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견문발검]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 미국 언론 Floodlight의 ''다른 규칙' : 열화상 드론 영상, 머스크의 AI 발전소가 대기오염 방지 규정을 위반하는 모습 포착 ('A different set of rules' : Thermal drone footage shows Musk's AI power plant flouting clean air regulations)' 보도 갈무리
얼마 전, 한 영상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이 화제였다. 일론 머스크의 인공지능 기업 xAI의 데이터센터가 몰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을 찍은 드론 영상. LNG 발전소 굴뚝으로 이산화탄소, 포름알데히드, 질소산화물 같은 독성물질이 쉼없이 방출되고 있었다.
[관련 기사 : Floodlight) '다른 규칙' : 열화상 드론 영상, 머스크의 AI 발전소가 대기오염
야마토게임방법 방지 규정을 위반하는 모습 포착 ('A different set of rules' : Thermal drone footage shows Musk's AI power plant flouting clean air regulations)]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xAI 데이터센터도 논란이었다. 이곳 주민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건설 과정에서 시
릴게임골드몽 의회 승인과 주민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다. 일론 머스크는 지역 투자 명목으로 공무원들에게 비밀유지협약을 쓰도로 강제했다. 허가받지 않은 수십 개의 가스 터빈에서 오염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그 덕에, 이 지역 암 발병률은 전국 평균의 네 배에 달한다.
그뿐 아니다. 최근 미국 AI 기업들은 일론 머스크처럼 국가 공급망에서 분리되는 독립형 전
릴짱 력망으로 선회하는 중이다.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국가 전력망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은 공적 규제와 데이터센터 반대운동을 우회하기 위해 사적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전력의 사유화가 기후위기를 가속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간헐성을 핑계로 재생에너지를 회피한 채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에 집중하는 탓이다.
바다이야기5만 ▲ 데이터센터. 사진=gettyimagesbank
앞서 건설되고 있는 미국 데이터센터들은 이렇게 에너지와 이익은 사유화하고 오염 비용을 지구와 공동체에 투기하는 신자유주의적 축적 기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가난한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물과 전기를 축내는 대신 지역 환경을 망가뜨리는, 규제받지 않는 자본의 식민화다. 데이터센터가 건설되는 지역마다 세금 혜택과 기업 지원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수도세와 전기세가 인상되고, 지하수가 고갈되며, 대기오염과 각종 질병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감소한다.
당연하게 저항이 점점 거세진다. 데이터센터 맵에 따르면, 770개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중 최소 99개가 반대에 직면했고 지난해에도 수십 건의 건설이 중단됐다. 반대에 민주당, 공화당 구분이 없다. 말 그대로 초당적이다. 현재 6개 주에서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 법안이 발의됐고 일부 지역에선 데이터센터 반대가 선거 의제가 됐다. 보수적인 플로리다 주지사도 반대하고, 좌파 정치의 좌장격인 버니 샌더스는 아예 데이터센터의 전국적 모라토리엄을 촉구하는 실정이다.
결국 민주적 통제에 대한 이야기다. AI와 데이터센터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공공 자금은 어디에 쓰이는지, 또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숙의 민주주의를 요청하는 시민 저항인 것이다. 투명한 절차와 의사결정 과정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각종 손실과 기후 환경적 피해를 당해야 하는 시민들 입장에서 당연히 걱정과 분노가 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국내에 오면 이런 걱정과 민주적 통제 요구를 그저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에 역행하는 시대착오로 취급한다. 우려와 질문을 던지면 낙오자처럼 대하기 일쑤다.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로봇 도입에 대한 노사 합의 요청을 수레와 러다이트 운동에 빗대며 이렇게 말했다. “(증기기관 도입 뒤엔) 증기기관을 조정하고 수리하는 기능이 필요하지 않나. 거기에 빨리빨리 적응해야 한다.”
편향적 역사관이다.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은 증기기관에만 적응했던 걸까?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법 투쟁을 전개했고, 이어 보통선거권과 공공 서비스를 쟁취했다. 생산성 증가와 이윤 축적을 위해 자본가들이 도입한 원동기와 기계장치에 대한 부단한 투쟁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이렇듯 민주적 통제의 역사도 장강처럼 흐른다.
▲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사진=flickr
버니 샌더스는 일자리를 잃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고, 의료서비스를 받고, 집세를 낼 수 있을까요?” 물으며 로봇세를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런 토론을 하자며 데이터센터 건설의 일시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 질문이고, 최소의 정치다.
최소의 정치란 갈등 중재다. AI와 노동자 사이의 중재, 정확히 말하면 AI를 앞세운 자본과 노동자의 중재,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더 나아가 대다수 사람에게 기술을 이롭게 구성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 통제다. 정치도 싫고, 민주적 통제도 싫고, 그저 시장과 AI 로봇의 윤활유로 기능하고 싶다면 대통령부터 국회의원까지 모두 AI로 대체하는 건 어떤가? 대세에 따라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AI 우상 숭배의 필연적 결론 아닌가. 도대체 노동자만 수레에 깔릴 이유가 뭔가?
AI 거품과 최악의 금융위기, 자본 과두제, 디지털 감시 체제, 일자리 상실, 경제 불평등,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등 산적한 질문들을 봉인한 채 인공지능 수레바퀴가 전진한다. 거기에 깔려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봉인을 뜯고 질문들을 쏟아내야 한다. 그 질문들에 대한 토론과 숙고, 그것이 정치다. 그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