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산>??박기성??전문기자]? ? 함양은, 3km가 넘는 기나긴 육십령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 웅혼한 모습의 황석산(黃石山 1192.5 m)으로 다가온다. 서상IC에서 고속도로를 나오니 금천(錦川)을 따라 벌여있는 8담(潭)8정(亭)의 화림동(花林洞)계곡… 혹은 얼어있고 혹은 풀어져 흐르는 산골 계류가?겨울 오후 한때 볕을 즐기고 있다.
금호강 가에 있는 안의의 자랑 광풍루_원래는 관아 부속 건물이었는데 세종때 현위치로 옮겨왔으며 정여창이 현감으로 있을 때 중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누마루 아래
바다이야기룰 로 선정비들이 즐비 하게 서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정자 거연정(居然亭)은 물 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있다. 인조 18년(1640년) 동지중추부사(종2품)를 지낸 전시서가 서산서원(西山書院) 부속 초정(草亭)으로 세운 것인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리자 7세손 전재학이 서원의 목재와 기와를
바다이야기디시 가져다 재건립, 지금 모습이 되었다.?
연흔(漣痕)처럼 일어나 집을 삼키는 파도 같은 절벽이 되었다가 떡바위 둔덕으로 잦아드는 돌섬 속 바위서덜 사이의 작은 기와집은 중층(重層) 누각인데도 아담한 단층 3간집처럼 보인다. 지붕 물매가 싼 것은 전경(前景)의 안의(安義) 진산 무어산(461m)과의 조화를?위해서리라.
경복
야마토게임다운로드 궁 향원정의 좀 세다 싶은 지붕 경사가 뒷산 북악에 대한 배려 때문인 것과 같다. 2012년 2월 명승 86호로 지정되었다.?뒤편으로 판방(板房) 한 칸을 들였는데 내진주(內陣柱) 둘이, 외진주 와 달리 두리기둥[圓柱]이 아닌 네모기둥[角柱]으로 되어있다.
북쪽 판벽(板壁) 역시 외진주에 걸친 것이 아니라 그냥 들보와 마루에 고정한 상태다
바다이야기5만 .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에서 "기둥에 비해 들보와 도리 부재(部材)가 크고 견실하여 서원의 재목을 쓴 곳은 누상(樓上) 부분으로 생각된다" 한 것을 보면 원래 방이 없는 구조였는데 재건하면서 날림으로 방을 만든 듯하다.
증거처럼 마루 밑에는 판벽을 지탱하는 부재가 없다.?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군자정은 '함양의 인물' 정여창(1
모바일바다이야기 450~1504) 사후 300년경(1802년) 처가 동네였던 이곳 봉전마을의 전세걸(전시서의 6세손)이 그를 기려 세운 정자다. 통바위 위에 건립한 것이라 거기 맞추면서 규모가 약간 작지만 누각이어서 옹색한 느낌은 없다.
내 건너편 "詠歸岩(영귀암)" 각자(刻字) 바위 위에는 영귀정이 있으나 주인이 길을 막아 갈 수가 없다. 팔각정이니 원래 저 모습은 아니겠는데 정자 남쪽에 잔디밭을 만들고 4간 기와집을 지어 사는 이가 매몰스럽게 "출입금지"를 하고있다.?
황석산 정남쪽 황산마을 앞의 동호정(東湖亭)은 선조가 피난갈 때 적군이 좇아오는 빗속 10리길을 업고 갔다는 화교(華僑) 장만리(章 萬里)를 생각하며 10세손 장대운이 1895년에 세운 누정이다.
사근산성에서 본 황석산_들 가장자리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지곡면소 뒤 하늘금에 거망산이 솟아있고 그 오른쪽에 황석산이 보인다. 사진 중심부를 차지한 것은 마안산, 마안산성이다.
화림 동계곡 8정자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떡판 위의 찰떡을 주물러놓은 듯 널찍한 냇가 너럭바위가 일품인데, 거기 "琴笛岩(금적암)", "遮日巖(차일암)", "詠歌臺(영가대)" 등이 새겨져 있어 피리 불고 거문고 타며 노래 부르던 옛사람들의 풍류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출림맹호(出林猛虎)처럼 트여 뒤를 막아주는 것이 없다.?
'달을 희롱하는 정자' 농월정(弄月亭)은 바위 웅덩이가 달 표면처럼 널려있는 암반 위를 청류가 춤추듯 흘러가는 장관을 바라보며 서있다. 병자호란 때 예조참판으로서 화의(和議)를 참지 못하고 사직, 1637년에 여기 정자를 지은 박명부의 기개다.
하지만 2003년 어떤 미친 자의 방화로 불타 사라졌다가 2015년 함양군이 10억 원을 들여 복원한 것으로 아직도 단청이 현란하다.?이윽고 안의에 도착, 광풍루(光風樓)에 오른다. 1914년 월봉-금원- 기백산맥 서쪽의 서상·서하·안의면과 동쪽의 북상·위천·마리면을 들어 함양군과 합쳐지기 전까지 독립된 고을이었던, 영남 최고의 풍치를 자랑하는 땅이다.
'안의 3동'이 특히 유명했는바 저 화림동과 용추폭포골 심진동(尋眞洞), 수승대(搜勝臺)와 그 서쪽 월성계곡의 원학동(猿鶴洞)으로 영남 정자문화권의 표상이다. 누각은 태종 12년(1412년) 이안(利安)으로 불렸던 당시의 현감 전우가 세웠는바 1425년 현위치로 옮겨왔으며 성종 25년(1494년) 현감 정여창이 중수한 것으로 경내에 역대 수령들의 선정비가 즐비하다.?
화림동계곡 최고의 정자 거연정_연흔처럼 잔잔하다 파도 같은 절벽으로 일어서는 돌섬 속 바위서덜 가운데 다소곳이 앉아있다. 지붕의 물매가 비교적 싼 것은 전경(前景)의 안의 진산 무 어산과의 조화를 고려해서로 여겨진다.
여기서 금천은 금호강(錦湖江)으로 불린다. 그러나 안의 면계를 벗어나면서부터는 남계천(濫溪川)이 되어 지곡면과 수동면을 가르며 흐르다가 백두대간 줄기 백운산에서 발원, 백전면, 병곡면, 함양 읍을 거쳐 오는 위천(渭川)을 만난다.
이후 동남으로 빠지다 유림 면에서, 마천·휴천면 방면의 임천강과 합류해 남강이 되니 함양군 1읍 12면은 이렇게 수계로 정리된다.?
[ 박기성의 인문기행 ] ②?풍류와 충절로 이름이 높은 하늘 넓은 땅에서 이어집니다.
글. 사진 박기성? ?전문기자??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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