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
시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여러 사람이 시인을 기리어 추모시를 쓰고, 시인이 돌아가던 해(1980년) 12월, <한국문학>에서 제정·주관하는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이 주어지고 1984년 10월엔 박용래 시 전집 『먼바다』가 출간되고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박용래 시비를 세워 제막식을 가졌다. 이 시비는 소스라치도록 아름다운 시비다. 경향 각지를 돌아 보아도 가장 아름다운 시비이다.
시비 자체가 우정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최상의 예술작품이다. 시비 건립기를 시인 평생의 지기
바다신2다운로드 (知己) 임강빈 시인이 쓰고, 시비 디자인과 조각에 최종태 조각가가 참여하고, 시비 글씨를 김구용 시인이 맡았다. 모두가 시인을 생전에 사랑하고 아끼던 절친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야말로 이 시비는 시비로서 모범을 보인 사례라 할 것이다. 그렇게 박용래 시인에 대한 사랑과 추모 열기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조금은 아쉽게 살다 간 시인의 생애를
바다신2다운로드 보상하는 듯 뒤에 남은 사람들이 성의를 보였다.
박용래 시인의 사후, 가장 중요한 현창(顯彰) 사업은 1999년 대전일보사에 의해 제정되고 시상된 박용래문학상이다. 이 문학상은 대전과 충청 지역에 거주하다 돌아간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으로 최초라는 의미ㄹ르 지닌다. 1회 수상자가 부산의 허만하 시인이었고, 2회 수상자가 필자인 나태주, 3
릴게임하는법 회 수상자가 서울의 서정춘 시인, 4회 수상자가 인천의 함민복 시인 등, 전국적으로 작품 수준을 고르게 인정받는 시인들이 선정되어 문학상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 뒤에 여러 가지 문제가 병합되어 박용래문학상은 중단되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심히 아쉽고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사실 박용래 시인을 두고 아쉬
릴게임몰메가 운 점은 문학상의 중단뿐만이 아니다. 박용래 시인 정도가 되면 개별 문학관이 지어져야 하고 문학축제 또한 열려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사후 46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학관 건립은 감감소식이고 시인의 이름으로 열리는 문학축제 또한 아직은 없는 실정이다.
다만 다행한 일은 수년 전 고형진 고려대 교수에 의해 박용래 시인의 모든 자료가
오션릴게임 세 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세상에 나온 일이다. 그것은 2022년, 서울의 문학동네란 출판사에 출간한 『박용래 시 전집』, 『박용래 산문 전집』, 『박용래 평전』이 그것이다. 박용래 시인을 사랑하고 기념하는 한 사람으로서 고형진 교수의 작업과 노고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늘에 계신 시인이 매우 기뻐할 일이라 하겠다.
더불어 이번에 다행스럽고 고맙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것은 '박용래시문학상'의 제정 소식이다. 들리는 바로는 대전광역시에서 상금과 운영비를 대고 대전문인협회에서 상의 운영을 맡아서 올해부터 새로운 형태로 박용래 시인의 문학상을 제정, 시상한다는 내용이다. 생전에 박용래 시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시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문학상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가슴 뛰도록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돌아보면 무릇 문학상은 그 제정 주체나 후원자가 먼저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람은 상의 운영자이다. 운영자가 얼마나 열성과 곧은 마음으로 상을 운영하느냐가 그 상의 권위를 결정하고 지속 가능을 보장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전해 듣기로는 이번에 충청 지역에서 가장 온건한 문인과 연구자들이 운영위원으로 선임되어 상의 진로를 숙의 중이라 그런다. 게다가 대전문학관 관계자와 대전일보사 언론인까지 운영위원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좋은 인적 조합이라고 여겨진다.
한 시절, '북에 소월(素月)이 있고 남에 목월(木月)이 있다면 중도(中都/ 대전)에는 용래(龍來)가 있다'고까지 말하면서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이다. 박용래, 그는 실로 김소월, 정지용, 서정주, 백석, 이용악, 박목월, 김종삼과 더불어 빛나는 한국어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시인이다. 그 시인이 이제 문학상으로 부활했으니 문학관과 문학축제로 다시 부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며, 두 귀를 풍편(風便)에 세우는 심정이다. 나태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