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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지환어 (25-08-15 05:20)
 조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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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지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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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이 니 요즘 뭐 하나? 네팔 안 갈래?"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가야죠!"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가자는 이야기를 듣고 덜컥 네팔행을 결정한 후, 처음으로 일정표를 마주한 순간 잠시 이 결정을 아주 조금 후회했었다. 우선 34일이라는 기간도 부담되었는데 자그마치 걷는 거리만 약 300km에 달하고 해발 5,000m대 고개 4개를 넘는 코스였다. 그래서 너무 섣부른 결정이 아니었는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표는 발권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인솔자가 14좌를 등정한 김재수 대장이다. 그와 함께하는 영광을 놓칠 수 없었신규 릴게임
다. 출국까지 한 달여 시간 동안 수습하고 준비할 것들이 산더미였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의류와 장비가 한 번에 해결됐다. 토종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 콜핑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준비해 줬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이 사라졌지만, 한편으로는 트레킹하면서 둘러댈 핑계거리가 하나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라 몸을 만드는 데 더욱 매진할 수밖에 없게 돼 약간의 부담릴게임임대
도 느꼈다.
페와호수.
우여곡절 끝에 출국일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히말라야 이야기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산악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모태미성포리테크 주식
산악인'이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산에 다녔던 산수저인 나는 으레 금수저들이 돈 귀한 줄 모르듯 산 귀한 줄 모르고 자랐다. 주말이면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뛰어놀았고, 여름과 겨울이면 설악산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늘 집에선 수많은 산악인들의 이야기가 넘쳐났고, 히말라야 이야기는 동네 뒷산 이야기보다 흔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언젠가는 아시아나항공 주식
설산을 오를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커가면서 그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원정을 갔던 삼촌, 이모 같은 산악인들을 떠나보내며, 그 널리고 널린 산을 두고 멀리까지 가서 나를 두고 떠난 사람들이 슬펐고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팡보체와 그 아래 노랗게 핀 히말라야의 야생12월추천주
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고, 예능에서도 곧잘 나오는 것을 보니 어릴 적 품었던 그 설산에 대한 꿈과 염원이 다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찰나에 과거 오지탐사대로 인연이 닿았던 이동대 대장에게 연락이 왔던 것. 그렇게 내 첫 네팔행이 결정됐다.
마나슬루의 불행은 꼬리를 문다
처음 맞이한 네팔의 모습은 하얀 설산이 반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퍼붓는 장대비 속 어마어마한 인파와 교통체증이었다. 그래도 가이드 옹추 셰르파Wongchu Sherpa의 미소와 새하얀 카타가 위안이 됐다.
우리는 여느 트레킹 팀과는 다르게 입국 당일을 제외하고 3일간 카트만두에 머물렀다. 기나긴 여정을 앞두고 식량을 조달하고 짐을 단단히 정리할 필요도 있었지만 이번 콜핑 챌린지 팀의 트레킹은 단순한 도전을 넘어 김재수 대장의 14좌 완등을 회고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장은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추억이 서린 카트만두 곳곳을 돌았다. 직접 쓴 에세이집을 전달하며 그들과 지나온 삶과 등반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도 옆에서 귀동냥으로 이를 들으며 현지에 적응하고 앞으로 걸을 길들을 머릿속으로 살포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먼저 코스는 카트만두~마차콜라~자갓~뎅~남룽~샬라~마나슬루 BC~사마가온~삼도~다람살라~라르캬 라~빔탕~틸리체~다라파니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한국의 비포장도로가 비단길로 느껴질 만큼 거친 네팔의 하이웨이를 지나 도착한 '마차콜라'는 마나슬루 원정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마을답게 여러 트레킹 팀으로 시끌시끌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묵는 로지는 한적했다.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로지가 내어준 첫 번째 불행은 음식이었다. 아마도 식재료 회전이 안 된 탓인지 저녁식사로 먹은 모모(만두)가 말썽을 부렸다. 이동대 대장과 나는 약간의 속앓이 후 괜찮아졌으나 김재수 대장은 심한 장염 증상을 보이며 밤새 앓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원래는 트레킹 구간이었던 '자갓'까지의 일정을 차량으로 이동한 후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준비해 온 의약품(지사제)과 가이드 옹추가 현장에서 채취한 민트 잎으로 만든 차 덕분에 이틀 만에 모두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마나슬루 베이스캠프의 룽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마나슬루에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는 마나슬루 트레킹 시작 부근은 설산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계곡 하나하나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생경한 풍경들이 힘든 줄도 모르고 걷게 만들어 주었다. 조금 더 올라선 이후에는 따뜻한 기후와 함께 비렌드라빙하 호수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빚어낸 푸르른 풀밭과 조화를 이루는 설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나슬루 BC로 올라가는 길목까지도 다양한 야생화들이 꽉 들어차 자라고 있었다.
발길을 절로 잡아 끌어주던 푸른 풍경이 잦아들 때쯤 3,480m에 위치한 '샬라'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조금만 급하게 움직여도 숨이 금방 차올랐고 오래 쪼그려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옹추가 산행 내내 입에 달고 있던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람살라에서 새벽에 볼 수 있었던 신비로운 고산 풍경.
다음날, 목적지는 마나슬루 BC. 1,100m 고도를 올려야 해서 더욱 신경 써서 행동하고 체온을 지키기 위해 비니도 꺼내 썼다. 그리고 좀 더 힘내기 위해 7kg에 달하는 네팔 토종닭을 잡아 가이드와 포터까지 함께 몸보신을 했다.
다음날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사마가온을 거쳐 마나슬루 BC로 향했다. 야생화 꽃길과 비렌드라빙하 호수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진한 에메랄드빛과 풍경에 신나서 사진도 찍으며 걸었다. 하지만 해발 4,000m를 조금 넘은 지점부터 발을 내딛는 것만도 벅찬 순간이 찾아왔다. 배낭도, 스틱도, 다리도, 심지어 숨조차 무거워 걷기가 힘들었다. 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쉬지 않으면 멈춰서 모자란 숨을 마저 채워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금씩 내리던 비가 눈이 되어 앞서 간 포터들의 발자국을 지운다. 발목 높이까지 눈이 쌓일 때쯤에야 끝이 보이지 않던 능선 끝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나슬루 BC 메모리얼이었다.
와이파이 소식에 산소포화도가 오르다
마나슬루 BC에 도착해서는 정신을 부여잡고 뭐라도 해보려고 했다. 그래서 텐트 안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중 그렇지 않아도 숨이 모자란 상황에 불완전 연소된 가스를 흡입해 꾸역꾸역 마셔 뒀던 핫초콜릿을 다 토해 내고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경험을 했다. 다행히 김재수 대장이 빠르게 조치해 준 덕분에 두 번째 불행은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지나갔다. 정신을 다시 차린 뒤로는 다른 텐트로 가서 문을 다 열어놓고 간신히 잠들었다.
다람살라 사우니와 그가 대접해 준 야크 고기.
일찍 잠든 덕분인지 아직 해도 올라오지 않은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생각보다 몸이 개운해 텐트 밖을 나오니 광활한 베이스캠프 눈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조금 더 날이 밝아지자 어제 제대로 못 본 메모리얼이 눈에 밟혀 올라갔다. 메모리얼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룽다(경전이 적힌 오색 깃발) 뒤로 펼쳐진 운해가 끝내 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텐트로 돌아와 이동대 대장과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대장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이미 마나슬루 BC를 올라오는 길에 구토를 했다고 말한다. 김재수 대장은 "샬라에서 몸보신이 과했던 것 같다"는 추측을 들려줬다. 고산지역에서는 신체에서 가장 허약한 곳부터 문제가 발생하는데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들은 위장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불어 그렇지 않아도 소화력이 약해진 상황에 고기 섭취는 더 악영향을 미치기에 간혹 몇몇 원정대에서는 원정 기간 동안 육류 섭취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음식보다 현지음식이 더 맞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이동대 대장은 사마가온으로 내려간 뒤에도 식사를 거의 못 했다. 결국 삼도에서 산소포화도가 60 후반까지 떨어졌다. 하산까지 고려하며 텐트에서 쉬는데 삼도 로지에서 와이파이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기적적으로 산소포화도가 다시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다행히 함께 다람살라로 향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와이파이 포화도라는 말이 생겼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라르캬 라 패스 바로 직전에 위치한 다람살라는 로지가 굉장히 협소했다. 잠시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란 로지 건물들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집에서 옹추가 부르는 소리였다. 그곳은 조금 허름하고 누추하지만 잘 정돈된 찻집인데 트레커들보다는 포터나 가이드들을 위한 공간 같았다.
하지만 이미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계시던 김재수 대장 덕분에 티백을 풍덩 담근 차가 아니라 사우니(여자 사장)가 직접 찻잎과 향신료를 조합해 끓여 주는 진한 밀크티와 야크 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김재수 대장의 신청곡인 '심시메 바니(가랑비라는 뜻의 네팔 노래)'를 필두로 흥이 오른 포터들 덕에 네팔 민요인 '레쌈삐리리'와 제목을 알 수 없는 사랑 노래까지 들으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마나슬루 라운딩을 가게 된다면 이곳을 꼭 한 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빔탕에서 내려오며 만난 랄리구라스 군락.
라르캬 라 패스를 오르는 당일은 우리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새벽부터 분주했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된 웅성거림은 새벽 4시 반에 대부분의 팀이 출발하면서 사그라들었다. 우리 팀은 굳이 위험하게 새벽에 움직일 필요 없다는 김재수 대장의 말에 따라 날이 밝은 뒤 산행을 시작했다.
하필 이날 시작한 생리 때문에 생리통으로 고생하긴 했으나, 마나슬루 BC를 올랐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라르캬 라를 올랐다. 다만 그 뒤에 하산길은 너덜지대에 눈이 쌓여 있어 걷기가 까다로웠다. 앞서 먼저 출발한 팀을 지나치는데 고산증이나 탈진이 온 듯한 사람들이 꽤 보인다. 무리해서 새벽에 출발하기보다는 자신의 체력 충전 속도에 맞게 푹 쉬고 출발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킹 3개 구간 중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고 길었던 마나슬루의 마지막! 빔탕에서 내려가는 길은 지금 돌아보면 가장 화사하고 화려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웅장한 원시림과 우리의 첫 무사귀환을 축하라도 하듯이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곳곳에 만개해 있다.
한편 또 하나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은 'Welcome to Annapurna' 표지판이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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