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익숙하지만,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본격적으로 투사된 경우는 흔치 않다.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탄생을 둘러싸고 허구적 상상력으로 완성한 로맨스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9)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햄넷》은 정반대의 뿌리에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뻗어 올린다.
《노매드랜드》(2020)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클로이 자오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손끝에서 탄생한 《햄릿》의 기원을 좇는다. 영화는 두 개인이 만나 이룬 가족의 탄생과 그 안에서 발생한 비
바다이야기온라인 극, 그로 인한 거대한 슬픔이 예술로의 승화를 간구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그 가운데 그간 상대적으로 덜 주목돼온 존재인 셰익스피어의 아내에게도 마땅한 비중의 시선이 부여된다. 장엄하고도 영적인 울림부터 치유의 정서까지 오가는 이 작품은 3월 열리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주요 8개 부문 후보에 이미
바다이야기고래 이름을 올린 화제작이기도 하다.
영화 《햄넷》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불멸의 고전 《햄릿》이 탄생하기까지
셰익스피어에게 《햄릿》은 그 유명한 대사처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임을 다루는
바다이야기게임다운로드 작품이었을까. 오랜 세월 다양하고 풍성한 해석을 부른 불멸의 고전은 《햄넷》에 이르러 한 가족의 가슴 저린 사연 끝에서 탄생한 결과물로 재인식된다.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함께 공동 각본가로 참여한 매기 오파렐은 2020년 영화와 동명의 소설을 펴낸 작가다. 그는 문학 연구자 스티븐 그린블랫이 펴낸 에세이 《햄넷의 죽음과 햄릿의 탄생》에서 영
바다이야기꽁머니 감을 얻었다.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넷이 11세에 사망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해 몇 년 후 그가 《햄릿》을 발표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전염병 확산이 셰익스피어 가족의 집까지 당도하는 소설 속 과정은 영화에서 생략됐고, 대신 극작가로의 성공을 위해 대도시 런던으로 떠난 남편 대신 가족을 지키며 감내한 아내 아녜스의 희생과 고통의 과정을 집중적으로 옮
바다이야기비밀코드 겨왔다. 16세기 영국에서 햄릿과 햄넷이 사실상 같은 이름으로 쓰였다는 언어학의 기록도 상상력의 이음새 중 하나가 됐다.
울창한 숲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자연을 체화하는 삶을 사는 야생적 면모로 '마녀'라 불리기까지 하는 아녜스(제시 버클리). 그녀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아녜스 집안의 농가에 새로운 라틴어 교사로 온 윌리엄(폴 매스칼)의 눈에 비친 한없이 자유롭고 무한한 세계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이내 사랑에 빠지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부의 연을 맺는 초반의 묘사들은 최선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걸음을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진입로다.
민감한 영적 능력을 지닌 아녜스는 첫딸을 낳은 몇 년 후 쌍둥이 남매를 낳는데, 그녀는 자신의 꿈에서 세 아이가 아닌 두 아이가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는 모습을 보았노라고 말한다. 아녜스가 길들였던 매의 죽음, 나무를 감싸며 윙윙거리는 벌떼들, 집 안으로 물이 넘쳐 들어오는 홍수의 이미지가 서서히 불안의 정조를 만드는 사이에도 영화의 장면들은 가족에게 존재했던 밀도 높은 사랑의 순간들을 조명한다. 이는 파도 같은 슬픔이 이들을 덮친 이후 앞서 보았던 것들이 잔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대비를 이룬다.
전염병이 부모로부터 자식을 앗아간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나 지킬 수 없었던 부모는 무력하다. 어린 아들을 잃고 짐승처럼 절규하던 아녜스가 절망에 깊이 잠식되는 동안 윌리엄은 가족의 곁에서 슬픔을 함께 나누는 대신 무대를 위한 글을 쓰는 일에 몰두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의 대사가 아니라 윌리엄의 자조를 통해 발화되는 이 문장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의 고뇌라기보다 죽음이라는 비가역성 앞에서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의 존재론적 고민의 언어로 등장한다.
영화 《햄넷》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햄넷》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예술이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궁극의 것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연극 《햄릿》의 초연 장면은 《햄넷》이 당도하고자 했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하게 담아내는 감정적 클라이맥스다. 윌리엄의 연극을 보기 위해 런던 글로브 극장에 들어선 아녜스는 혼란과 분노를 먼저 느낀다. 아들의 죽음이 윌리엄이 창작한 글의 영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녜스는 차츰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또한 자신의 감응으로써 윌리엄이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깊은 고통을 감내했음을 깨닫는다. 아들이 부재한 자리에 윌리엄이 불어넣은 것은 죽음 이후의 영원이다.
삶의 가까이에는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비극이 늘 존재하기에 인간은 구원을 바라고, 삶의 대체로서의 예술을 빚고 꿈꾼다. 그 마음이 탄생시킨 것을 우리는 카타르시스라 부른다. 영혼이 통째로 찢기는 듯한 통감 뒤의 정화. 《햄넷》은 카타르시스의 실체가 되고자 한다. 이때 불특정 다수가 모여들어 함께 웃고 눈물 흘리는 극장은 애도와 위로를 바탕으로 한 집단 치유의 공간이다.
예술 작업은 창조하는 사람의 개인적 차원의 승화일 때도 있지만 폭넓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집단적 제언일 때도 있다. 마치 종교적 의식과도 같은 영화 속 연극 무대의 장면들이 이를 증명하며, 글로브 극장의 장소성은 어느덧 《햄넷》을 보고 있는 관객 각자가 앉아있을 영화관으로 확장된다. 극장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홀로 슬픔을 감내할 수도 있는 인간이 스스로 함께 목 놓아 울기를 택하는 공공의 장소다. 예술과 삶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너른 장이다.
셰익스피어 가족의 슬픔을 《햄릿》에 빗대어 해석하는 것이 정론일 수는 없다. 어린 햄넷의 죽음과 《햄릿》의 창작 사이에는 실제로 여러 편의 희곡이 더 존재하고, 셰익스피어가 느낀 공포와 비극은 《맥베스》 같은 다른 작품에 겹쳐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햄릿》의 탄생을 둘러싼 이 대담하고 창의적인 해석은 어슴푸레한 개념적 존재에 가까웠던 아녜스와 윌리엄 그리고 그의 희곡에 생생하게 뛰는 심장과 인간의 눈물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야기가 생명을 얻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릭터의 복합성을 놀라운 공감의 영역으로 완성해낸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왜 그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는지를 단번에 납득하게 한다. 《비스트》(2017), 《와일드 로즈》(2018), HBO 드라마 《체르노빌》(2019),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로스트 도터》(2022) 등의 작품을 통해 특유의 재단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캐릭터의 가장 불편하고도 문제적인 지점까지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해석력을 보여온 배우다. 매해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이미 그의 품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