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예산이 돌아왔다. 올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35.3조원.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런데 왜 연구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할까? 예산 증가와 함께 투자 성과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도 상승하지만, 연구 현장의 체감 활력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숫자의 회복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신뢰의 공백 때문이다.
불안의 실체는 R&D 예산이 지닌 구조적 취약성에 있다. 보건이나 교육·복지 예산은 대다수가 법령에 따른 의무지출로 분류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 하한선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모바일바다이야기 ■
「 최대 예산 효과 아직은 미미 자율성 실종, 중복 심의 여전해 소명 신경 쓰다 연구 평범해져 전문가 중심에 둔 자원 배분을 」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오른쪽)이 지난 2월 서울 성북구 KIST 본원 존슨강당에서 열린 KIST 개원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6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형 AI 휴머노이드 KAPEX의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 [뉴스1]
반면 R&D 예산은 대부분 정부의 재정 전략에 따라 언제든 조정 가능한 재량지출의 영역에 놓여 있다. 과학자 출신 황정아 의원이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로 명문화하는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손오공릴게임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R&D 예산의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R&D 예산의 취약성은 복잡한 행정 절차를 수반한다. 내년 R&D 예산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말 국회 의결까지 23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요 단계마다 여러 세부 절차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 방대한 인력과 행정력이 투입
릴게임뜻 된다.
역설은 이 긴 행정의 시간 속에서 R&D를 기획할 시간은 매우 짧다는 데 있다. 촘촘한 23단계의 허들을 넘기 위해 연구자에게 주어진 기획의 시간은 길어야 몇 주, 때로는 며칠에 불과하다. 부처 제출용 계획서 작성부터 부처 간 조정 대응, 국회 심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각종 소명까지, 수많은 행정 절차들이 시간을 잠식한다. 아이디어
릴게임무료 의 탁월함이 핵심인 R&D에서 ‘짧은 기획과 긴 행정’이라는 현재의 구조는 분명 기이하다.
연구자가 예산 결정, 영국 ‘할데인 원칙’ 이런 관행은 과학기술을 경제 성장의 도구로 간주해 온 개발시대적 습관 탓이다. 현행 헌법이 국민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과학기술을 규정한 결과, 정부가 R&D를 직접 관리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행정의 책임성은 강화되었을지 모르나, 연구 현장의 자율성은 늘 부족했다. 재정 논리에 따라 기존 사업에 대한 일률적인 예산 조정이 이루어지고, 다년도 과제조차 매년 반복되는 감액 가능성에 노출되는 현상은 이러한 구조의 단면이다.
여기에 중복 심의도 비효율을 키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검토를 끝낸 사업이 예산당국의 별도 심의를 받으면서 동일한 소명 절차가 반복된다. 국회 단계에서도 사업 단위의 조정이 이어진다. 연구의 성패가 탁월함보다 예산 확보 과정의 설득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절차 속에서 연구는 점차 평범하게 설계되고, 도전적 시도는 위축된다. 이는 결국 R&D 패러독스라 불리는 투자 대비 성과 논란을 일으키며, 다시 연구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리처드 할데인.
과학기술 강국들의 궤적은 달랐다. 그들은 이미 한 세기 전에 과학기술을 대하는 국정의 원칙을 확립했다. 1918년 영국의 정치가이자 행정가였던 리처드 할데인은 연구의 성격이 일반 행정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전문가들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혁신 보고서에 담았다. 이 주장으로부터 연구비 배분의 결정은 정치가가 아닌 연구자가 해야 한다는 소위 ‘할데인 원칙’이 만들어졌다.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호주 등 영미권 국가에서 R&D 정책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1911년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아돌프 폰 하르나크는 최고의 인재를 선발했다면 그에게 연구의 전권을 위임한다는 사람 중심의 연구기관 운영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특정 주제를 먼저 정하는 대신, 탁월한 연구자를 중심으로 연구소를 설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원칙으로 탄생한 기관이 카이저 빌헬름 협회, 오늘날의 막스 플랑크 협회다. 이른바 ‘하르나크 원칙’은 연구의 방향과 자원배분을 과학자에게 맡기는 구조를 제도화했고, 지금까지도 독일 과학기술 경쟁력의 핵심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부처와 국회 오가느라 바쁜 연구자 선진국의 R&D 철학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향해 뼈아픈 질문 두 가지를 던진다. 첫째, 우리가 진정으로 지원해야 할 대상은 서류상의 사업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고뇌하는 사람인가. R&D의 탁월함이란 대체로 난해하고, 때로는 무모하며, 당장은 설명조차 어려운 연구자의 창의적 사유와 고된 실험의 반복 속에서 싹튼다. 국가는 R&D의 본질적 불확실성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둘째, 국가 R&D 예산의 효율은 통제에서 오는가, 자율에서 오는가. 그간 우리는 촘촘한 행정 절차를 운영하는 게 예산의 오남용을 막는 길이라 믿어 왔다. 하지만 선진국이 증명했듯, 최고의 인재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재정의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연구자가 부처와 국회를 오가며 설명의 늪에 빠져 있는 시간이야말로 국가적으로 가장 큰 자원 낭비가 아닌가.
우리 R&D 시스템은 이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한다. 수술의 목표와 방향은 뚜렷하다. 예산 배분 권한 구조의 재편이다. 정부는 전략적 방향 설정에 집중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판단은 전문가 사회에 맡겨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부와 국회는 미시적 사업 심의를 과감히 줄이고,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R&D 자금 대부분을 기관 중심의 ‘포괄 예산(Block Funding)’ 체계로 전환해, 전문가 중심의 자원배분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연구 현장에 불안이 남아있던 이유는 명확하다. 연구자를 믿지 못하는 시스템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는 통제를 유지할 것인지, 신뢰로 전환할 것인지의 문제다. 행정 장벽을 걷어내고 연구자를 중심에 두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 R&D,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