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각) 영국 방문을 위해 미 백악관을 나서며 “반도체와 의약품은 자동차 관세(25%)보다 높은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가 애초 8월말까지 정하기로 한 반도체 품목 관세율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높은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며 세계 반도체 업계를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전방위적 압박과 말 바꾸기로 세계 반도체 업계에 불확실성이라는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분야로 반도체를 꼽고,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와 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가 반년째 기어지면서 한국·일본·대만 등 동맹국 반도체 산업조차 기금이란 위기감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생산 시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10년 앞을 내다본 선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달과 이달에 걸쳐 반도체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 쏟아지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인공지능(AI) 급부상으로 세계 1 전세담보대출자격 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 순위가 바뀌는 등 지각변동 중인데 트럼프, 미국 정부발 리스크가 연일 터져 나오며 불확실성의 만성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격주로 예상 뛰어넘는 정책
9월 저금리 기조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통신장비’의 국내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달(111.1)보다 16.4포인트 하락한 94.7을 기록했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발 반도체 불확실성이 지속하면서 업황 전망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트럼프 대통령 채권 브로커 말 한마디, 소셜네크워크 글 한줄에 따라 불안과 안도가 교차하고 있다. 미 정부는 우선 고율의 반도체 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또 바이든 정부 때 결정했던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대가로 회사 지분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회사 지분을 내놓기 싫으면 미국에 추가 투자 요구하고 있다. 동맹국 배려 차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미국산 임대아파트 전세자금대출 장비 반입을 허용했던 기존 방침을 바꿔 앞으로는 연간 단위로 허가를 받으라고 했다. 사실상 앞으로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줄이라는 요구다. 이 같은 조치는 8월 한 달간 격주마다 터져 나왔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동맹국 가릴 것 없이 글로벌 반도체 회사를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 내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겠다는 심산이다.
미 행정부는 기업들이 가장 피하려는 불확실성을 통상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행정부는 8월 중 반도체 품목 관세 발표를 예고했으나 ‘미국 내 투자 안 하면 최대 100%라는 가이드라인’만 언급했을 뿐 9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공식 발표가 없다. 지난달 19일 미국 내 생산 시설을 짓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대가로 회사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지금껏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할지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익명의 미 행정부 관료의 말을 인용하면서 “현 트럼프 정부 때 미국에 추가 투자하면 지분 인수 대상에서 제외”라고 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을 체포·구금한 사건이 발생하며, 업계에선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리스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 연합뉴스


◇美 기업은 유리
트럼프 행정부는 철저하게 미국과 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지분을 가져가겠다는 논리는 사실상 무너져가는 인텔을 어쩔 수 없이 구제한 후 같은 방식을 다른 반도체 업체에도 일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에 진출한 해외 반도체 업체들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인텔을 살리기 위해 미 정부가 인텔 대주주가 되면서 미국 테크 기업 물량을 인텔에 밀어주려는 것”이라며 “삼성전자나 TSMC 등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지분을 내놓지 않을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추가 투자 압박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 언론은 미 행정부가 인텔 지분을 인수하며 인텔 파운드리 사업을 지속한다는 뜻을 비췄다고 보도했다. 데이브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 정부는 우리가 파운드리를 분리해 누군가에게 매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 정부가 중국 공장에 미국 반도체 장비를 마음대로 반입할 수 없게 한 조치도 미 마이크론에 득이 된다는 분석이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생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서 전체 생산 D램의 40%와 낸드플래시의 20%를 생산한다. 미 규제로 중국 공장에 제때 장비가 반입되지 않으면 중국 공장에서 만드는 반도체 생산량이 줄게 되고, 이는 중국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마이크론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기회가 된다.
일부에선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 품목 관세율 발표를 미룬 채 말로만 압박하는 것 역시 결국 자국 테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율이 너무 과도하면 한국 반도체를 구입하는 자국 테크 기업이 결국 피해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발언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시장 상황을 판단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대신 지분을 받아가겠다는 것을 실제 추진하려면 미 의회에서 의결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가 과도하게 부과될 경우 한국 기업보다 한국 반도체를 대만 등 제3국에서 탑재해 완제품 형태로 미국으로 들여오는 엔비디아가 더 큰 타격을 본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이해득실을 자세히 따져 새로운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