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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 역대 최고인데…경제허리 3040은 취업난 왜?
   독고민운  (19-06-13 09:01)
조회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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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공공일자리 증가로 전체 고용률은 올라
- 제조업 부진 때문에 실업률 여전, 3040 ‘한파’
- 60대 ‘고공행진’, 40대 고용률 ‘나홀로 추락’
- 국민 세금 쏟아 만든 일자리만 느는 부작용

인천시 남구 노인인력개발센터에 구직 신청을 하려는 어르신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지난달 고용률이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60대 이상 고령 취업자가 급증하면서 취업자 증가 폭이 25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통계청은 “고용이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전체 고용률이 높은데도 마냥 박수칠 수는 없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30·40대 취업자가 10만명 안팎으로 급감했고 실업률도 더 높아졌다. 제조업 부진에 따른 고용한파를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어 온기를 불어넣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6개월째 수출 감소→제조업 부진→고용 한파

높은 고용률에도 ‘고용 한파’가 풀리지 않는 것은 제조업 부진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이하 전년 동월 대비)’에 따르면, 제조업 취업자는 7만3000명 줄어 작년 4월부터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반도체, 유무선 통신장비 관련 전자부품 제조와 전기변환제어 등 전기장비 제조 부문에서 취업자가 감소했다.

김영훈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과장은 “반도체 등 주요품목 수출 부진이 제조업 취업자 감소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수출은 작년 12월부터 지난 달까지 6개월 연속 전년대비로 감소했다. 품목별로 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이 30.5%, 자동차부품 수출이 7.5%씩 전년보다 감소했다. 이런 결과가 고스란히 취업자 감소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제조업 부진으로 ‘경제 허리’인 30~40대 취업자가 잇따라 감소했다. 40대는 17만7000명, 30대는 7만3000명 각각 취업자가 감소했다. 40대 취업자는 12개월째, 30대 취업자는 20개월째 전년동월 대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40대 고용률은 0.7%포인트 줄어, 고용률이 전 세대 중에서 유일하게 감소했다. 제조업 부진이 40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30~40대 취업 부진이 계속되다 보니 실업률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실업률은 4.0%로 작년 5월과 같았다. 실업률은 지난 1월부터 5개월 연속으로 4%대다. 이는 IMF 외환위기 때인 19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12개월 연속 4% 이상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체감실업률인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은 12.1%로 작년 5월보다 0.6%포인트, 청년층(15~29세) 고용보조지표3은 24.2%로 작년 5월보다 1%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취업준비생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을 보면 고용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다은 기자
◇단기 취업자 ‘역대 최대’ 증가

고용률 지표에도 ‘불편한 진실’이 있다. 지난달 15~64세(OECD 비교 기준) 고용률이 67.1%를 기록해 1989년부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5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경제활동참가율(64%)도 1999년 6월 통계 기준을 변경한 이래 5월 기준으로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역대 최대’ 기록에 마냥 박수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고용률을 이렇게 끌어 올린 게 단기 일자리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취업시간대별 취업자 수를 보면 주당 평균 취업시간이 1~17시간인 취업자 수가 181만4000명으로 작년 5월보다 35만명이나 늘었다. 35만명이나 늘어난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5월 기준 최대치다.

이런 단기 일자리는 주로 공공일자리, 60대 이상 일자리에 집중됐다. 지난달 가장 많이 취업자가 증가한 업종은 공공일자리가 많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12만4000명)이었다.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취업자가 4만7000명 증가한 것도 도서관·사적지·박물관 등 공공일자리가 늘었기 때문이다.

취업자는 60대 이상 취업자가 가장 많이 늘었다. 60세 이상에서 35만4000명, 50대에서 10만9000명, 20대에서 3만4000명 각각 증가했다. 고용률 증감 규모도 65세 이상에서 1.3%포인트 증가해 전세대 중에서 가장 많이 증가했다. 자유한국당 전략기획부총장인 추경호 의원은 “국민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만 대폭 증가했다”며 “앞으로의 고용 전망도 캄캄하다”고 꼬집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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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위해 산책 나올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 세워 놓으셔” 마음에 민족애 생겨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왼쪽)가 정의여학교에 다닐 때 모습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상당수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적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1910~20년대 조선땅의 일본인들은 사회의식이 강한 여성이 독립운동을 펼쳐 식민지 조선을 잃을 것에 대비해 계략을 펼쳤다. 여성교육의 목표를 현모양처로 정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은 ‘오덴바(말괄량이를 뜻하는 일본 말)’라고 가르쳤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말괄량이가 아닌,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이 되고자 했다. 그런 까닭으로 김활란 고황경 김마리아 선생 등이 가졌던 애국심은 희미해져 갔다.

일본어와 일본 역사는 배웠지만, 한글과 한국 역사는 배우지 못했다.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전시체제로 들어가면서 일제의 포악성은 더 심해졌다. 창씨개명을 통해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쇠붙이는 모두 공출해갔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위문품 주머니인 위문대 만들기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체육 시간엔 목검(木劍)을 배웠다. 오후가 되면 근로봉사로 대동강 모래사장에 나가 땡볕 아래서 리어카에 모래를 실어 나르는 작업을 했고 일본군의 식량 확보를 위해 가을엔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1930년대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도 부엌일을 감당해야 했다. 나 역시 캄캄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지어야 했다. 아궁이에 솔가지를 놓고 신문지 같은 불쏘시개에 불을 붙였다. 성냥을 그어 불이 붙으면 신문지나 솔가지에 가만히 불을 대야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성냥불이 붙자 무서워서 아궁이에 휙 던져 버리곤 했다. 목재상에서 사온 톱밥은 뱅뱅 돌리는 풍구로 바람을 넣어야 불이 붙었다. 적당한 양을 부어 가며 풍구로 바람을 넣어 능숙하게 불을 붙이기까지 족히 1년이 넘게 걸렸다.

정의여자보통학교 시절 소풍으로 학교에서 멀지 않은 대성산 송태에 가게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산에 올라가는 길에 돌더미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작은 돌을 쌓아 놓은 듯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선생님께 여쭸다.

“저 돌더미는 안창호 선생님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산책 나올 때마다 하나씩 세워 놓으신 거란다. 조선의 자주 독립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을 세워 놓으신 거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나는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조선의 독립이라니.’ 그동안 누구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대적 상황들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 조선장로교총회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주기철 목사님이 출교됐다. 학교에선 선교사이자 교장인 헐버트 선생님이 앞장서 가시면 학생들은 모두 뒤따라 가 신사참배를 하곤 했다. 학교 내에선 일본 말만 해야 했고 일본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들었다. 일본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거나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하면 한국말을 하다가도 입을 닫아야 했다.

‘도산 선생은 얼마나 조선 독립의 열망이 대단하셨기에 이처럼 크고 작은 돌을 하나하나 산책길에 세워 놓았을까. 그래! 나는 조선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백성이다. 나도 내 나라 독립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이다.’ 처음으로 신념이란 게 생겼다. 가슴에 ‘조선인 주선애’를 확실히 새기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 그 신념이 소녀 주선애의 마음에 뿌리내린 민족애였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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