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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탄핵정국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시장 상인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형마트에 밀리고 인터넷 쇼핑에 치여 설자리를 잃었지만 재래시장만큼 시흥광명보금자리 민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 곳곳에 침체의 그림자가 내리깔린 지금, 재래시장 사람들은 어떤 연말을 보내고 있을까.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2주가 되던 날, 우리는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마포공덕시장'을 찾았다.
12·3 내란 사태가 터진 지 꼬박 2주가 흐른 12월 17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두곳 요금수납 의 시장을 찾았다. 1930~1940년대 문을 열어젖힌 '아현시장' '마포공덕시장'이다. 설자리가 좁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서민의 삶이 녹아있는 재래시장. 이곳 사람들은 혼란한 정국 속에서 어떤 연말을 보내고 있을까.
어둠이 내리깔리던 오후 5시 아현시장에 들어섰다. 시장 입구부터 찬바람만 오갈 뿐 장보러 나온 사람은 드물었다. 빠른 걸 부산소상공인 음을 옮기던 주부 김서경(가명)씨는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올라서 사람이 없는 게 아니겠냐"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사먹는 게 싸다 싶을 만큼 장바구니 물가가 지나치게 올랐어요. 몇천원이라도 아껴보려고 시장을 찾았는데, 귤 한바구니가 1만원씩 하니 부담스럽네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 9월 이후 3개월 연속(9월 1.6%·10월 가산명사 1.3%·11월 15%) 1%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경씨처럼 이를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보다 채소·과일 등 신선식품은 여전히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브로콜리 가격(이하 11월 기준)은 1년 전보다 42.8%(105.11→150.06), 시금치는 27.0%(92.47→117.48), 상추는 25.5%(110.99→139. 금융계산기다운 30)나 올랐다. 겨울철 대표 과일인 귤 가격은 1년 새 23.2%(131.49→ 162.05) 비싸졌다. 4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하면 76.0%(92.04→162.05)나 올랐다.
신선식품 등 농축수산물 가격이 잡히지 않는 한 1%대 물가상승률을 체감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소비자경기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축수산물(3.5%·이하 복수응답)'은 '공공요금(50.9%)' '석유류제품(32.3%)' 등을 앞지르고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품목으로 꼽혔다.
사람들의 지갑을 얼어붙게 하는 건 치솟은 물가만이 아니다. 장기간 이어졌던 고금리 기조 속에서 대출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3분기에도 가계빚(가계신용 잔액)은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가계대출과 외상거래(신용카드 등)를 합한 가계빚은 1913조8143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9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서민들의 대출 부담을 덜어주고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지난 10월과 11월 2달 연속 기준금리(3.50%→3.00%)를 인하했지만 효과는 더디기만 하다.[※참고: 한국은행이 2달 연속 기준금리를 내린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이다.]
서민들의 '빚 부담'이 줄지 않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어서다. 5대 시중은행(신한·NH농협·우리·KB국민·하나)의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8월 말 5.38%~5.75%에서 10월 말 5.28~5.67%로 0.1%포인트가량 하락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당장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리는 지난 1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12월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한달 정도 경기지표 움직임을 살펴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12·3 사태는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 여파는 상인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노상현(가명)씨는 "나라가 뒤숭숭하니 사람들은 씀씀이를 더 줄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상인들은 일찌감치 셔터를 내렸다. 속옷 등 의류를 판매하는 상인 박숙자(가명)씨는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고 있었지만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면서 "장사가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현시장에서 1.4㎞ 떨어진 마포공덕시장의 상황은 어떨까. '족발골목'으로 이름난 이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을까. 상인들의 답변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포공덕시장에서 20년 넘게 족발집을 운영해온 김영재(가명)씨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주말 반짝 장사가 되는 듯하더니 매출이 도로 제자리"라면서 "저녁은커녕 점심식사도 안 팔린다"고 꼬집었다.
한자리에서 50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임순애(가명)씨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장사도 되는 건데 내란 사태 이후 거리를 다니는 사람 자체가 줄었다"면서 "지난해와 비교하면 매출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이곳 시장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상공인 경기전망 긴급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12·3 사태 이후 12일까지)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고 답한 소상공인이 전체의 36.0%에 달했다. "매출이 30~ 50% 줄었다"는 응답자는 25.5%, "10~30% 감소했다"는 응답자는 21.7%였다.
당연히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소상공인이 많았다 "연말 경기가 부정적일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90%(매우 부정적 61.9%+다소 부정적 28.2%)를 넘어섰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민생회복을 위한 포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일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