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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에서 눈 감아…동교동 시대, 역사의 뒤안길로
2018년 1월 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합동하례식에 참석한 이희호 여사. (뉴스1 DB) 2019.6.9/뉴스1(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이형진 기자 =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영원한 동반자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병세가 악화돼 오후 11시37분 끝내 눈을 감았다.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대 여성으로선 보기 힘든 인텔리였다.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무 등 1세대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 여사는 가난한 정치 재수생이었던 DJ와 만나 1962년 결혼한 뒤 지난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살아왔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후 김 전 대통령 함께 정치적 고락을 함께 했다. 1972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1973년 납치사건, 이후 가택연금과 투옥,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수감, 미국에서 귀국한 뒤 가택연금 등 정치적 고난을 함께 견뎌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네 번째 도전한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이 여사는 7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고 '사랑의 친구들', '여성재단'을 만들어 활발한 대외 활동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재직 중 2002년 3남 홍걸씨, 차남 홍업씨가 연달아 구속되면서 참담함을 맛봐야 했고, 퇴임 직후엔 '대북송금 특검'으로 또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서거하면서 47년에 걸친 김 전 대통령과의 부부생활은 마감했지만,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행사를 개최하는 등 김 전 대통령의 유업을 잇기 위해 힘을 쏟았다.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는 등 햇볕정책의 계승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 여사가 별세함에 따라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이어져왔던 '동교동 시대'도 완전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유족으로는 김홍업, 홍걸 2남이 있다.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이 여사에 앞서 지난 4월20일 별세했다. 아들 가운데 홍걸씨가 DJ와 결혼해 낳은 친아들이다.
h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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