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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지환어 (25-06-13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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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욕심쟁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EMLSI 주식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영국의 장단점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웰메이드 주식
▲ ?한영기
ⓒ 김성수
지난 35년간 영국에 살며, 이 나라에 어느덧 몸현대산업 주식
과 마음이 스며들었지만, 내가 본 영국은 여전히 신기하고, 가끔은 낯설며, 때로는 웃기고 짠하다.
"Excuse me"와 "Sorry"의 민족
영국은 참 조용한 나라다. 거짓말 좀 보태서 새벽에 냉장고 문 여는 소리에도 이웃이 쪽지를 보낸다. "친애하는 이웃님, 밤에는 냉장고를 좀 덜 열정적으로 움직여kt&g 주식
줄 수 있을까요?" 너무 정중해서 냉장고에 미안해질 지경이다. 여기선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지만, 모두가 눈치를 본다. 단, 축구 경기 때는 예외다. 그땐 외계인이 쳐들어와도 전혀 신경 안 쓴다. 또 영국인들은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심지어 남이 자기 발을 밟았을 때도 "Sorry!"라고 먼저 사과한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거래량
전염되어 집에서 벽에 부딪혀도 "Sorry wall!"이라고 중얼거린다. 아내가 "당신 정말 영국인 다 됐네"라며 웃는다.
교육의 자유로움
아이들에게 "왜 공부 안 해?"보단 "넌 뭘 좋아하니?"라고 묻는 문화다. 학원 대신 펍(선술집)에서 자기 진로를 고민하고, 실수를 허용하고 '패자부활전'이 있는 덕에 아이들도 편안하게 자랐다. 아이들이 다닌 영국 학교는 한국처럼 획일적이지 않았다. 큰아이는 음악에, 작은아이는 스포츠에 빠져도 "공부 안 하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속으로 "수학 좀 해라..."라고 중얼거렸지만. 결국 둘 다 자기 길을 찾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 기본적으로 무상교육이라 대학원까지 교육비와 자녀 생활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줄 서기의 달인들
영국은 줄서기의 천국이다. 새치기하면 싸우진 않지만, 그 싸늘한 눈빛이 꽂혀 멘탈 붕괴가 온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국민성, 이게 바로 영국식 매너다. 질서와 여유는 여전하다. 영국 사람들은 급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다. 버스가 20분 늦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줄을 서는 데 도가 텄다. 그리고는 버스가 마침내 와도 하나도 서두르지 않는다. 뒤에 줄서 있는 사람들은 생각안하고 승객이 계단에서 타다 말고 기사와 날씨나 애완견 이야기를 느긋하게 한다. 한국에서라면 이미 "빨리빨리!" 소리가 터져 나왔을 상황에서도 이들은 그저 조용히 기다린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이제는 나도 이들의 '느림의 미학'에 어느 정도 동화되었다. 덕분에 한국에서처럼 밥 먹고 체할 일은 없다.
예측 가능한 제도
적어도 큰 틀에서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비록 그 원칙이 가끔 우리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이게 될까?" 싶은 일도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든 꼭 돌아간다. 한국처럼 '정'이나 '눈치'로 해결되는 경우가 드물어, 처음엔 팍팍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투명하고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이 원칙 때문에 융통성이 없어 피식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다양성존중
영국은 인종과 문화의 전시장이다. 처음엔 '나 혼자 동양인인가' 싶었지만, 영국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용광로다. 덕분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와 생각을 접하며 자랐고, 나 역시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김치 냄새가 난다고 눈살 찌푸리는 사람? 적어도 대놓고 그런 사람은 없다. 냄새가 좀 나도 이들은 티를 내지 않는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개인주의
영국에서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내 사생활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영국 집은 울타리가 낮아서 옆집 사람이 정원에서 뭐하는지 마음 만 먹으면 다 볼 수 있다. 특히 여름에는 날씨가 좋으면 거의 루벤스의 누드화처럼 벌렁 누워서 일광욕한다.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참, 동네 공원도 그렇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에 나는 동네공원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볼거리가 너무나도 풍성하기 때문이다.
펍 문화의 묘미
우리 동네 펍은 한국 마을회관 같다. 할아버지부터 대학생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맥주 한 잔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술집에 왜 이렇게 자주 가냐"며 눈총을 받았는데, 이제는 나도 단골이 되어 바텐더와 날씨 이야기, 요즘은 K-POP 이야기로 수다를 떤다.
영국음식, 그 슬픈 현실
피쉬 앤 칩스(Fish & Chips), 3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도대체 혁신이 없다. 한국 마트에서 김치 한 포기 사면 애국가가 자동 재생된다. 요리는 사랑이라지만, 영국에선 '요리는 생존'이다. 큰 감자, 작은 감자, 으깬 감자, 튀긴 감자, 삶은 감자. 조린 감자, 갈은 감자, 감자샐러드... 감자 100가지 요리법을 외워야 한다. 지금도 런던 어딜 가도 맛있는 건 인도 음식, 중국 음식, 태국 음식, 한국 음식이다. 영국 음식은... 아예 말을 말자.
예상불가 한 날씨, 늘 우울한 시인처럼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다. 우산을 들고 나가면 해가 나고, 안 들고 나가면 폭우가 쏟아진다.(장난하나 진짜?) 어느 순간부터 "오늘 날씨가 좋아서 불안해"라는 기묘한 역반응도 생겼다. 영국 날씨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다. 아침에 해가 쨍 하다가도 오후엔 비가 쏟아지는 건 다반사고, 겨울엔 해를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해가 일찍 진다. 북부지방에서는 점심 먹고 나면 그나마 없는 해가 져서 밤처럼 컴컴하다. 또한 영국 기상청 예보는 점쟁이만도 못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NHS(국민의료서비스)의 아이러니
영국의 국민의료서비스는 무상의료지만, 그 대가는 '기다림'이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일주일 뒤에나 진료를 볼 수 있고, 심각한 질병이 아니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빨리 죽거나 빨리 낫거나 둘 중 하나"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돌려 말하기, 가끔 너무 답답
영국인들의 돌려 말하기는 예술이다. "That's an interesting idea." → "별로야, 다시 해." "Not bad." → "아주 좋아." 처음엔 이런 돌려 말하기 때문에 내가 오해를 엄청 많이 했다. 그래서 터득한 결론은 영국에 왜 추리력 많은 셜록 홈즈가 나왔는지 충분히 이해 할만하다. 직설적인 한국식 표현이 그리울 때도 많지만, 감정 상할 일 없는 이 문화가 결국은 편하다. 다만 혼잣말은 늘어난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런 거.
대중교통, 도대체 왜 이러나
어떤 경우는 기차 값이 비행기표보다 비싸다. 거짓말 좀 보태서 런던에서 맨체스터 가는 요금이 200파운드인데, 같은 날 스페인 가는 항공권이 50파운드다. 더구나 기차 파업도 엄청 잦다. "오늘 기차 파업 입니다"라는 안내에 "그럼 걸어가란 말이냐!"라고 투덜거리며, 또 걷는다.
집값, 하늘을 찌르다
1999년에 샀던 집이 지금은 약 5배가 됐다. 듣기엔 좋지만, 정작 자녀들은 "평생 렌트만 살 것 같아"라며 한숨 쉰다. 그 말에 웃음보다 미안함이 앞선다(마가렛 대처가 남긴 유령 덕이다).'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와 윤석열이 남긴 유령 - 오마이뉴스 이대로 가면 손주들이 태어나도 우리 집에서 살아야 할 판이다. 내가 지지하는 현재 노동당 정부에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해결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영국, 이상하게 정든 나라
영국은 참 이상하고 묘한 나라다. 싫으면서도 좋고, 떠나고 싶으면서도 머물고 싶다. 아마 이게 35년 영국 생활의 정체성인 것 같다. 분명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살다 보니 늙은 아내처럼 정이 든다. 아마도 사람들이 착해서 그런 것 같다. 영국인들은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고, 수시로 자원봉사도 많이 한다.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나서 준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인선택을 존중하며,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이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포용심이 많고 더 큰 세상을 볼 줄 아는 성인이 된 것 같다. 가끔 김치찌개가 그리운 날도 있지만, 동네 펍에서 마시는 기네스 맥주 한 잔이 그 그리움을 달래 준다. 한국과 영국 두 나라 사이를 줄타기하며 살다 보니, 이런 결론이 내려진다.
"인생이란 결국, 어느 나라에 살든 적당한 불편함과 고마움의 교차점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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