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면 신호리 석주_논 가운데 있다. 서울 성북동 옛돌박물관에 있는 비슷한 석물은 용신 제 기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우제용 같지가 않다.
[<사람과 산>??박기성? ?전문기자]? ? ?흥양은 전라좌수영 동원구역 5관(광양, 순천, 낙안, 보성, 고흥)?5포 중 1관4 포가 있는 이순신 수군의 중추였다. 4포는 녹도·발포·사도·여도진이었는바 좌수영 소속 판옥선 24척(본영 3, 5관 11, 5포 10) 중 11척(흥양현?3, 사도 3, 녹도 2, 발포 2, 여도 1)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한산도해전 때
바다신2릴게임 는 녹도만호 정운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좌·우척후장으로서 선봉을 맡았다. 사도첨사 김완은 우부장이었고 흥양현감 배흥립은 후부장, 발포만호 황정록은 유군장을 맡아 대선(大船)이나 층각(層閣)대선 한 두 척씩을 격파하였다고 하는바 다른 이들의 공적은 "좌도의 여러 장수들"이라고 뭉뚱그려버렸으니 이 싸움에서 흥양 소속 수군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바다이야기예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가 고흥의 인물을 물어보면 '임진왜란 때의 이름없는 수졸들'을 들이민다.?
종4품 녹도만호(鹿島萬戶)의 터전 녹동에는 쌍충사가 있다. 부산포 해전에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영도에서 날아온 포탄을 맞아 폭사한 정운과 임진왜란 5년 전에 벌어진 손죽도해전의 희생자 녹도만호 이대원의 사당이다. 절명시(絶命詩)로 일컬어지는
골드몽 이대원 장군 동상 앞의 한시가 가슴을 저민다.?
해 저무는 군문 바다 건너 적이 오니 日暮轅門渡海來군사는 적고 형세는 외로워 살아있음이 슬프네 兵孤勢乏此生哀
임금의 의리와 어버이 은혜 모두 갚지 못했으매 君親恩義俱無報이 원한 저 구름에 맺혀 풀리지 않으리라 恨入愁雲結不開
실제로 그는 죽음을 예견하고 싸
릴짱 움에 임했다. 손죽도전투 이전 이대원은 녹도 앞바다로 쳐들어온 왜군을 맞아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이 공을 자기것으로 해달라 했고 이대원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후 왜군은 녹도만호진 군세의 아홉 배나 되는 18척의 병선을 동원, 녹동과 거문도 사이에 있는 손죽도로 쳐들어왔다. 그러자 심암은 날
골드몽게임 이 저무는데도 굳이 출전 명령을 내렸다. 그래 이대원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면서 좌수사에게 원군으로 지원을 해달라 요청했지만 따라주지 않았고 녹도의 장병들은 사흘 밤낮 외로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막바지에 이르자 이대원은 칼로 손가락을 자른 뒤 속적삼을 찢어 절명시를 써서 하인에게 주며 "이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 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점암면소 회계에서 능가사 가는 길에 본 팔영산_여덟 바위가 돌다리처럼 벌여있다는 의미의 바구다리산이 본이름으로 여겨진이다.
팔영산자연휴양림에서 잔 다음날은 고흥군 남쪽 한가운데 거꾸로 박힌 호리병처럼 생긴 도화면으로 향한다. 2년 전 은제 관모장식과 철제 살포, 동경(銅鏡), 큰칼, 화살통, 토기 등 500여점이 출토된 동호덕고분을 보기 위해서다.?
동서 14.1 m, 남북 15.1 m, 남한 최대라는 횡혈식석실묘는 신기와?호덕마을의 합칭인 신호리 들판 한가운데 동산에 있다. 다섯 장의 판석에 덮여있는데 토착세력이 백제의 지배로 넘어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단다. 분주토기(墳周土器)처럼 가야나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것도 나왔다 하니 이 지역은 당시 해양문화가 고흥에서 가장 앞선 데였을 듯하다.?
1.5 km 서북쪽의 신호리 석주(石柱)는 논 가운데 있다. 서울 성북동 옛돌박물관에 있는 용신제(龍神祭) 기둥과 비슷한 모양인데 그것처럼 기우제를 위한 용도는 아닌 듯하다. 그럼 이건 무엇을 빌기 위해 만들었을까?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4.42m의 모자 쓴 돌기둥의 용도가 한없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신호리 들판과 호리병 주둥이와의 사이에 있는 가운데 분지에는 도화면 소재지가 있다. 들판은 여기도 넓은데 얕은 고개를 넘어 동쪽에는 석수포, 서쪽의 대통항 사거리에 자리했다. 이어 도화천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가면 경치로 먹고사는 다도해국립공원 바다에 이른다. 그 바다는 갯장어와 삼치처럼 맛있는 물고기의 보고이기도 하다.?
[ 박기성의 인문기행 ] 고흥, 전라좌수영 1관4포 흥양수군들이 지켜낸 ?지붕없는 미술관 - ③에서 이어집니다.
박기성? ?전문기자??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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