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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지환어 (25-07-3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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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그것도 영문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어 소설을 많이 읽었고 나중에 영어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어 작가가 되겠다는 충동은 없었는데, 한국에만 있는 등단 시스템이 문학의 다양성에 제동을 거는 체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번역가가 된 것도, 문학 번역을 하면 영미권 출판사들과 네트워킹을 만들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웃음)”
정보라의 ‘저주토끼’ 등 한국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온 번역가 안톤 허가 지난해에 발표한 자신의 영문 소설 ‘영원을 향하여’ 한국어판 출간에 맞추어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 해병대직업군인 론회관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저주토끼’는 역시 그가 번역한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과 함께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로 동시에 올랐다. 그 밖에도 신경숙의 ‘리진’과 황석영의 ‘수인’ 등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이자 올해에는 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그는 2023년 한국어로 쓴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를 출간한 바 있다. 취득세 계산기
‘영원을 향하여’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세포를 나노봇으로 대체해 불멸에 이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불치병 치료 차원에서 그렇게 나노봇으로 대체된 한국인 한용훈이 한순간 사라졌다가 며칠 뒤 다시 나타난 사건으로 문을 연다. 그를 담당한 말리 비코 박사는 이 기묘한 사건을 장애인창업자금대출 노트에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그 일기는 ‘미래’와 ‘먼 미래’ ‘아주 먼 미래’로 시점을 옮겨 가며 다른 필자들에 의해 이어 쓰이며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그 미래 시점들에서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형체를 얻으며, 인공지능(AI) 기업이 독재 정권들에 클론 병사들을 공급하다가 기업 자체가 에이아이의 손에 넘어가고, 그렇게 힘과 권한을 지닌 에 1년에 천만원 이아이들이 인류를 절멸시키고자 전쟁을 벌이는 등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런 에스에프적 발상을 토대로 작가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불멸과 필멸은 인간의 정체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존재에게 언어란 도구일 뿐인지 아니면 언어가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인지 같은 진지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
“이 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항공사 종류 이성복 시인에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제가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무한화서’를 영어로 번역 출간했는데, 이 시인이 그 책에서 말하기를 시는 내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언어가 쓰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감명을 받아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소설은 제 밖에 있는 언어가 저 대신 써 주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언어를 위해 종이와 펜을 준비하는 언어의 비서일 뿐 제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용훈이 주도하는 특이점 연구소는 에이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렇게 시를 배운 에이아이들이 미래에 인간적 특성을 획득하며 다른 에이아이들에 맞서 인류를 지키고 인간 정체성을 지속시키는 등, ‘영원을 향하여’에서 언어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나 에이아이보다 더 중요한, 주인공과 같은 구실을 맡는다. 소설 속 한 인물은 “언어는 단순한 도구 이상”이라 말하고, 인간적 특성을 획득한 일기 집필 에이아이는 ‘문학과 이야기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했고 우리는 이들을 영속시키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안톤 허 작가. 오팬하우스 제공
‘영원을 향하여’ 한국어판 출간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번역자가 다름 아닌 정보라 작가라는 것이다. 안톤 허는 ‘저주토끼’뿐만 아니라 정보라 작가의 또 다른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한국어판 원제는 ‘그녀를 만나다’)도 영어로 옮겼는데, 이번 책의 경우 정 작가가 스스로 번역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보라 작가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문학 및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거장과 마르가리타’(미하일 불가코프), ‘브로츠와프의 쥐들’(로베르트 J. 슈미트) 등을 한국어로 번역한 바 있다.
“제 책을 번역하겠다고 누군가 나서주는 건 엄청난 영광이죠. 자신의 책을 번역하는 건 어쩐지 천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피하려고 합니다. 정보라 작가가 얼마나 바쁜 분인지 잘 알기 때문에, 정 작가님이 먼저 번역 제안을 하셨을 때 저는 미안했어요. 번역된 결과를 보니, 제 책이 아니라 정 작가님의 책을 읽는 것 같아요. 번역이 그만큼 잘됐다는 뜻입니다. 제가 쓴 책 같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말은 한국어가 더 편하고 쓰는 건 영어가 더 편하다”는 안톤 허는 “번역과 창작에 별 차이를 느끼지 않는데, 그 까닭은 양쪽 모두 밖에 있는 언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세상에 보여줄 한국문학의 풍요로운 세계가 너무 많아서 번역을 그만두지 않겠지만, 내 소설을 외국에서 번역하겠다며 계약금이 들어오는 것에서도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소설을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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