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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더위가 귀신 같이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처서가 이번 주말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강원 산간을 제외한 전국에 폭염경보나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고, 일부 지역은 낮 최고 기온이 35~36도를 오르내린다.
여전히 열사병에 조심해야 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기상당국과 의료계는 노약자 등에게 가급적 외출과 활동을 삼가면서 에어컨을 틀어놓은 실내에 머물고 수분과 염분을 적절하게 보급할 것을 권고한다.
폭염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소방관·군인·운동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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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제35보병사단 장병이 20일 전북 남원에서 2025 UFS/TIGER 연습의 일환으로 대테러 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남원의 낮 최고기온은 34도에 이르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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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상황을 무릅쓰고 야외에서 신체를 움직이면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직업군이다. 특히 아무리 폭염 상황이 계속돼도 휴식과 작업시간을 마음대로 정하기가 쉽지 않은 군인·소방관·운동선수·특수노동자 등에게 주의가 요망된다.
이와 관련해 이번 여름 특히 주목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군인들이다.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한 정례 한미연합훈련인 '을지 보광티에스 주식
자유의 방패(UFS)' 연습이 18일 시작돼 28일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격, 테러, 전쟁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대비 연습인 을지연습도 18~21일 병행된다.
UFS에는 한국군 1만8000명 정도가 비슷한 숫자의 미군과 함께 시뮬레이션연습(CPX)과 야외기동훈련(FTX)에 참가한다. 그나마 폭염 등으로 원래 무료인터넷바다이야기
계획됐던 FTX 40여 건 중 절반 정도인 20여 건이 9월로 연기됐다. 물론 군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 매뉴얼을 바탕으로 FTX에 참가한 장병이 열사병을 피하면서 건강하게 훈련을 마칠 수 있도록 단단히 대비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장기간 격렬 신체활동, 운동 유발성 열사병 주의
문제는 군인·운동선수·소방관·용광로작업자 이격도
등 고온에서 장시간 격렬한 신체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특수 직업군에선 자칫 '운동 유발성 열사병(exertional heat stroke: EHS)'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HS는 신체 활동으로 체내에서 발생한 열이 외부로 제대로 발산되지 못해 생기는 열사병(heat stroke)으로, 고온 노출로 외부 열 공급이 증가해 발생하는 고전적(classic) 열사병과 구분된다.
EHS는 고열로 인해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생기고, 다발성 장기부전이 발생해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질환이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직장체온 40.5°C(105°F) 이상의 고열과, 비이성적 행동, 과민반응, 정서불안, 의식변화, 혼수상태, 현기증 등 중추신경계(CNS) 기능장애를 EHS의 주요 증상으로 제시했다. 메이요 클리닉은 현기증, 실신, 시야 흐림, 어눌한 말투, 경련, 망상 등을 EHS의 주요 증상으로 꼽았다.
신속한 냉각조치와 후송이 생명 구하는 관건
폭염 속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도로변에서 완전 무장한 채 경비 임무를 수행 중인 이스라엘 군인. [AFP=연합뉴스]
2025년 3월 미군 군의관들은 학술지 《응용생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hysiology)》에 한 군인이 혹서기 훈련 도중 EHS 증세로 직장체온이 44.3도까지 오른 사례를 보고했다.
'중증 운동 유발 열사병 손상자의 생존 과정(Chain of survival for a severe exertional heat stroke casualty)'이라는 논문은 증증 상황이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연속적으로 취한 덕분에 군인의 생명을 구한 사례를 소개했다.
22세의 환자는 몸무게 90㎏, 신장 1m83㎝의 건장한 체격으로 독도법 훈련을 하다 쓰러졌다. 논문에 따르면 당시 직장 체온은 44.3도였다. 시간대별 상황은 다음과 같다.
09:45. 상황실에서 GPS 통해 해당 병사 수 분간 움직임 중지 발견.
10:16. 무전 받은 교관들이 찾아냄. 얼음물 적신 시트로 신체 응급냉각.
10:36. 구급대원 도착. 4도로 냉각된 식염수 주입하며 후송.
10:52. 군부대 응급실 도착.
동결혈장 수혈로 체온 더 낮춘 뒤 헬기로 군병원 이송.
군병원에서 다발성 장기부전과 실어증 확인.
중환자실 7일간 입원.
군병원 3주 입원 뒤 재활병원 이송.
14개월 동안 언어치료·물리치료 뒤 부대 복귀.
논문은 체온이 기록적으로 높은 상태에서 발견된 환자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4가지 생존 체인을 이어서 겪은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첫째, 이 군인이 쓰러질 당시 몸에 GPS 기반의 추적시스템을 부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본부에선 해당 병사가 한참동안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300m 떨어진 곳에 있던 교관들을 보내 수색에 나섰다. 둘째, 신속한 상황 인지와 냉각 시트 적용 등 조치다. 셋째, 신속한 항공 지원과 냉각 식염수, 동결혈장 수혈 등 능동적인 신체 냉각이다. 넷째, 투여 약제의 효과적인 선택이다.
30도에서도 발생…해열제는 오히려 부작용 유발
특이한 것은 발견 당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 열을 측정하는 습구흑구온도(Wet-bulb globe temperature; WBGT)는 30.9도(기온 29.3도, 상대 습도 78%)였다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폭염 상황이 아니더라도 체온이 몸 외부로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 EHS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WGBT는 대기온도·습도·복사열·공기이동 등 4가지 요인을 모두 감안한 온도다. 산업현장과 운동경기·훈련장·야외행사장·군대 등에서 노출 수준을 결정하는 데 사용한다.
주의할 점은 EHS에선 해열제 사용이 금기라는 점이다. 흔한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과 아세트아미노펜은 대뇌 시상하부 체온조절중추에 영향을 주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억제해 해열효과를 낸다. 하지만 EHS는 체내에서 발생한 열이 외부가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하기 때문에 해열제가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권장되지 않는다. 오로지 냉각 치료로 체온을 떨어뜨리는 게 최선이다.
안타까운 희생 사례도…술과 마약도 EHS 유발
저격수 위장복인 길리 수트를 착용하고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는 프랑스 외인부대 병사. [사진=프랑스 외인부대 모병 홈페이지]
응용생리학 저널에 소개된 미군은 신속하고 합리적인 조치로 다행히 목숨을 지키고 장기 치료 뒤 임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4년 이스라엘에선 군인들이 사막 행군 도중 EHS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최근 소개했다. 사막에서 여름 훈련을 하던 19세 군인은 말을 횡설수설하고 방향 감각을 잃었으며 구토를 하는 등 중추신경 이상증세를 보였다. 정맥주사와 냉각장비를 들고 달려온 의무병도 심박수가 분당 200회에 이르는 상태에서 쓰러졌으며, 두 사람은 헬기로 후송된 뒤 사망 판정을 받았다. 희생자는 직장온도가 각각 43도와 45도였다.
뜨거운 불을 쓰는 주방에서의 장기 근무와 음주, 마약으로 쓰이는 흥분제도 EHS로 이어질 수 있다. 1982년 미국의 52세 남성은 하루 종일 고온의 주방에서 근무하다 독주를 마신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 직장 체온이 46.5도로 EHS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가장 높은 심부체온을 보인 이 환자는 다행히 24일 만에 퇴원했다. 미국에선 23세 남성이 교감신경 흥분제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복용한 상태에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체포됐다. 범인은 직장온도가 45도까지 높아지는 고체온 증세를 보였지만 냉각 치료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운동선수·군인·소방관·노동자 진료할 EHS 장비와훈련 필요
사막에서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 중인 프랑스 외인부대 장병. [사진=프랑스 외인부대 모병 홈페이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 2022년 10월 11일자에 게재된 '운동 유발성 열사병: 병리생리학과 위험요인(Exertional heat stroke: pathophysiology and risk factors)' 제목의 논문은 EHS가 운동선수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플로리다대·플로리다주립대 연구팀이 발표한 이 논문에선 EHS가 운동선수 사망원인 중 세 번째로 높은 질환이라고 밝혔다.
미국 연방정부 산하 보건의료 사관학교인 제복복무 보건과학대학(USU)의 프랜시스 오코너 군사 및 응급의학 교수는 올해 8월 9일 발표한 논문에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서를 인용해 이 질환의 발생률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코너 교수는 젊은 운동선수와 노인, 그리고 소방관, 군인, 건설 노동자 등 더위 속에서 활동하는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는 체온조절의 기본 생리학적 원리, 열병의 범위, 예방·치료·재활 조치를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 경기장이나 군사 훈련장, 소방서, 야외나 고열상황 근무지 등 EHS 고위험 지역 인근의 의료시설에는 운동성 열사병을 신속하게 인지하고 즉시 냉각처치 등 응급치료에 나설 수 있도록 시설과 교육 받은 직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갈수록 폭염이 일상화되어 가는 국내에서도 당연히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수도통합병원 등에서 EHS 연구
국내에서도 EHS와 관련한 훌륭하고 열정적인 연구 논문이 적지 않다. 2002년 대한내과학회지 제62권 제4호에 국군수도병원 내과·신경과의 이상호·유태현·김병희·김광기가 게재한 '운동유발 열사병의 임상적 고찰'(교신저자 이상호) 논문이 있다. 2003년에는 대한응급의학회지 제14권 제4호에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와 국군수도병원 응급의학과의 조유한·신상도·김동훈·조익준·이중의·서길준·윤여규·김규석이 게재한 '운동 유발성 열사병 환자의 예후 관련 요인에 대한 연구'(책이저자 서길준) 등이 있다. 앞으로 군을 넘어 소방관과 운동선수, 노동자 등 다양한 직종 근무자를 대상으로 EHS를 연구한 논문이 축적되기를 기대한다.
채인택 의학 저널리스트 (tzschaeit@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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