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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영의 즐거운 건강
“선생님, 제가 매일 먹는 약이 너무 많아요.”
외래 진료실에서 종종 마주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다. 이럴 때 환자가 복용 중인 약물 내역을 전산으로 확인해 보면 고작 혈압약 한 가지, 콜레스테롤 약 한 가지 정도로 단출한 경우가 많다. 다른 의료기관이나 다른 과에서 처방받은 내역까지 빠짐없이 합산해 보아도 처방된 약은 몇 가지 되지 않은 경우도 자주 경험한다. 왜 그리 부담스럽게 느끼는지 궁금해 질문을 던지면, 환자들은 대개 건강해지려고 따로 챙겨 먹는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몸에 좋다는 조언이나 광고를 보고 하나둘 늘려간 영양제들이 쌓이다 보니 복용하는 가짓수는 어느새 생각보다 많아져 있는 것이다. 환자가 느끼던 ‘너무 많은 약’에 대한 부담은 병원의 처방약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 사 먹은 영양제들이 더해지면서 생긴 현상이었던 셈이다.
WHO 약물 관리 기준, 영양제도 합산 권고
의학 연구나 보건 통계에서 여러 가지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다약제 복용(Polypharmacy)’을 논할 때, 종종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나 병원의 전산 처방 기록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통계와 약간의 거리가 있다. 국가 데이터나 논문 통계에서 타 병원 처방까지 모두 포함해도 다약제 복용의 범위에 들지 않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데이터 밖에서 수많은 영양제를 함께 복용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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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통계로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다약제 복용의 범위는 종종 처방약 위주로만 집계되기에, 전산 시스템이 포착하기 어려운 영양제 혼용은 약물 관리 측면에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영역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하는 올바른 약물 관리 기준을 보면, 다약제 복용 여부를 평가할 때는 의사의 처방약뿐만 아니라 개인이 임의로 구입해 먹는 비처방약, 영양보조제, 건강기능식품을 모두 합산하여 검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복용하는 약물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은 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우리 몸의 대사 시스템은 각 성분이 독립적으로 처리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분이 동시에 들어오면 수많은 대사 경로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얽히게 된다. 결국 복용 종류가 늘어날수록 본래 의도했던 약효가 변하거나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에 의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약물’이고, 시중에서 구입한 영양제는 아무리 먹어도 전체 약물 개수나 몸의 대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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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몸의 입장에서는 처방약이든 영양제든 모두 외부에서 들어와 대사되어야 하는 외부 화학 물질이라는 。에서 성격이 비슷하다. 문제는 여러 종류의 영양제가 추가될 때 전체 복용 약물의 가짓수가 의료진의 파악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이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은 병원과 약국의 전산 시스템(DUR)을 통해 타 병원 처방까지 포함하여 중복 복용이나 위험한 약물 상호작용이 어느 정도 걸러지고 있다. 반면 개인이 필요에 따라 챙겨 먹는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은 처방 시스템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환자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의료진이 이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조율하기가 어렵다. 이는 결국 복용 중인 전체 약물의 효율적인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만성 질환으로 특정 처방약을 장기 복용 중인 환자가, 몸에 이롭다는 조언이나 광고를 보고 유사한 효능을 표방하는 시중 제품들을 임의로 여러 개 겹쳐 먹는 경우다. 처방약과 시중 제품들이 우리 몸 안에서 비슷한 대사 과정을 거치게 되면 성분들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약효가 과도하게 증폭되거나 반대로 약물의 흡수가 저해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환자가 진료실에서 자신이 먹는 모든 성분을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의사는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해 처방한 약이 환자의 몸속에서 왜 이런 불균형을 일으키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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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중요한 것 걷어내는 ‘빼기의 미학’ 필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의 전반적인 대사 능력과 약물을 분해하고 배설하는 기능은 자연스럽게 저하되기 마련이다. 젊을 때는 무리 없이 처리하던 여러 종류의 약과 영양제라도, 신체 기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태에서는 몸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건강에 좋다는 약을 자꾸 ‘더하는’ 적극성보다는, 전체적인 복용 내역을 。검하고 불필요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과감히 걷어내는 ‘빼기의 미학’일지 모른다.
진정으로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내가 매일 먹는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의 목록을 메모지에 차분히 적어보자. 그리고 진료실을 찾을 때 그 목록을 의사에게 보여주며 내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인지 한번 .검을 받아보는 것을 권한다. 처방약과 기능이 겹치거나, 지금 내 신체 상태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성분이 있다면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씩 줄여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나둘 늘려간 복용 목록을 차분히 정리하고 ‘빼기의 미학’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기 마련인 다약제 복용의 부담을 줄이는 작지만 중요한 시작일 수 있다.
손기영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자 울산대 의대 주임교수. 서울대병원을 거쳐 201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재직 중이다. 성인병, 노인건강 분야 전문가로, 노인의학, 일차의료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학회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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