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3일 서울 한강진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다. ⓒ황정은 제공
2025년 7월31일 목요일
‘선생님, 파주에 눈이 많이 왔어요.
눈이 쌓여서 새들 발자국이 깊습니다.’
여덟 달 전에 이렇게 쓰고 그간 편지를 이어 쓰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여름입니다.
릴게임사이트 그동안 큰일이 많았지요. 계엄을 겪고 대통령을 탄핵하고 내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대선을 치렀고요. 많은 목숨을 앗아간 항공기 사고가 있었고 의성에서 발원해 수많은 생명을 살라버린 산불도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함께 겪었습니다. 자주 선생님 생각을 했어요. 나쁜 것, 좋은 것이 너나없이 연결된 채로 속속 드러나는
온라인야마토게임 사회적 상황에 휩쓸려 지내는 동안 선생님의 달뿌리풀 이야기를 종종 생각했습니다. 거칠고 어두운 뿌리를 매일 더듬어 그것이 내 목숨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며 사는 것 같았어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모조리 내게 연결되어서, 한 시기 한 사람 안에 담기엔 너무 벅찬 감정과 걱정으로 지치곤 했습니다. 다시 수목원으로 돌아가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릴게임무료 나무를 바라보고 싶은 날이 많았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날에는 일기를 쓰는 것처럼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보기도 했어요. 불안한 상황에 울적한 마음을 바깥으로 퍼뜨리고 싶지 않아 그 글을 보내지는 못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산불 이후로
릴게임야마토 너무 고된 일을 겪지는 않으셨나요.
2024년 12월 이후로 제게 가장 두려웠던 때는 경상북도 의성에서 발원한 산불이 동북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였습니다.
계엄 이후로 이어진 내란 중에 제주항공 항공기 사고로 수많은 사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람이 목숨을 잃은 뒤였는데 산불마저 번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느낀 특별한 절망감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매일 적는 일기로도 옮겨 적지 못하고, 두려워 얼어붙은 마음으로 ‘국운’이라는 말을 생각했어요. 일상에서도 산문에서도 사용할 일이 있겠나, 싶었던 그 말을 그렇게 선명한 촉감으로 입에 물고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날들을 포함해 지난 몇 달 동안에 저는 많이 울며 지냈습니다. 아무 데서나 눈물이 터져서 얼굴을 북북 문지르며 다녔어요. 수많은 사람들 곁에서 추운 거리를 걷고 돌아와서,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뉴스를 들으면서, 걱정하면서, ‘아프다’는 말을 일기에 자주 기록했습니다. 소설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그 말을 일기(日記)로 빈번하게 적다 보니 부아가 치밀기도 했어요. 혼란하게 고통스러운 이 상태를 담기에는 ‘아프다’는 말이 너무 작다고, 우리가 가진 말이 너무 좁고 무뎌서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기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나는 손상되었다’는 말을 후기로 적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손상되었어요. 두려움 때문에 이웃을 집요하게 의심하고, 조바심 때문에 사람을 맹렬하게 증오했습니다. 분노가 아닌 증오에 시달려 평정이 무너졌고요. 시위를 하러 나간 거리에서 금방 지나친 어떤 이를 향해 독을 뱉는 것처럼 욕을 하고 마음이 무너져 눈물만 흘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나의 인간성이 혐오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 한쪽으로는 뾰족해지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둔감해지기를 거듭했습니다. 이 손상을 ‘계몽’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그 일상을 책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선생님에게 보내려고 주소를 적은 봉투에 넣어두었는데 우체국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갈 일이 있겠지요.
올해도 저는 여름 고온을 견디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달 초엔 파주 기온이 39℃를 넘어 40℃에 육박하기도 했어요. 그날 제가 앉은 다락방 온도가 다시 35℃까지 올라갔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봄에도 베란다에 채소를 심지 못했어요. 가지, 애호박, 오이며 완두콩을 기르던 자리에서 이제 식물을 키우기가 어렵습니다. 시들 틈도 없이 타버리고 말라버립니다. 작년에 씨앗 떨어진 자리에서 나는 생강초와 흰독말풀, 나팔꽃 덩굴만 저 땡볕을 버티며 자랍니다.
증오에 시달리며 평정이 무너지다
선생님이 사는 마을에서는 지금 더위에 부사가 익고 있겠지요.
저는 지난 반년 사이에 단편을 마저 써서 마감했습니다. 선생님을 보러 가는 길에 만난 사고는 그 단편의 결말이 되었습니다. 그 터널을 빠져나가 양지바른 춘양으로 들어서자마자 본 단풍은 제가 그 가을에 본 단풍 중 가장 붉었습니다. 수목원은 늦가을을 겪고 있었지요. 제가 좋아하는 버드나무들도 다 말라서 은회색으로 보이는 잎을 달고 있었고요. 그것마저 좋아 보이는 수목원에서 선생님을 만나고 왔는데 그게 벌써 반년 전 일입니다. 선생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손톱에 올린 도토리와 다람쥐 그림은 그 달이 지나자마자 사라졌어요.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거기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것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의 답신을 읽고서야 우리가 나눈 대화 중에 제 질문의 양이 상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은, 수목원을 산책하는 내내 저는 선생님에게 질문하려는 충동을 참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이름을 묻고 모르는 식물을 묻는 질문을 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거기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질문을 자주 받으실 거라고 저는 짐작했습니다. 이 산책이 선생님에게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도 어느 순간 옅어졌나 봅니다. 갈림길마다 망설이며 길을 고르고, 우리가 택하지 않은 길도 보여주고 싶어 자꾸 돌아보는 선생님을 보면서요. 아는 식물을 더 소개해주고 싶어 초조해하는 마음이, 수목원을 향한 사랑이 느껴졌어요. 그런 사랑과 나란히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그런 환대를 받아서 정말 기뻤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책로로 들어섰을 때, 어떤 단풍나무의 단풍은 왜 유난히 선명하고 붉은지를 제가 물었지요. 우연히 생각난 것처럼 심심하게 물었지만 실은 오래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에게 그것 하나는 꼭 물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어디에든 유난히 붉은 단풍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단풍들 사이에서도 유난하게 선명한 단풍이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저 나무만 수종이 다른 걸까, 어디가 어떻게 특별한 걸까, 그런 나무를 볼 때마다 생각했어요.
공원에 자리 잡은 붉은색 단풍나무의 모습. ⓒ황정은 제공
선생님은 그날 제 질문에 “그 나무의 선 자리가 다만 그렇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무 자체에 다른 나무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 저는 허를 찔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구나, 하고 개운해졌어요. 속이 시원하고 즐거워서 크게 웃었지요.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달뿌리풀, 쇠무릎, 개옻나무, 신나무, 복자기, 호랑버들. 그날 선생님의 소개로 제가 가지게 된 초록 목록입니다.
우리가 걸은 산책길은 사람이 자주 오가는 길이 아니라서 낙엽이 그대로 쌓여 푹신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길에서 잎을 주워 뒷면에 돋은 솜털을 보여주셨어요. “이렇게 돋은 솜털이 수분을 머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떡을 찔 때 이 잎을 사용했다”라고 하면서요. 솜털 유무로 떡갈과 신갈을 구분할 수 있다고 선생님은 잎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떡을 찔 때 깔아 써서 떡갈, 짚신 바닥에 깔아 써서 신갈이라고요.
항상 헷갈리던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도 선생님 덕분에 이제 어렵지 않게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잎의 마주나기와 어긋나기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주나기가 어느 쪽인지, 메타세쿼이아인지 낙우송인지 저는 매번 헷갈리곤 했습니다.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를 구별하려고 달을 볼 때처럼 말입니다.
선생님은 메타세쿼이아 잎을 손가락에 끼워 참빗 모양으로 당기며 “마주나기로 이렇게 ㅁ이 되는 잎이 메타세쿼이아”라고 하셨지요. 저는 그날 이후로 “ㅁㅁㅁ(메메메)”하고 부르며 그 둘을 헷갈림 없이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잎은 마주나기로 ㅁ.” 이렇게 노랫말처럼 기억하게 되었으니 어긋나기로 자란 잎은 낙우송이라는 것도 잊을 수가 없지요.
수목원을 산책하자는 제안에 기쁘게 응하면서도 네 시간 넘는 산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그렇게 흘렀는지를 몰라서 저는 아무래도 홀린 것 같았어요. 오래 걷고도 힘들지 않았고 해 지는 것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옥석산 협곡이 보이는 다리에 다다랐을 때를 저도 기억합니다.
무슨 말인가를 하느라 앞을 보고 있다가 아주 장엄하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 선생님을 보았더니 ‘그렇지요? 여기입니다, 여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눈을 빛내며 선생님은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드물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 사진이 없었습니다. 그것뿐만은 아니고 그날 저녁과 이튿날 물야면에서 점심 먹으며 찍은 사진 몇 장도 사라졌어요. 이상한 일이지요?
하지만 기억으로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괜찮아요. 정말 드문 어떤 순간들은 겪자마자 내가 죽을 때까지 이것은 잊지 못하겠구나, 너무 반짝여 마지막 순간에 이 순간의 빛을 다시 볼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가 있는데 저는 그날 여러 번 그걸 겪었습니다. 호랑버들 곁에 앉아 코트 밑자락에서 쇠무릎을 떼어내며 선생님과 말을 나누던 시간을, 그리고 돌배나무가 자라는 컴컴한 길을 걸어 수목원을 나오던 시간을 저는 앞으로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길 어딘가에서 선생님은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 참에 오랜 인연이 있는 두봉 신부님에게 호야를 받아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곁에서 들었는데 그간에 그 이야기를 실은 선생님의 책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근심을 말로 듣고 표정으로 본 터라 저는 문짝만큼 크게 자란 호야를 상상했지만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 세숫대야만 해서, 식물을 향한 선생님의 감각이 저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제가 호야의 크기부터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그를 들여놓을(그에게 내줄) ‘공간’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맡은 식물을 향한 선생님의 근심은 그와 함께 보낼 ‘시간’을 향하고 있었다는 걸 저는 그 책을 읽고서야 알았어요. “호야의 평균수명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다. 사람이 죽이지 않는다면 화분 안에서 사람보다 오래 살 수 있다.(〈숲을 읽는 사람〉, 111쪽, 허태임, 마음산책, 2025).” 그 말을 읽고서야 저는 한 생명의 시간, 그의 평생을 받아안은 부담이며 책임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선생님의 근심에 조금 더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뒤 두봉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뉴스로 접했어요. 선생님과의 대화로 맺은 인연이 있어 저도 신부님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2025년 9월9일 화요일
선생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5월에 만병초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올해 5월은 지나버렸습니다.
금방 가을이 오겠지요.
지난 6월에 저는 아버지 상을 당했습니다.
‘고통’이라는 말에 담기 어려운 감정들
2025년 6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계단에서 바라본 풍경. ⓒ황정은 제공
오늘은 너무 지쳐서 다른 이야기를 편지에 쓰기가 어렵습니다. 여름 내내 서울 종로 세운상가와 경기도 파주를 오가며 아버지가 남긴 사물들을 정리했어요. 창고 두 개와 수리실에 사람 지나갈 틈도 없이 쌓인 물건들을 들어내고 정리했습니다. 선풍기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창을 열어두고 종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들였습니다. 이 여름의 폭서를 견디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습니다. 옷을 한 번씩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지만 그래도 어느 날에나 바람이 괜찮게 불어 더위는 견딜 만했습니다.
기계를 나르고, 부품을 뒤져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고르고, 불에 탈 것과 타지 않을 것으로 쓰레기를 분류해 자루에 담고, 그렇게 아버지의 사물들을 종일 만지고 나면 고무를 두껍게 입힌 면장갑을 끼고도 양손 손톱 아래 검은 것이 남곤 했습니다. 쇳가루와 접착제, 기름, 담뱃진, 고무 찌꺼기 같은 것들입니다. 제 아버지의 손톱 아래로 파고들어 손가락을 물들이던 것들.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사람들이 수리실로 찾아오고 전화를 걸어오고 메시지를 남깁니다. 저와 둘째 동생이 그들에게 부고를 전달하고 물건을 찾아가야 한다고 재촉하고 폐기를 원하느냐고 묻고 방문 약속을 잡습니다. 다정한 사람도 많지만 불행을 겪은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혹은 삼가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 각자가 지닌 미숙함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참사 유가족을 생각하는 날도 많았어요. 우리 사회의 미숙함 때문에 얼마나 기막힌 일들을 겪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날들 말입니다.
괜찮은 날도 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문 곳 없이 도로 쪼개집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고 휘두른 말들, 내가 그에게, 그가 내게 기필코 입힌 상처들, 주고받은 다정과 경멸과 걱정, 원망, 연민, 이미 잊었고 지났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매일 생생하게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고통’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저는 요즘도 합니다.
시시각각 이렇게 다채롭고 다양한 진폭을 가진 이것이, 어떻게 고통이라는 한마디 말에 담길 수 있는지.
어쩔 도리가 없어 이 속에 다만 있습니다.
파주에서, 정은
?
황정은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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