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9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왼쪽 사진)이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국무회의는 헌법이 정한 중요한 국정 심의기구입니다. 저는 국무회의가 주요 안건을 통과시키는 회의체가 아니라 국정 현안에 대해 국무위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치열한 토론도 좋으니 격의 없이 의견을 제시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12·3 불법 계엄을 정당화하려 국무회의를 부당하게 소집한 윤석열 전
바다이야기2 대통령도 2022년 5월 12일 정부 출범 후 처음 소집한 국무회의에선 이런 다짐을 했다. 국무회의 기능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한 전직 대통령이 한때는 국무회의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국무회의는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걸까. 한국일보는 9일 기준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재명 정부(2025년
바다이야기5만 6월 5일~12월 9일) 및 윤석열 정부(2022년 5월 12일~11월 8일) 출범 초 정례 국무회의 회의록을 각각 27개씩 분석했다. 정권과 상관없이 회의의 무게중심은 대통령에게 쏠려 있었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서 국무회의엔 확실히 힘이 실렸다. 국무회의가 의장인 대통령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바다이야기오락실 그래픽=박종범 기자
회의록 살피니... 심의는 짧고 토론은 생략
안건당 심의 소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국무회의에선 801건의 안건이 올라왔고, 건당 심의에 3.6분이 소요됐다. 윤석열 정부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당시 안건은 813개였고, 건당 심의 시간은 1.6분이었다. 국무회의에는 유관 부처 조율이 끝나고 대통령비서실이 사전에 검토한 안건이 올라온다는 점을 감안해도 심의가 제대로 이뤄졌다 보기엔 어려운 수치다. 한국정책학회도 논문을 통해 "국무회의의 정책 조정 역할은 대단히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부의장인 국무총리가 진행하는 국
바다이야기프로그램 무회의는 대통령 주재 때보다 더 형식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 시 평균 진행 시간은 128.4분이었는데, 김민석 총리가 진행할 땐 26.5분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 때는 대통령(68.6분)과 총리(32.9분) 주재 때 평균 진행 시간이 2배가량 차이 났다.
대통령 발언에 대한 반론은 찾기 힘들었다. 윤 전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회의록을 보면 대통령 발언에 대한 이의 제기가 단 한 차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임면권을 쥔 사람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주재한 21차례 국무회의 회의록상에도 반박 의견은 지난해 6, 7월 집중됐는데, 대체로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대통령이 '광역자치단체별 연구원은 인력 및 예산 중복 지출 아닌가'라고 묻자, 강도형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역별로 할 일이 있다'고 답한 게 단적인 예다.
이재명 정부 들어 기능 확대... "바뀔 수 있다"
다만 이재명 정부 들어 국무회의의 본질적 기능이 강화된 건 분명했다. 일단 토론이 활발해졌다. 대통령이 질문하면 국무위원 또는 배석자가 답하는 형태가 여전히 많았지만, 일부 회의에선 국무위원들이 안건에 대한 부서 차원의 의견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거나 토론 주제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띄우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윤호중 행안부 장관이 '체납 지방세 징수를 담당하는 체납 관리단 인력 운영비를 중앙정부에서 지원해달라'고 한 데 대해 임기근 기획예산처 차관(장관 직무대행)이 '지자체 소관 업무이니 지자체 예산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반박한 게 대표적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기업이 정규직 고용 시 세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는 등 다른 부처 안건에 적극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22일 회의에선 '경찰, 군인 등의 일부 직위에 민간인 기용이 필요하다'는 이두희 국방부 차관 및 구윤철 경제부총리 의견에 이 대통령은 "참고하겠다"고 답했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지난해 7월 22일(왼쪽)과 지난해 9월 16일 국무회의 회의록. 인사 방향에 대한 국무위원 제언에 이재명 대통령이 '참고하겠다'고 답하거나, 타 부처 안건에 대한 토론에 국무위원이 참여하는 등 이재명 정부 들어 국무회의 심의 기능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캡처
윤석열 정부 때 열린 국무회의 가운데 절반은 아무런 토론 및 질문 없이 종료됐고, 토론이라고 기재된 경우에도 '잘하라'는 원론적 당부에 그친 적이 많았다.
이재명 정부 들어선 국무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우가 확 늘었다. 통상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총리의 격주 주재가 관행으로 여겨졌는데, 이 대통령은 27회 국무회의 중 21회를 직접 챙겼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27회 중 12회를 주재했을 뿐이다. 이 대통령 평균 국무회의 진행 시간(128.4분)도 윤 전 대통령(68.6분)의 두 배에 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본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국무회의 내실화에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8일 국무회의에서 "시간 낭비 같기도 하지만 국무회의에서 논쟁과 토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무회의에 안건을 적극 상정하라"는 얘기도 반복했다. 다만 이 대통령이 도입한 생중계 진행 방식이 국무회의 기능에 미칠 영향을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공직사회를 긴장시켜 토론 기능을 활발하게 만들 것"(정부 관계자)이라는 기대와 "대통령의 공개 면박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축시킬 것"(전 청와대 관계자)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