를 '독립운동가 박상희 주택'으로 부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사이다쿨접속방법필자는 2012년 11월 11일 박정희 생가에 가보았다. 그때는 이 집이 동학 유적인 줄 알지 못했다. 벽에 게시된 '약력 박정희 대통령'의 첫줄이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에서 출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성빈과 형 박상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 ?박상희 부부 추모비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한때 선산읍성을 점령하지만 끝내 패퇴
누리집에 따르면 "선산(구미) 지역을 포함한 경북 지역은 사상적으로 동학이 활발하게 포교된 지역이자, 지리적으로는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소식이 빠르고 민중적 활동이 왕성"했던 곳이다. 동학 지도부가 선산에서 활동을 직접 지휘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최시형이 이웃 김천에서 내칙과 내수도문을 발표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해월이 선산도 방문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893년 보은집회에 당시 선산 지역 동학교도들도 많이 참여했다. 이듬해 동학농민혁명 때는 신두문, 편보언, 한교리와 그의 아들 한정교, 한문출과 그의 아들 한중석, 박성빈 등 지도자들의 조직적 움직임에 힘입어 9월 20일 선산읍성을 점령했다.
이어 동학농민군은 일본군 병참기지가 있는 해평을 습격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9월 29일과 10월 1일 일본군에 선제 공격을 당했고, 11월 10일쯤 피체된 신두문이 12월 14일 처형당하는 등 많은 희생자를 낳은 채 무너지고 말았다.
▲ ?동학 선산 전투지 '선산읍성 남문'(동부리 162-1번지)
ⓒ 김명희
총살로 끝난 박상희의 생애
박상희의 묘소와 추모비가 누리집에 '동학 유적'으로 소개되어 있으므로 그를 잠시 살펴본다. 박상희는 박정희의 셋째형으로 나이 차이가 12세나 난다. 그는 1927년 이래 신간회 활동을 했고,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도 일했다. 해방 뒤 건국준비위원회 구미지부를 창설했으며, 조선공산당 선산군당 총책도 맡았다. 1946년 10월 6일 군경의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박정희는 형 박상희가 죽은 뒤 남로당에 입당했다. 5·16군사정변이 성공하자 박상희의 친구 황태성이 북한의 비밀특사로 와서 박정희와 접촉을 원했다. 박정희는 자신에게 정치적 위해가 클 것으로 판단, 그를 간첩으로 처형했다.
구미 최고의 동학 답사지로는 전투 현장인 선산읍성 남문을 들 만하다. 누리집이 '구미 동학농민군 선산 전투지'로 소개하고 있는 이곳에는 '갑오농민군 선산읍성 전적비'와 '갑오전쟁 선산 창의비'가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죽장사를 찾아 통일신라시대 국보탑도 볼 수 있다. 죽장사는 1894년 패퇴한 동학군이 숨어지낸 은신처로 전해진다.
▲ ?동학군이 숨어 지냈다고 전해지는 구미 죽장사의 오층석탑(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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