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600여권의 책을 디자인한 박연미씨는 현재 대구에서 ‘넥스트 페이지’를 운영하며 1인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 제공
600권의 책을 디자인한 18년차 베테랑“책은 글자로 지어진 집…마감이 영감”편집자·마케터·저자와의 소통 강조
“책은 글자로 지어진 집입니다. 책을 열기 전에는 기대를 품게 하고, 책을 덮은 후에는 고유한 여운을 남기는 상상의 여지를 마련해주는 디자인. 그런 디자인이 좋은 북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박연미 북디자이너에게 책은 집이자 공간이자 하나의 세계다. 그가 단순히 ‘예쁜 표지’
릴게임한국 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목의 타이포그래피적 해석과 레터링, 종이와 제본 같은 물성의 선택과 구현 등으로 ‘촉각적으로 읽히는 디자인’을 지향하는 이유다. 그것이 그가 비교적 젊은 연차였던 2022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수여하는 한국출판공로상 디자인 부문을 수상한 배경이기도 하다.
2009년 시공사에서 첫발을 뗀 그는 민음사를 거쳐 독립
릴게임하는법 한 18년차 베테랑 북디자이너다. 지금까지 그가 옷을 입힌 책은 약 600여권. 민음사에서 작업한 ‘밀란 쿤데라 전집’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문학잡지 ‘릿터’ 등이 업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대표작들이다.
‘밀란 쿤데라 전집’의 표지는 초현실적 이미지와 상징적인 그림 요소를 통해 쿤데라 작품이 가진 존재의 가벼움과
바다이야기하는법 무거움, 실존과 기억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세련되게 시각화했다. 각권이 고유한 개성을 지니면서도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감을 유지해, 컬렉션으로서의 소장 가치를 끌어올렸다.
특히 10년에 걸쳐 번역·출간된 13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샤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
바다이야기슬롯 며 누적 판매 부수 25만부를 넘겼다. 그는 이 작업으로 출판계에서 드물게 디자인 성과에 대한 특별 보너스를 받기도 했다. 2016년 창간된 ‘릿터’의 디자인 역시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책임지고 있다. 판형부터 본문 구성, 서체까지 기존 문예지의 전형에서 벗어난 실험은 잡지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대중들의 뇌리에 가장 널리 각인
릴게임추천 된 작품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이다. 10만부 이상 판매되며 여러 리커버 에디션으로 제작된 이 책은 부드럽고 감성적인 디자인을 통해 과학서에 대한 접근 장벽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생각하는 북디자인의 핵심 요소는 타이포그래피다. 대중은 흔히 화려한 일러스트나 강렬한 색감에 먼저 눈길을 주지만, 그는 글자 자체가 가진 힘에 주목한다. “그림이나 사진을 쓰더라도 결국 전체를 이끄는 건 글자예요. 책의 첫인상이 되는 표지는 서체의 종류와 크기, 배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고, 본문의 서체는 독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읽기의 리듬과 밀도를 결정하죠. 출판계가 워낙 보수적이라 본문 서체의 변화가 크게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그 안에서도 시대마다 글자 사이·글줄 사이 공간, 한글·영문·숫자 서체 조합 등 미묘한 변화와 실험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는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교지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북디자인을 시작했다. 이후 오진경 북디자이너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글꼴 디자이너 안상수 교수 밑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세부 전공을 편집디자인으로 선택했다. 기업 브랜딩이나 광고, 웹 디자인 등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북디자인에 끌렸던 이유에 대해 그는 “책이 가진 오랜 생명력”을 꼽았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디자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곁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또 북디자인은 저연차라도 한명의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맡아서 하거든요. ‘이건 내 작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물성을 가진 결과물이 남는다는 것도 큰 기쁨이죠.”
현재는 ‘넥스트 페이지’라는 1인 기업으로 일하고 있는 그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자질은 소통 능력이다. 한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 편집자와 마케터, 때론 저자와의 숱한 소통을 거쳐야 한다. “왜 이 크기인지, 왜 이 색깔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냥’은 답이 될 수 없거든요. 주관적인 감각이라도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 역시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1년에 30권 넘게 작업하는 그에게 ‘디자인의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고 묻자, 그는 “마감이 영감의 원천”이라며 웃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찾을 때 프로는 그저 일어나 일을 하러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에게 마감이야말로 창의력을 이끌어내고 작업력을 폭발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예산이나 판매를 잠시 내려놓고, 종이와 인쇄, 제본까지 오직 디자인의 관점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고전 텍스트를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연차가 쌓이다 보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출판 단행본 디자인의 흐름과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언젠가는 꼭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습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이런 책을 디자인했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직 ‘인간’과 ‘의식의 흐름’ 그 자체에 생각과 펜을 맡긴 20세기 문학의 기념비적 소설이다. 박연미 북디자이너는 “꽃과 나뭇잎이 사선으로 흘러내려 오는 표지 이미지와 1권부터 13권까지 표지 바탕 색상이 연하게 출발해서 진하게 그레이톤으로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연노랑 색상으로 바뀌는 것은 내용에 맞춰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민음사(2012∼2022)
노인력
노화 현상 뒤에 숨어있는 힘과 지혜를 ‘노인력’으로 정의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전한다. 제목은 백발을 모티브로 한 레터링으로 구현했고, 각도에 따라 반짝이는 후가공을 더해 시각적 즐거움을 줬다. 덕분에 제목 글자만으로도 경쾌하고 능동적인 노인이 연상된다. 본문 서체 또한 ‘SM태명조’를 써서 개성 있는 노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안그라픽스(2024)
남겨진 자들의 삶
이 책은 7년을 교제한 동성 연인이 자신과 헤어진 뒤 자살하면서 이탈리아의 유명 작가인 저자가 겪은 트라우마와 자책을 담아 쓴 소설이다. 박 디자이너는 이 작품의 불안정한 정서를 물리적인 형태로 옮겼다. 글 한편 한편의 호흡이 짧고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 판형을 길쭉하게 설계함으로써 책을 쥐고 넘기는 행위 자체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마테오 B. 비앙키 지음, 김지우 옮김, 문예출판사(2024)
갈등하는 눈동자
격투기 선수부터 이동권 투쟁 장애인과 시인까지 이슬아 작가가 만난 수많은 타인의 눈동자를 통해 인간을 이야기한다.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곳곳에 이훤 작가의 사진이 배치돼 있는데, 나무와 숲, 인터뷰이와 이슬아 작가 등을 찍은 사진과 글을 연결하면 저자의 눈동자를 통해 울창한 타인의 숲으로 나아가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슬아 지음, 먼곳프레스(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