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 남강 유역과 중심축이었던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돼 보존방식으로 선회 이후 바다·공업도시로 개발 옮겨가
마산 최초 수출자유지역으로 활약 거제 옥포, K-조선 핵심 거점 성장 김해 ‘백색혁명’ 비닐하우스 발상지 사천 항공우주산업 중심지로 우뚝
지리산지역 종합개발계획 평면도(1965)./건설부/
릴게임황금성 지리산지역 종합개발계획 평면도(1965)./건설부/
지리산은 흔히 ‘어머니의 산’이라 불린다. 7000여 종에 이르는 생물과 수많은 마을, 천왕봉 자락의 성모상
릴게임모바일 같은 구체적 근거를 제쳐 두더라도, 지리산과 함께 살아온 이들은 안다. 그 산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요와 따뜻한 안전함이 어머니의 품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리산은 귀양과 피난으로 밀려난 이들에게는 몸을 숨기고 다시 살아볼 여지를, 자연의 흥취를 찾아온 이들에게는 쉼과 위로를,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에게는 삶이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고 품고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길러내는 자양분을 제공해 왔다.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 등 여러 이름 가운데서도 지리산에 ‘어머니의 산’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적 이익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저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을 얻게 되는 존재로 기억돼 왔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부활 14. 마산수출자유지역전경(1974) /국가기록원/
14. 마산수출자유지역전경(1974) /국가기록원/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1960년대 지리산의 ‘경제자원화’ 구상이 끝까지 추진됐다면 오늘의 경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에서 정부는 전력 생산과 광업·임업·농업 등 1차 산업 개발을 중점 과제로 삼고 지리산과 남강 유역을 주요 개발축으로 설정했다. 지리산의 임산물과 광물 자원, 풍부한 수량은 경남 경제개발을 이끌 핵심 자원으로 인식됐고, 개간·조림, 광물 개발, 관광권 조성, 수력발전소와 공장 신설을 포함한 종합 개발계획이 검토됐다. 지리산 일대를 특수공업지대이자 관광·자원개발 지대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국토 개발의 방향은 다른 선택을 한다. 지리산은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며, 대규모 개발 대상이 아니라 천연자원 보존과 공공 휴양의 공간이 된 것이다. 1969년 12월 정부는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고시했다. 1970년대 초 국립공원 조성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지리산 개발은 ‘보존을 전제로 한 이용’으로 선회했고, 경제개발의 중심축은 점차 산에서 강과 바다, 그리고 공업도시로 옮겨갔다.
같은 시기 남강댐 건설은 또 다른 축에서 경남 산업화를 떠받치는 뼈대가 됐다. 남강댐은 여러 차례 좌절 끝에 1962년 다시 착공돼, 수력발전은 물론 낙동강 지류의 홍수를 조절하고 식수와 농·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다목적 댐으로 1969년 준공됐다. 낙동강·남강·황강이 합류하는 김해·창원·함안·창녕·의령 일대의 상습 침수지는 남강댐과 제방 정비로 비옥한 농지로 바뀌었다. 진양군 지수·금수, 함안 법수·대산, 창녕 남지 일대의 들판은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경남 농업 기반을 강화하는 거점이 됐고, 경남 산업화의 첫 발자국은 이렇게 ‘산’과 ‘강’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출근시간(1989)./양해광 기증/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출근시간(1989)./양해광 기증/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화의 무게중심은 빠르게 바다와 공업도시로 이동한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에 따라 마산에는 수출자유지역이 조성돼 전자·섬유·기계 등 경공업 수출기지로 성장했고, 수만명의 노동자, 그중 상당수 여성들이 이곳에서 일했다. 창원은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상징하는 기계공업도시로 설계됐고, 공단 조성과 도시계획, 항만 인프라 확충을 통해 ‘마산·창원 벨트’가 형성됐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과 1970년대 조선산업 육성 정책은 거제를 또 하나의 상징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옥포만에 대형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거제는 세계 조선산업의 핵심 거점이 됐고, 경남 동남부 산업벨트의 구조는 크게 재편됐다. 육지 깊숙이 자리한 지리산과 남강에서 시작된 개발의 흐름이 해안과 조선·수출 공업도시로 연결된 셈이다.
수박, 참외, 호박 접목방법을 교육하는 박해수님의 모습(1967) /e영상역사관/
수박, 참외, 호박 접목방법을 교육하는 박해수님의 모습(1967) /e영상역사관/
경남 산업화의 지도에서 가장 독특한 공간을 꼽으라면 김해를 빼놓을 수 없다. 김해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공단이 아니라 도시 근교의 분산공업과 농업 혁신이 맞물린 ‘자연발생형’ 산업화의 사례다. 고(故) 박해수(1926~1985)씨는 일본의 비닐하우스 농법을 독학해 도입했다. 이 실험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닐하우스 재배로 이어졌고, 사계절 고부가가치 작물 생산이라는 ‘백색혁명’을 불러왔다. 이는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공업용 비닐 수요를 키워 관련 제조업 성장을 자극했다. 산 중턱까지 공장이 들어선 김해 일대의 근교공업은 농업과 공업이 서로를 밀어 올린 결과물이었다.
사천은 6·25전쟁 이후 군 공항과 교육시설을 기반으로 항공도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9년 정부 주도로 항공 부문을 통합해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가 사천에 설립되고, 연구·정비 인프라가 집적되면서 사천은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갔으며, 2024년 우주항공청이 개청했다. 항공우주산업은 기계·전자·IT가 융합된 고부가가치 종합 시스템 산업으로, 조선·자동차부품 등 기존 주력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인근 고성의 무인기 산업, 산청의 항공기 구조물 생산 등으로 파급되며, 한때 남강댐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 지역을 함께 견인하는 축이 되어가고 있다.
kai 내부 모습/kai/
kai 내부 모습/kai/
경남의 산업화를 이 짧은 글에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분명 부족하다. 다만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과 남강댐, 마산·창원 산업단지, 거제의 조선, 김해의 근교농업과 비닐하우스, 사천의 항공우주에 이르기까지, 전쟁 이후 경남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폐해진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며(盡力)’ 길을 열어 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산업화의 역사는 거대한 국가정책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부모 세대와 이웃의 일상, 그리고 오늘의 우리 삶과 촘촘히 연결된 생활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리산 국립공원화에서 시작해 남강댐, 해안 공업단지, 농업 혁신, 항공우주산업으로 이어지는 경남의 산업화 궤적은, 고지능사회·AI 시대의 문턱에 선 지금 다시 되짚어볼 만한 중요한 자취다. 미래는 과거와 단절된 채 도착하지 않는다. 나의 과거가 오늘을 만들고, 오늘이 내일을 빚어내듯, AI 시대에 편입되는 과정 또한 과거의 선택과 경험을 반추하고 때로는 경계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긴 시간의 어딘가에서 지리산은 여전히 ‘어머니의 산’으로 서서, 묵묵히 그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전가희 기록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