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노란색 뷰익'.
우리나라에 대종상이 있고, 미국에 오스카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세자르상이 있다. 매년 프랑스 영화계 최고의 영예로 수여되는 이 상의 트로피는 그 형태가 독특하다. 황금색이긴 하지만,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한 이 청동 덩어리는 누군가가 힘껏 짓눌러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 트로피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이탈리아계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인데, 트로피에 따라 영화제의 이름이 붙은 흥미로운 역사의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세자르가 오랜 기간 천착한 주제가 '압축'이었기에 이 트로피의 거친 벽돌 같은 형태는 이미 영화제가
백경릴게임 시작한 1976년 전부터 그의 고유한 스타일이었다.
여기 납작하게 눌린 거대한 노란색 철 덩어리 작품도 세자르의 1961년작 '노란색 뷰익'이다. 노란색 에나멜 도료와 녹슨 철, 크롬과 유리 파편이 뒤엉킨 표면으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방불케 하는 색면을 보여주면서도, 살짝 보이는 로고 때문에 이 금속 덩어리가 미국산 자동차 뷰익이었음을 확
우주전함야마토게임 실히 알 수 있다.
세자르가 폐차장에서 산업용 유압 프레스로 금속을 압축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이었다. 처음에는 고철 파편, 철사 뭉치, 공장 폐기물을 압축하면서 그 감춰진 밀도와 무게를 드러내 보이는 실험을 했는데, 무엇이 압축된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분명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세자르는 결국 자동
사아다쿨 차를 선택했다.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자유와 욕망과 지위가 응축된 오브제로서, 이를 압축하는 것은 소비문명 전체를 유압 프레스로 눌러버리는 행위와 같았다. 세자르는 만들고, 쓰고, 결국 버리는, 석유라는 화석연료로 달리는 산업문명의 끝없는 사이클을 하나의 덩어리로 응축시킨 것이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넘었다
바다이야기하는법 .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세자르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당시보다 전 세계 자동차 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인간의 활동이 지질학적 흔적을 남길 만큼 지구 자체를 바꿔놓아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까지 통용되는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됐다. 이런 변화의 요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탄소퇴적층과 미세플라스틱이
야마토게임하기 었는데, 화석을 태운 인간의 문명이, 스스로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자르가 이런 자동차 압축 작업을 하던 1960년대 초도 인류세의 기점으로 지목된 시기와 엇비슷하게 겹친다. 당연히 그는 인류세라는 단어를 몰랐겠지만, 그 시대의 본질을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수억 년 전 생명체가 땅속에서 압축되고 퇴적돼 만들어진 '화석'을 연료로 삼아 우리는 문명을 굴려왔다. 그리고 그 연소의 흔적이 다시 지층에 쌓이고 있다. 세자르는 화석연료로 달리던 자동차를 덩어리로 압축시키는 행위를 통해 태우고, 버리고, 눌리고, 굳는 우리 문명이 지구에 새기고 있는 순환의 고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기름값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화석연료가 원활히 수급되지 않으면 문명 자체가 멈춘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할 시간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은 이제 환경론자의 이상이 아니라 문명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됐다. 에너지 원천을 다변화하고 생산과 소비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짜 전환이다.
미술은 종종 사회가 미처 언어화하지 못한 것을 먼저 시각적으로 제시해준다. 세자르는 이미 오래전에 화석을 태우는 문명이 결국 스스로 화석이 되리라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그것의 전위적 예술행위만 분석했을 뿐, 무분별한 소비사회에 대한 경고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소한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층이 되고, 역사가 되고, 인류세라는 이름의 화석이 됐다. 다음 지층에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 선택은 과학자나 미술가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