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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만 한 발 홀드를 밟고 종잇장같이 얇은 틈을 당겨 잡는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다리도 덜덜 떨린다. 땀이 삐질 삐질 난다. 몇 동작 올라와 뛰어 내릴 수도 없다. 다음 홀드도 별로다. 두려움에 온 몸이 뜨겁다. 손을 뻗어 홀드를 잡는다. "탁" 손가락 힘이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다. 추락이다. "으악!" 30m 같이 느껴지는 3m 추락. 발목이 부러졌다. 앞으로 석 달은 족히 등반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차오른다.
첫 야외 볼더링이다. 불암산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머릿속엔 온갖 상상이 오고 갔다.
가중평균
1 조규복씨가 망치볼더를 등반한다. 잘못 추락하면 위험할 수 있어 스팟을 잘 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볼더링이란 암벽 등반의 한 형태로 로프나 허리벨트 등의 확보 장비 없이 짧은 높이의 바위를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볼더링은 다른 등반에 한국주택공사법 비해 필요한 장비가 적고 특별한 시스템 없이 직관적이라는 점에서 취미 스포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실내 인공암벽 등반을 넘어 자연의 '진짜' 바위를 등반하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말 그대로 누군가가 '데려가 주어야'만 갈 수 있다.
월간산에서 진짜 바위를 찾는 이들을 신탁등기 위해 볼더링 투어에 착수한다. 전국의 자연 볼더링지를 소개하고 정보를 정리해 알리고자 한다. 이 취재의 취지는 진짜 바위의 맛을 알리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데에 있다. 등반가들이여 밖으로!
처음으로 붙어본 마당3 문제. 손끝이 베일 듯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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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저 떨어져요!
"여기서 바로예요. 저기 앞에 큰 바위 보이죠? 그 뒤쪽으로 조금만 가면 돼요."
불암사에 내려 등반지로 향하는 길, 바위들이 가득 놓여 있다. 비슷하게 생긴 바위들은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조규복클라이밍센터의 정기예금 금리비교 센터장이자 오늘의 등반지인 불암산 볼더링지의 개척자 조규복(58)씨가 앞장섰다. 성큼 성큼 거침없이 걷더니 어느 순간 옆으로 휙 꺾어 들어간다. 길 같지 않은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널찍한 마당바위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옆을 올려다보니 커다란 돌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널브러져 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바위들이 굴러왔을까?
Small Giant의 루트를 살피고 있는 김명수씨. 급상승한 난이도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던졌다.?
오늘의 베이스캠프는 마당바위다. 취재 중 등반한 불암산 볼더링지는 크게 두 구역이었는데 마당바위 근처의 바위들과 등산로 건너편의 바위군락이다. 편의상 마당바위 구역과 왼쪽 구역으로 부르겠다. 둘은 불암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뉘어 위치한다. 등산로를 따라오다 케른이 쌓여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마당바위 구역이 나오고 왼쪽 길로 가면 왼쪽 구역이 나온다. 마당바위 구역에는 VB~V5까지의 비교적 낮은 난이도의 문제들이 많다. 왼쪽 구역에는 V6 이상 높은 난이도의 문제들이 주로 분포해 있다. 마당바위 위쪽으로도 등반이 가능한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마당바위에 짐을 모아두고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 첫 바위 앞에 우뚝 섰다.
"여기에 루트가 있다고요?"
해가 드니 차갑기만 하던 바위에 온기가 돈다. 바위에 앉아 햇빛을 즐기니 이보다 여유로울 수 없다.
함께 온 김명수(46)씨가 손에 초크를 묻혀 홀드를 콕콕 찍어주었다. 홀드는 바위 표면의 튀어나오거나 들어가 손으로 잡거나 발로 밟을 수 있는 부분을 말한다. 초크를 묻힌 곳은 '홀드'보다는 '돌기'에 가까웠다. 아주 작다.
"여기, 여기 잡고 발 찍고 쭉 뻗어서 여기 잡으면 돼요."
말로는 쉽다. 안간힘을 써 가까스로 팔을 뻗었다. 척, 하고 잡힌 다음 홀드는 나를 뱉어내듯 벽에서 떨어뜨려버렸다. 실내 암장의 친절한 홀드들과 다르다. 까칠하다. 추운 날씨에 손이 얼어 아프다. 몇 번 더 시도하다 다른 바위로 옮겼다.
이번에는 완만하게 올라가는 슬랩 문제였다. 슬랩은 평평하고 매끈한 넓은 바위를 말하며 특별히 안정적인 홀드가 없어 마찰력과 몸의 밸런스를 이용해 등반한다. 고요함 속에 발을 옮긴다. 손과 발을 교차로 올리며 바위를 조금씩 오른다. 긴장감이 감돈다. 오를수록 바닥에 깔린 매트와 멀어진다. 발목이 똑 부러지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참을 올라왔는데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 '큰일이다.' 뛰어내리기엔 이미 늦었다.
"으아아아, 저 좀 잡아주세요!"
위에서 루트를 봐주던 명수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내려갈 수 있어요?"
"아니오! 없어요! 저 놓으시면 안 돼요!"
두려움에 소리쳤다. 명수씨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조금씩 아래로 내려졌다. 스팟을 보던 조규복씨가 내 허리를 받쳐 안전 착지시켜 주었다.
"으하하하! 쉽지 않죠?"
그는 초보의 발버둥이 웃겼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암벽화를 갈아신으며 등반 준비 중이다.?
커다란 크래시 패드는 몸 전체를 다 가린다. 뒤에서 보면 다리만 보여 마치 커다란 네모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무겁지는 않지만 문 하나를 지고 가는 것과 비슷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다. 크래시 패드는 야외 볼더링의 상징이자 필수 준비물이다. 볼더링 패드라고도 불리는 크래시 패드의 용도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주된 일은 등반자가 추락했을 때 부상을 막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배낭의 역할도 한다. 반으로 접은 패드의 윗부분을 벌려 암벽화나 초크백 등 간단한 짐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돗자리도 되어준다. 두툼한 두께의 크래시 패드는 휴식 시 훌륭한 돗자리다. 크래시 패드를 마당바위에 펼쳐 깔고 한 자리씩 차지했다. 크래시 패드에 앉아 듣는 볼더링 이야기는 더욱 생생하고 현장감 넘쳤다.
마당바위에 앉아 등반이야기를 나누었다.?
살랑 살랑 부는 여유, 여유
불암산 볼더링장은 2006년, 조규복씨와 차호은씨를 주축으로 한 조규복클라이밍센터 회원들에 의해 개척되었다. 조규복씨는 볼더링을 한국에 정착시킨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우리나라 1세대 볼더러다. 미국 요세미티에 등반 원정을 떠났다 우연히 만난 볼더링 성지 비숍에서 볼더링에 푹 빠졌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볼더링지 개척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13년, 볼더링 투어를 다니며 개척한 운일암반일암 계곡에서 볼더링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일명 '진안 세션'이라고 불린 볼더링 페스티벌은 4회까지 이어졌다.
"자연 바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어요."
그는 온몸의 근육을 쓰며 바위를 오르는 것과 바위에 널브러져 쉬며 여유를 즐기는 것을 동일한 가치로 묶어 '자연 볼더링'에 포함시킨다.
"같이 낙엽 밟고 올라와서 바위에서 쉬고, 그러다 또 열심히 바위에 붙고, 성공하면 박수도 쳐주고… 그러다 또 잠깐 바람 쐬면서 쉬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또 땀 뻘뻘 흘리면서 붙고! 이런 게 자연 볼더링 아니겠어요?"
소풍 나온 듯 부리는 여유 속 튀어나오는 열정이 영락없는 등반가의 모습이다.
해가 꼭대기를 찍고 반대편으로 넘어갈 때 쯤 왼쪽 구역으로 이동했다. 'Small Giant'라는 불암산의 대표 문제로 향했다. 바위의 결이 곱다. 손톱보다 얕은 턱에 하얗게 초크의 흔적이 묻어 있다.
Small Giant를 등반하는 김명수씨. 손끝에 겨우 걸린 홀드가 아슬아슬하다.
"이걸 잡고 오른다고요?"
믿을 수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명수씨가 암벽화를 신는다. 무언가 보여 주려는 듯 비장한 눈빛이다. 패드를 차곡차곡 깔고 지긋이 스타트 홀드를 잡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등반 시작이다.
한 마디가 겨우 걸쳐지는 홀드다. Small Giant는 작은 홀드를 잡고 밸런스를 맞춰서 올라야 하는 직벽 문제다. 명수씨는 신중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 그의 등반은 티끌 하나 없이 부드럽고 우아했다. 살금살금 움직였다. 고양이 같았다. 그의 모든 동작에는 확신이 묻어났고 정확하게 찍은 발은 터지는 법이 없었다. 스-윽 올라 탑 아웃(등반하여 바위 위에 완전히 올라 서는 것) 성공! 속으로 외치던 감탄을 뱉어 냈다.
"와… 너무 멋져요!"
완등을 해낸 명수씨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아유 어렵네요."
이번에는 조규복씨가 이름 붙인 'Triple X'로 향했다.
"딱 보는데 바위에 X자 세 개가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이름을 지었죠."
Triple X를 등반하는 김명수씨.?오른쪽으로 몸을 넘겨 훅을 거는 동작을 완벽히 성공해냈다.
짜릿한 고요함과 완등의 전율
Triple X 또한 불암산 인기 문제다. 도착해 바라본 바위는 무시무시한 인상이었다. 크게 갈라진 크랙은 흉터가 진 해적의 눈 같았다. 시도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아 이번에도 명수씨의 등반을 지켜보았다. 어김없이 공기가 고요해졌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스타트 동작이 지나고 부웅 몸을 날려 오른발로 훅을 거는 데 성공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멋지게 완등하고 내려온 그에게 볼더링을 잘하기 위한 팁을 물었다.
"손가락 힘, 그리고 밸런스, 그리고 꾸준히 바위를 만지는 거요. 진짜 바위를 많이 만져봐야 감이 늘어요. 자연 볼더링을 잘하고 싶으면 자연 볼더링을 많이 하면 됩니다. 지름길은 없어요."
뾰족한 팁 같은 것은 없었다. 정면돌파. 마음에 쏙 드는 조언이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자연 볼더링은 춥고 아프고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등반이 끝나갈 무렵 마음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도 반짝거렸다. 완등까지의 그 짜릿한 고요함이 계속 생각났다. 나는 한 달 후, 또 여섯 달 후 그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산 후 조규복씨가 추천하는 맛집에서 국밥을 먹었다. 숟가락을 들며 또 다시 등반 얘기를 시작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바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뚝배기가 텅 비어 있었다.
맛집소개
불암사에서 내려오는 길 위치한 옛집해장국은 조규복씨의 오랜 단골 맛집이다. 8,000원짜리 해장국에는 선지, 시래기, 콩나물과 고기가 가득 붙은 뼈 한 점이 들어 있다. 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맛이 좋다. 등반 후 든든하게 먹고 가기 딱 좋은 한 그릇 식사다. (월요일 휴무)
문의
0507-1319-0550
주소
경기 남양주시 불암산로 96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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