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전망대에서 거대한 절벽에 둘러싸인 광활한 그로스협곡을 바라본다.


"위험한데, 위험하진 않아요."
가이드 댄의 말이 묘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협곡이 이렇게나 깊게 패여 있는데 위험하진 않단다. 슬쩍 절벽 쪽으로 몇 발 더 다가가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앞에 턱이 있다. 또 그 앞에도 계단처럼 턱이 있어 보인다.
"호주 국립공원에선 절벽 가장자리에서 2m 이상 떨어져 있을 것을 권장하고 있어요. 정말 위험한 곳이면 제가 가면 안 된다고 말씀드릴 겁니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숨만 쉬고 눈만 뜨고 있으면 됐다. 그러면 절로 넋이 나갈 정도로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에 압도된다. 거대한주식강연
성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벽이 광활한 대지를 둘러싼 광경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절감한다.
돌아갈 시간, 잠깐 앉아 있던 바위 옆으로 내려가서 있었던 장소를 본다.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공중으로 툭 튀어나와 있고 그 밑으로는 수백m 낭떠러지다. 물론 앞으로 고꾸라져도 앞에 턱과 거기에 자란 나무가 붙잡아줬을 터라 주식울타리
안전하긴 하지만, 안전하진 않았다. 가이드의 말대로다. 그리고 이것이 야생의 블루마운틴 북부다.
파랑새는 있어도 파랑산은 확실히 없다
"블루마운틴이 아니라 '블루마운틴즈'요. 즈!"
먼저 통성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곳을 흔히 블루마운틴이라 부르지만, 사실 정확한 이름은 복수형인 s가 끝에실전주식
붙은 블루마운틴즈Blue Mountains다. '블루'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도 없다. 단지 지역이 전체적으로 빛의 산란으로 인해 파랗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다만 댄 씨는 "자주 다녀봐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국립공원들 산그리메가 파랗게 보이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개인적 의견. 아무튼 여기선 지금껏 굳어진 블루마운틴으로 칭하하이트진로 주식
겠다.
블루마운틴은 시드니 여행의 단짝 같은 존재다. 많은 여행자가 하루쯤은 꼭 여행사 상품을 통해 블루마운틴에 온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오는 걸까? 물론 자연 풍광이 압도적이라곤 하지만 다른 국립공원들도 매력 있기는 마찬가지다. 호주 전체에 국립공원이 750여 개 있고,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에 225개, 시드니에서황금성갈갈이
45분 안에 갈 수 있는 국립공원은 30개가 넘는다. 그런데 왜 2시간이나 걸리는 블루마운틴일까.
"한마디로 기간시설 때문이에요. 지금은 폐광이 됐지만 예전엔 광산업이 발달했었거든요. 그래서 도로와 마을이 번성할 수 있었죠. 지금도 약 8만 명이나 삽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면서 국립공원 안에 이처럼 큰 도시가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캐나다 밴프와 여기뿐입니다."
그래서 국립공원임에도 불구하고 산행이 거의 없는 여행이 가능하다. 여행사들이 판매하는 상품들을 보면 대부분 버스에서 내려서 채 5분도 걷지 않는다. 전망대나 사진명소를 들르고, 케이블카를 탄다.
하지만 이건 블루마운틴 남부에 국한된 이야기다. 블루마운틴 북부는 사정이 좀 다르다. 8만 명의 주민 중 남부에 7만9,000명이 살고 북부에는 단 1,000여 명만 산다. 북부에 마트 한 곳, 빵집은 두 개, 주유소 한 곳 있다. 당연히 대중교통은 없다. 개인적으로 여행하려면 차를 렌트해야 한다. 아니면 여행사 여행상품뿐이다.
한 현지 여행사의 북부 여행상품을 이용해 봤다. 가이드는 한인 이민 2세 댄 씨. 국적은 호주지만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이 상품에선 뱅크스Banks(1,062m)산을 오르고, 월스전망대Walls Lookout를 가보고, 다간 아치Dargan's Arch라는 자연 형성 돌다리를 건넌다. 하루에 너무 많이 걷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설 수 있는데, 누구나 할 만하다. 직접 걸어본 결과 산행 거리 및 획득고도는 각각 4km·220m, 1.8km·85m, 1.6km·100m에 불과했다. 촬영과 취재를 위해 움직인 경우도 포함된 터라 실제는 이보다 더 적다.



뱅크스산 등산 중 뒤돌아 본 블루마운틴 전경. 우리나라 산과 다르게 대체로 평평한 고원지대다.


"블루마운틴 북부가 덜 개발된 건 지형이 더 험하기 때문입니다. 개척기에 한 모험가가 블루마운틴을 탐사했는데 남부는 단 29일 만에 완주한 반면 북부는 102일이나 걸렸다고 해요."
북부에 다루그Darug, 남부에 군둔구라Gundungurra, 인근 왈레마이국립공원에는 위라주리Wiradjuri 같은 선주민들이 살았던 땅이란 설명도 곁들인다. 현재 순혈 선주민은 한 명도 없단다. 그나마 할머니나 할아버지 중 한 명이 선주민인, 따지자면 8분의 1만 선주민의 피가 흐르는 이가 몇 명 남은 정도다.
블루마운틴 북부 최고봉, 뱅크스
투어는 차를 타고 노선번호 B59인 '벨스 라인 오브 로드Bells Line of Road'란 도로를 따르다가 들날머리인 포인트에 차를 대고 왕복으로 기점을 다녀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뱅크스산. 이곳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블루마운틴 북부 한정 최고봉이란 것. 혹자는 뱅크스산의 절벽 높이가 하단에서부터 총 510m로 블루마운틴에서 가장 높다고 보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정상부와 그 아래의 식생과 지질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아래는 사암지대인 반면, 정상부만 화강암이에요. 이게 지질학자들한텐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사암은 퇴적으로 만들어지고, 화강암은 마그마로 만들어지거든요. 화강암과 사암 지대 사이에 마그마가 관입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대요. 그러니까 어디선가 정상부의 화강암 덩어리가 뿅하고 공중에서 나타나서 사암 위에 앉은 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위아래 식생이 확연히 다르다. 길이 시작되는 사암지대에는 작은키 나무만 있는데, 정상부는 울창한 유칼립투스 숲이 자리 잡고 있다. 뱅크스란 이름은 호주 식물학자의 이름에서 땄다. 유래답게 식생이 다양하다. 약 1,000종의 식물이 산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상징 꽃인 와라타도 있고, 끈끈이풀 산디sandew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상부에 이르면 숲과 수풀이 울창해서 이를 헤치면서 걸어야 하는 다소 험한 구간이 나온다.


모래에서 흙으로 바뀌기 전까지 길은 편하다. 바로 옆이 그로스Grose협곡이다. 고도감이 살짝 모자라서 아직 훤히 들여다보이진 않는다. 흙으로 바뀌면 본격적으로 길이 험해진다. 그런데 가이드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길이 아닌 곳도 훌쩍훌쩍 뛰어다닌다.
"들어올 때 'Wildness야생'이란 글자를 봤죠? 여긴 길을 벗어나 어딜 가도 상관없어요. 불법이 아닙니다. 다만 안전은 자기 책임인 거죠."
정상은 빽빽한 숲이 우거져 있어 거의 조망이 없다. 정상에는 이를 알리는 작은 이정표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안테나처럼 생긴 조형물이 있을 뿐이다.



호주의 국화 아카시아 꽃 사이로 블루마운틴이 펼쳐진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올라올 땐 보이지 않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호주의 국화, 아카시아다. 한국에서 아카시아라 부르는 나무는 아까시나무로 전혀 다른 종이란 건 이미 알려진 상식. 아카시아는 건조한 곳에서만 잘 자라며 노란색 꽃을 피운다. 특히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회복력과 화합의 의미로 곧잘 사용된다. 호주 축구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이 노란색인 이유도 바로 이 꽃 때문이다.
그로스협곡 가득 메운 유칼립투스 숲
두 번째 행선지인 월스전망대는 뱅크스산에서 제대로 보기 어려웠던 그로스협곡의 진면목을 수직으로 내리꽂듯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전망대가 그로스협곡 곳곳에 몇 군데 더 있다. 협곡을 향해 뻗어 내린 지능선 같은 지형들이라고 보면 된다.



월스전망대에서 사진을 담는 여행자들. 머나먼 반대편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주차장에서 그리 힘들지 않은 완만한 길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 된다. 입구에는 벼락에 맞아 불탄 유칼립투스 한 그루의 그루터기를 볼 수 있다. 한국 산불은 대부분이 인재人災인데 반해 호주는 이처럼 천재天災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마 가지 않아 곧 절벽 위다. 너무나 거대한 협곡 안에 유칼립투스 숲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반대편 절벽들은 거인들이 어깨를 맞춰 선 듯 일정한 높이로 꼿꼿하다. 잘 보면 그로스협곡을 향해 떨어지는 폭포들을 이 거인들 어깨 사이사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워낙 반대편까지 거리가 멀기에 눈썰미가 꽤 좋아야 이들을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전망대라고 하지만 특정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고 협곡에 면한 절벽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된다. 그로스협곡에 이르는 데까지만 길이 있다. 다른 여행자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댄 씨는 "이런 게 호주에서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어디 정상을 오르거나 코스를 완주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보통이기에 낯설지만, 어설프게나마 따라 해본다.
참고로 그로스협곡 반대편은 남부다. 그러니깐 개발이 잘된 지역이다. 그리고 블루마운틴은 우리나라처럼 뾰족한 산이 많은 지형이 아니다. 평평한 땅에 일부 푹 꺼진 협곡들이 여러 갈래 있는 것에 더 가깝다. 잘 개발된 남부에 들어선 기지국들 덕에 북부까지도 스마트폰 신호가 잘 잡힌다고 한다.
너무 광활한 세계에 있었다. 호주에도 좁은 세계가 있다. 세 번째 행선지인 다간 아치는 좁고 작은 계곡에 숨어 있는 자연 다리다. 원래 동굴이었던 곳이 풍화작용에 의해 깎이고 떨어져 나가 다리 형태로 남았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이면 이 다리 밑이 마치 얼음골처럼 시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다간 아치는 원래 동굴이었다. 풍화작용에 의해 지붕이 열렸고, 이를 통해 들어온 생명의 씨앗이 나무 한 그루를 싹틔워 올렸다.


다리의 높이는 약 10m로 생각보다 꽤 높다. 그러나 처음엔 누구도 못 알아챈다. 그냥 땅만 보고 걷다가 어느새 주변이 잠깐 절벽으로 변한 줄만 안다. 다리를 완전히 건너 되돌아봤을 때에 이르러서야 전모를 깨닫게 된다. 그 정도로 자연스럽게 지형이 이어지고, 다리의 규모가 크다. 마지막으로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올려다보고 뜯어보면 이제는 무너질까 싶어 다시 건너기 망설여지는 마음이 살짝 든다.



다간 아치에서 아래 땅바닥까지 높이는 약 10m다.


주변 지형은 퇴적암이라 겹겹이 쌓인 층이 고스란히 바위 표면에 드러나 있다. 다리를 다시 건너 돌아오는 길에 야생 사슴이 깜짝 놀라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네모난 변을 본다는 야생 웜뱃의 변을 관찰한다. 역시 편한 여행도 좋지만, 땀 흘려 만나는 자연은 훨씬 더 깊게 느껴진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