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리면 어린 시절의 동심(童心)으로 돌아가고 아련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동요(童謠)이다. 이 동요 ‘반달’은 1924년 만들어진 최초의 동요이며 이 동요를 만든 분은 바로 윤극영(尹克榮) 선생이다.
윤 선생은 1903년 경성에서 태어나 교동공립보통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중퇴, 일본으로 건너가 바이올린과 성악을 배웠다.
1923년 일본에서 소파 방정환(方定煥) 선생이 조직한 색동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귀국해서 어린이 합창단을 처음으로 창단하였고 아동문화 운동에 힘쓰신 분이다.
1925년 4월 20일 동아일보에 윤 선생에 대한 기사 하나가 실렸다.
‘
온라인수수료 아름다운 동요 ‘설날’ ‘반달’ ‘소금쟁이’ ‘허잡이’ 등 30여 종이나 작곡하여 발표하고 친히 어린이들을 모아 교수하며 수만의 어린이에게 새롭고 고운 노래를 부르게 한 청년 작곡가 윤극영(22) 씨가 어린이에게 성악을 교수하는데, 그는 다년 동경에 유학하여 성악가로 유명한 선교영길(船橋英吉) 씨에게 사습(私習)하였는데 금년 봄부터는 ‘서울 코러쓰’를 조직
뽀빠이놀이터릴게임 하고 남녀 회원 30여 명을 모집하여 개인으로 교수하리라더라.’
윤 선생은 작곡뿐 아니라 노래도 잘 불렀는데 1934년 4월 27일 조선일보에는, ‘조선 동요계에 끼친 윤 씨의 공적(功績)을 보면 학생 시대는 동경에서 전공하면서 그 동지들과 함께 아동 문제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하였다. 1923년 경성으로 돌아와서는 조선 최초의 동
온라인 릴게임 요 단체인 ‘따리아회’를 조직하여 손수 어린이들을 지도하며 매월 ‘따리아 곡보집’을 발간하는 동시에 조선에서 첫 실험인 동요극을 작곡하여 대갈채를 받았다.
‘반달’ ‘두루미’ ‘고드름’ ‘귀뚜라미’ ‘꾀꼬리’ 등 회심(會心·마음먹은 대로 되어 만족함)의 작(作) 10여 곡을 모아 ‘반달’이라는, 이 또한 조선 최초인 동요 작곡집을 낸 후
릴게임 다빈치 간도(間島) 동흥(東興)중학교의 음악 담임으로 초빙되어 간도로 갔다. 이후 백홍악단(白虹樂團)이라는 음악 단체를 조직해 공헌이 많던 중 15년 동안 닦은 자기의 예술을 고국에 바치고자 1934년 4월 말일경 귀국하여 5월 중순경 처녀(處女·최초) 독창회를 열고 이어서 곧 음악 여행의 도정(道程·여정)에 오르리라 한다.’
훗날 홍난파(洪蘭坡
오션파라다이스 ), 안익태(安益泰), 현제명(玄濟明) 등의 음악가와 함께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가 만든 최초의 동요 ‘반달’은 아직도 우리에겐 그리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낚는 낚싯바늘로 남아 있다. 중국의 한 시인은 술(酒)을 시(詩)를 낚는 낚싯바늘이라 하여 ‘조시구(釣詩鉤)’라 하였다. 힘들수록 위로해 줄 나만의 추억을 낚는 낚싯바늘 하나쯤 필요한 시절이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