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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벙커 트릴로지'. 아이엠컬처 제공


공연장 입구에는 좁은 나무 문이 놓여 있다. 나무를 덧대 만든 이 통로는 공연의 무대인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이 몸을 피하던 벙커 내부로 이어진다. 관객은 이 협소한 통로를 지나며 전쟁의 포화와 공포가 휘몰아치던 1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장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릴게임황금성 .
'모르가나', '아가멤논', '맥베스' 세 편의 연작으로 구성된 연극 '벙커 트릴로지'는 양식적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1차 세계대전의 벙커를 공통의 무대로 삼아, 각 편은 '아서 왕의 전설',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등 서로 다른 고전을 토대로 별도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하루 동안 세 편의 연극이 연속으 바다신2릴게임 로 공연되며, 같은 배우들이 작품마다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고전을 모티브로 현대적으로 각색된 이 연작은 원작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보편적 이야기를 전달한다.
'모르가나' 편은 학창 시절부터 아서, 랜슬롯, 가웨인이라는 원탁의 기사 별명으로 불리던 세 친구가 전쟁에 참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젊은 날의 치기와 학 바다이야기게임 교에서 주입된 영웅심에 취해 입대한 이들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소진해 간다. 가웨인은 아무도 듣지 못한 휘파람 소리를 들었고, 무인지대에서 아무도 본 적 없는 여자아이를 보았다고 말한다. 흥분한 랜슬롯은 가웨인의 상태를 의심한다. 아서 왕의 전설 속 모르가나는 일행을 파멸로 이끄는 악한 마녀이자, 동시에 치유의 힘을 지닌 인물이다. 연극은 전쟁의 릴게임손오공 공포와 참상을 견디기 위해 환상에 빠져드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애써 외면해 온 끔찍한 현실을 드러낸다.
'아가멤논'의 배경은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는 1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이다. 영국인 아내를 둔 독일군 저격수 알베르트는 전쟁이 발발하자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전한다. 그의 뛰어난 활약으로 독일군은 전세에서 우위를 모바일릴게임 점하지만, 아내의 오빠들이 영국군으로 참전하면서 파국의 조짐이 드리운다.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은 신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친 인물이다. 그 선택으로 신들의 노여움은 피하지만 결국 아내의 증오로 죽음을 맞게 된다. 작품은 군인으로서의 임무와 인간으로서의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알베르트의 내면,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복잡한 심리를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장면으로 재현한다.
'맥베스' 편은 삶과 죽음이 맞부딪히는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망을 폭로한다. 종전을 앞둔 상황에서 지도자의 광기와 집착으로 무의미한 죽음이 이어지자, 마크 대령과 릴리 간호사는 우발적으로 드레이크 장군을 암살한다. 병사들의 존경을 받던 마크 대령은 곧 드레이크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작품은 종전을 자축하는 축하 행사로 상연되는 연극 '맥베스'와 마크 대령의 실제 상황을 교차시키며, 욕망에 취해 광기와 파멸로 치닫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연극 '벙커 트릴로지'. 아이엠컬처 제공



배우 가까이서 마주하는 전쟁의 참혹함



연극 '벙커 트릴로지'. 아이엠컬처 제공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세 편 모두 휘파람, 군번줄, 촛불 등 공통의 오브제가 등장한다. 특히 휴식과 위안을 상징하는 베개는 각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죽음의 도구로 사용된다. 세 편을 모두 관람한다면 공통의 연결 고리를 따라가며 연작이 지닌 서사의 매력을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다. 한 편만 관람하더라도 '벙커 트릴로지'의 독특한 매력을 느끼는 데 부족함은 없다.
'벙커 트릴로지'의 관객은 전쟁의 생사 앞에서 긴장하고 고뇌하는 인물들을 극도로 밀접한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이는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손을 뻗지 않아도 닿을 듯한 거리에서 상처 입고 흔들리는 아서와 알베르트, 마크 대령을 만난다. 협소한 공간은 몰입감을 극대화해 관객을 극 속으로 깊이 끌어들이는 동시에, 지척을 오가는 배우들로 인해 극과 현실이 겹쳐지는 이중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관객은 극 중 인물 랜슬롯과 그를 연기하는 배우 최재웅을 동시에 인식하는 묘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제스로 컴튼이 만든 '벙커 트릴로지'는 2013년과 2014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주목을 받았고, 김태형 연출가와 지이선 작가가 참여한 국내 라이선스 공연도 두 차례 모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 역시 66회 차 전석이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었다.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어진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