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오 구찌. 1940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 창립자 구찌오 구찌(1881~1953·규범 표기는 구초 구치)는 마흔 살 때인 1921년 고향 피렌체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죽 제품 가게를 열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일했다. 열여섯 살 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호텔 벨보이로 일했다. 최고급 사보이 호텔에서 손님 짐을 나르며 귀족 및 재력가의 옷차림과 가방을 눈여겨봤다. 이탈리아로 돌아와 20년간 이탈리아 가죽 공방에서 경험을 쌓았다.
창업 초기엔 승마용
야마토게임 품과 가방을 주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안장·재갈 같은 마구(馬具)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경험이 창업 자산이었던 셈이다. 구찌 상징인 재갈 모양 금속 홀스빗(horsebit) 장식도 이런 경험에서 나왔다.
2014년 9월 1일자 C2면.
바다이야기하는법 고난도 많았다. 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 대한 금수 조치로 가죽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구찌는 꾀를 냈다. 가방 손잡이를 가죽 대신 일본산 대나무로 만들어 달았다. 1947년 출시한 ‘뱀부(대나무) 손잡이 백’은 인기 아이템이 됐다.
1938년 이후 아들 알도·바스코·로돌포가 경영에 합류하
골드몽사이트 면서 가족 기업으로 성장했다. 1953년 미국 뉴욕에 진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명성을 더하려 할 때 구찌오 구찌는 세상을 떴다.
구찌의 명성은 알도를 비롯한 아들들이 이어갔지만 후대엔 가족 간 알력이 커졌다. 폭행 및 살인 사건도 일어났다. 2022년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가문에서 벌어진 ‘막장 스토리’가 바탕이다.
메이저릴게임사이트구찌오 구찌의 손자이자 로돌포의 외아들인 3세 경영자 마우리치오는 1995년 출근길에 총에 맞아 사망했다. 범행을 마우리치오의 전처가 사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 아니다. 알도의 아들 파올로는 회사를 차지하려고 아버지 알도가 탈세했다고 고발했다. 알도는 아들의 신고로 감옥에 갇혔다. 파올로는 동생들과 사촌인 마우리치오에게 폭행당하
오션파라다이스예시 고 물러난다. 104년 전 구찌오 구찌가 창업했을 때 원했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2025년 1월 3일자 B10면.
신현호 경제칼럼니스트는 영화를 계기로 구찌가(家)를 평가했다.
“가족 기업이 세대를 거듭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구찌만큼 막장까지 치닫는 경우는 흔하진 않습니다. 창업 3세들의 끝없는 욕망과 어리석음 때문에 구찌 집안 사람들은 세계적인 브랜드 구찌의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2025년 1월 3일 자 B10면)
구찌의 세계 매출은 2023년 기준 99억유로(약 14조5000억원)로, 422억유로의 부동의 1위인 루이비통(LVMH), 197억달러 샤넬, 134억유로의 에르메스의 뒤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