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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현실을 비추지만 차별적으로 비춘다. 드라마가 비춘 어떤 현실이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는 동안 드라마가 비추지 않는 어떤 현실은 편성표에서 사라진다. 집만 나서면 선택할 ‘의료’가 널려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을 때 의료에 닿는 과정 자체가 ‘비상사태’인 사람들의 곤경과 막막함은 드라마 소재조차 되지 못한다. 의료뿐 아니라 ‘의료의 이미지’에서도 ‘대도시 밖’은 말간 공백이 된다. ‘의료 대란 시대’에 정부 정책 개편을 결정하는 기준은 시청단타종목
률보다 생명이어야 한다. 한번도 방영된 적 없는 논픽션 드라마를 한겨레가 시작한다. 의료취약지역 공공병원 메디컬 드라마 ‘영월 나이트’. 10부작이다.
무너진 시스템이 일상이 되면 재난도 진부해졌다.
2025년 5월4일 저녁 7시43분. 강바다이야기 꽁머니
원도 속초의 한 119안전센터로 신고가 접수됐다. 어린아이가 구역질을 하며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전화였다. 소방교 차진기(가명)가 출동 지시를 받고 동료 대원 2명과 구급차에 올랐다.
차진기의 소속 센터는 ‘격무부서’(일평균 출동 11건 이상)로 분류됐다. 가까운 거리에 콘도와 리조트가 많았다. 주말과 휴일이면 관광지 속초의 유동인구가 GS리테일 주식
증가하면서 출동도 배로 늘었다. 회를 먹고 탈이 난 투숙객들의 신고가 많았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다. 신고 위치는 5㎞ 떨어진 리조트였다. 7시53분.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엄마와 서울에서 놀러 온 9살 여자아이였다. 저녁을 먹은 아이가 배꼽 주위에 통증이 있다고 하자 엄마가 119에 연락해 병원 이송을 요청했다.
“릴게임다빈치
받을 수 없습니다.”
차진기가 소아 환자 발생을 병원에 알렸을 때 그 답이 돌아왔다. 속초 관내 모든 병원들의 대답이 동일했다.
“소아 환자는….” 강릉시내 병원들도 모두. “진료가….” 춘천 시내와 원주 권역 병원 모두. “불가능합니다….” 삼척, 동해, 홍천 쪽 병원들까지.
강원도 내 응급실이 22곳바다이야기 꽁머니
이었다.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 등 연락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병원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길을 정하지 못한 구급차는 리조트를 떠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차진기가 본부 구급상황관리센터에 ‘병원 선정’(현장 대응만으론 힘들 때 본부 차원에서 병원에 환자 수용 타진)을 요청했다. 같은 시각 동료 대원이 차진기 옆에서 한 병원과 통화하고 있었다. 그가 “와도 좋다”는 답을 받았다. 8시21분. 병원 접촉 28분 만이었고, 15번째 시도한 병원이었다.
출발(8시41분)까지는 20분이 더 걸렸다. 아이 엄마가 그 병원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진료받던 서울 쪽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차진기는 “구급차로 갈 수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그는 8년차 구급대원이었다. 아이 엄마뿐 아니라 차진기에게도 멀고 낯선 병원이었다. “상급병원으로 가기 위해 속초나 강릉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규모가 비슷하거나 작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려고 태백산맥을 넘는 건 처음”이었다. ‘의료 대란’의 여파이기도 했다. “24시간 소아 환자를 커버하던 강릉의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나간 뒤로 진료에 마비가 왔”다. 구급차에서 아이 상태를 살피며 차진기에겐 “의문”이 일었다.
“그 병원은 되는데 왜 더 큰 병원들에선 안 될까.”
속초시 전체를 통틀어 구급차는 4대였다. 1대가 멀리 나간 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고성 등 더 먼 지역에서 지원받아 메워야 했다. 구멍은 연쇄적으로 뚫릴 수 있었다. 병원까지 170㎞였다. 환자에게도 힘든 거리였지만 응급구조 체계에도 부담이었다.
지난달 18일 119구급대원들이 영월의료원으로 이송해 온 환자를 응급실 안으로 옮기고 있다. 이문영 기자
‘체한 아이’ 받아준 15번째 병원
“우리도 안 되겠죠?”
8시21분. 속초에서 걸려 온 전화가 영월의료원(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응급실을 울렸다. 구급대원과 통화하던 간호사가 당직 의사에게 물었다. 조승연(62)이 말했다.
“오시라고 하세요.”
다른 장면이 펼쳐졌을 수도 있었다. 그가 일하기 전까진 영월의료원 응급실에서도 소아 환자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단순 외상인 경우는 보기도 했지만 열이 끓거나 환자가 어릴수록 조심스러워했다. 그날 그가 당직이 아니었다면 “영월의료원도 15번째 거부 병원이 됐을 뻔”(응급실 간호사)했다. “어떻게 할까”를 묻는 간호사들에게 “‘묻지 말고 오시라고 하라’는 의사는 조승연 선생님뿐”이었다.
차진기가 응급실에 닿은 시각은 밤 10시53분이었다. 2시간12분 걸렸다. 그가 아이를 인계하고 속초로 출발하는 사이 조승연이 청진기를 귀에 꽂았다.
정작 아이는 괜찮았다. 배를 눌러봤으나 맹장염도 아니었다. 엑스레이에서도 우려할 증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체한 수준”이었다. “변을 보고 속을 비우면 낫는 흔한 증상”이었다. 조승연이 탄식했다.
“무조건 오지 말라고만 하면 어쩌라는 건지. 어느 한 병원이라도 봐줬다면 아이도 구급대원들도 고생이 덜했을 것을.”
괜찮지 않은 건 한국의 응급의료 체계였다. 아이는 큰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다행이라고만 하기에 ‘시스템의 병’은 깊었다. 차진기와 동료들이 속초로 복귀한 시각은 이튿날 새벽 2시10분이었다.
병원이 없었다. 소아·청소년들 앞에 놓인 ‘진료 장벽’은 전국적 현상이었으나 병원 자체가 말라버린 ‘의료사막’의 아이들은 더 절박했다. 의료 대란 이전에도 너무 흔해서 상투적이기까지 한 ‘의료 재난’이 일상이었다.
영월의료원은 강원 남부(영월·평창·정선)를 통틀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야간 진료를 하는 유일한 병원이었다. 그나마 2년(서영준 원장이 2023년 9월 부임한 뒤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 지역(특히 평창은 소청과가 있는 병원까지 60분 안에 닿지 못하는 인구가 30% 이상인 ‘A등급 취약지’)에서 소청과는 “필수 중의 필수 의료”(서영준)였다. “독감철이나 환절기 땐 주간 진료에만 70~100여명의 아이들이 매일 병원을 찾았”(엄은주 간호사)다. “강원도 전체로도 아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아 지난해 소아 폐렴 유행 땐 태백, 횡성, 원주, 삼척, 동해에서도 입원 환자들이 왔”(진선주 간호과장)다.
야간 진료 시작(오후 5시30분) 30분 전부터 소청과 앞에선 아이들과 부모들이 길게 줄을 섰다. 대도시에선 ‘오픈런’의 이유일 수 없는 이유가 이 병원엔 하나 더 있었다. 영월에선 소아과 약을 구하기 힘들었다. ‘수요’(2023년 전국 소아청소년 인구 비율이 평균 15.16%일 때 영월·평창·정선은 10.3%)가 적은 소아약은 의료원 앞 한두 약국에서만 팔았다. 약을 갖춘 약국이 문을 닫기 전에 처방을 받으려면 주간 진료가 끝나기 전부터 순서를 다퉈야 했다.
“아이 열이 떨어지지 않아 해열 주사라도 맞으려고 갔는데 소아는 안 된다고 바로 거절하네요. 전에도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갔는데 아무 처치도 안 해주고 돌려보내더니. 응급실이 왜 있는 걸까요.”
영월 주민들이 소통하는 온라인카페에 한 엄마가 “답답하다”(지난 4월20일)며 글을 올렸다. 야간 진료가 끝난 밤 11시 이후나 주말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영월의료원 응급실로 갔다가 헛걸음만 했다는 부모들의 원성이 댓글로 주르르 달렸다.
글이 게시된 다음날 조승연은 첫 출근을 했다. 그가 당직인 날이면 소아 환자들이 응급실 문 앞에서 돌아가는 일 없이 진찰을 받았다. 조승연이 “만 1살도 안 된 아기를 보는 데 두려움이 없는” 까닭은 그가 소아외과에서 전문의 경력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6월30일의 영월의료원 전경. 188병상의 영월의료원은 강원도 영월·평창·정선을 통틀어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이문영 기자
아픈 사람이 사정해야 하는 현실
“내가 뭐에 씌었지.”
가천의대 길병원 외과 교수였던 2001년의 ‘선택’을 두고 조승연은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그 시절 그는 “길병원에서 가장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 중 한명”이었다. 인천에서 소아외과 전문의가 그 혼자였던 1990년대 중후반엔 하루에 15건의 수술을 하기도 했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졸업(2001년 8월)하던 해에 적지 않은 교수들이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개원했다.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평생직장을 갖고 싶다는 갈망이 의료계로도 퍼졌”다. 조승연은 개원 대신 적십자병원으로 옮겼다. ‘25년차 공공의료 인생’의 시작이었다. 인천적십자병원장(2005~2006)을 거쳐 12년간 인천의료원장(2010~2016+2018~2024)으로 일했다. 두 차례 인천의료원장 재직 사이(2016~2018)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성남시의료원을 설계하고 초대 원장을 맡았다. 16대(2013~2014)와 20·21대(2019~2024)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을 지냈다. 작년 12월 병원장과 연합회장에서 퇴임한 그가 지난 4월 영월의료원으로 왔다. “평생 공공의료 어쩌고 떠들었으니 의료취약지역에서 직접 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영준 영월의료원장도 그를 불렀다. 보건행정 전문가로 삼척의료원장(2013~2014)을 역임한 서영준은 대학 정년 뒤 다시 영월에서 지방의료원장(광역단체장 임명)으로 일하고 있었다. 삼척과 인천 원장 시절 만난 두 사람은 공공의료를 향한 생각과 의지가 맞았다.
“119가 병원에 허락받고 가는 나라가 어딨나.”
조승연은 “성질이 났”다. 14차례 진료 거부당한 아이가 영월까지 온 날은 응급실 ‘취직’ 뒤 그의 세번째 당직 근무일이었다.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 환자가 ‘나 좀 진료해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것이 한국 의료의 현실”이었다.
“아이고, 왜 열이 나고 그러니.”
7월6일도 일요일이었다. 조승연이 2살 아이의 편도선 상태를 확인했다. 체온이 39도 4분이었다. 아빠가 아픈 첫째를 안고 진료를 받는 동안 곁에서 엄마가 갓난아기인 둘째를 품고 달랬다.
“약을 먹이면 계속 ‘푸우우’ 하고 뱉어내요. 팔다리를 잡고 먹여도 삼키질 않아요.”
엄마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엑스레이 사진은 깨끗했다. 조승연이 안심시켰다.
“감기 같은데요. 계속 약을 뱉으면 억지로 먹일 순 없어요. 대신 열은 떨어뜨려야 하니까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팔다리를 닦아주세요. 열이 안 떨어지면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주사기 앞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와 경쟁하며 응급실 전화기가 울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가 조승연에게 물었다.
“태백 쪽 병원인데요. 디엔알(DNR: Do Not Resuscitate, 연명치료 거부) 환자래요. 위독하다면서 보내도 되겠냐는데 어떡할까요?”
조승연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말했다.
“보내주세요.”
※2회에선 강원 남부의 ‘나이트’를 밝히는 유일한 응급실의 역사와 의료취약지역 영월·평창·정선의 현재, 그 응급실에서 생사를 다투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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