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감명국 기자)
정치평론가 고(故) 유창선 박사는 2024년 12월6일 시사저널에 '윤석열은 무모한 비상계엄을 대체 왜 벌였을까'란 주제로 칼럼을 올렸다. 2019년 7월부터 격주로 연재되기 시작한 '유창선의 시시비비' 코너의 129회째 칼럼이었다. 그 다음 원고 마감은 12월20일 예정이었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펑크를 낸 적 없었던 유 박사는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12월22일 시사저널 편집국에 원고 대신 부고 소식을 알려왔다. 감기로 알았으나, 폐렴 증세가 악화되었다는 전언과 함께. 촌철살인처럼 대한민국 정치문화의 문제점을
바다이야기2 날카롭게 지적하며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어왔던 유 박사의 연재는 그렇게 아쉬운 끝을 맺었다.
2019년 1월22일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가 설특집 좌담회에 패널로 참석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릴짱 2019년 1월 갑작스런 뇌종양 판정 받고 수술대 올라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그 존재감이 더 또렷해진다고 하는데,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가 그랬다. 시사저널은 훌륭한 필자를 잃었고,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필자를 찾는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유 박사는 오랫동안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바다이야기룰 .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단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평론가. 분노를 자극하는 대신, 분노를 견디게 하는 문장을 택했던 사람. 특정 진영의 확성기가 되기를 거부하고 '원칙'이라는 느린 길을 걸었던 사람. 동료들은 그를 두고 "문장을 세우던 사람"이라 회고한다.
정치평론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정치의 재발견》 등
바다이야기오락실 많은 평론집을 냈다. 인문학과 문화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등을 펴내기도 했다.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은 생전 그가 마지막으로 펴낸 책이었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는 2026년 3월10일?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도서출판 새빛)를 '마지막'으로 냈다. 이 책은 유 박사의 부
손오공게임 인 김경숙씨가 고인이 남긴 여러 원고들을 엮어 펴낸 유고작이다.?
이 책은 정치평론가의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로부터 한 걸음 물러난 이후의 이야기, 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한 인간의 기록에 가깝다.?
정치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2019년 돌연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2019년 1월22일 시사저널이 주최한 신년 좌담회에 패널로 참가했던 그는 그 직후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뇌종양 수술, 길었던 투병과 재활의 터널'을 통과하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8개월의 병상 생활은 한 사람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평생 방송과 토론의 현장을 누비던 평론가는 재활병원의 복도를 천천히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2019년 7월 병상에서 기자와 통화를 나누던 그의 목소리는 예전의 그 카랑카랑하고 또렷한 음성이 아니었다. 느릿느릿하고 어눌해졌다. "내 말을 알아듣기 힘들지요?"라며 겸연쩍어 하던 그에게 기자는 시사저널 칼럼 연재를 제안했다. 몸은 재활의 길을 걷지만, 비판 정신과 필력만큼은 그대로인 유 박사에게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첫 원고는 병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본지 연재와 함께 그의 재활의지는 멈추지 않았다. 걷는 기쁨을 회복한 뒤 제주 올레길을 걸었고, 러닝 모임에 합류해 5km 마라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예술 전시와 클래식과 임영웅 콘서트까지 공연장을 찾으며 새로운 문장을 준비했다. 그는 인문학에 이어 문화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정치평론가에서 문화평론가로의 확장이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상처를 복구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경험을 글로 정제해 나누었다.
생전 그는 자신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글을 계속 쓸 기회를 준 시사저널에 무척 감사해 했고, 시사저널만 괜찮다면 계속해서 연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성장한 두 딸과 함께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며 아이처럼 설레 하던 그 표정은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여행 중에도 본지 연재 마감일이 다가오면 기자와 주제에 대해 상의하고, 유럽 현지에서 깔끔한 원고를 보내주는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
이 책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의 목소리다. 부인 김경숙씨는 "나에게 남편은 이미 존경스러운 어른"이라 적었다. 병상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썼던 사람.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한 평론가의 마지막 기록이자, 우리 각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요청이다.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품위는 끝까지 선택의 문제라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 문장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장이 되었다.
이 책을 출간한 도서출판 새빛 측은 "유창선 박사는 원고를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정치평론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아온 이야기와 경험을 쓰셨는데 여러 메시지와 의미를 담고 있어 책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