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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경훈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지난 2월 22일 향년 81세로 별세한 지 반년, 마지막 소설집 ‘가깝고도 먼 곳’이 세상에 나왔습니다.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어가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부고로 책은 유작(遺作)이 되고 말았습니다.그의 문학은 언제나 제주의 역사와 삶을 증언해왔습니다.마지막 작품에서도 그 마음은 ‘제주’ 자체였습니다■ 살아 있는 유작이번 ‘가깝고도 먼 곳’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단편 6편과 중편 ‘강정 길 나그네’까지 7편이 수록됐습니다.노년의 성찰에서부터 4·3의 상흔, 그리고 농협카드대환대출 해군기지·제2공항 같은 오늘의 현안까지.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제주라는 운명’으로 수렴합니다.출판사 측은 “편집 도중 별세하셔서 유작이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은 문학인의 뚝심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유작이 된 이 한 권은, 작가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주’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만히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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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닫히지 않는 상흔‘실향’은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기억이 연좌제와 제2공항 갈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역사가 현재진행형임을 증언합니다.‘마을제’는 세화리 다랑쉬굴 사건을 배경으로, 애도와 망각, 용서와 갈등이 교차하는 공동체의 내면을 드러냅니다.중편 ‘강정 길 나그네’는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교회가 학자금대출 상환 먼저 가해자를 품는 장면을 통해, 화해란 말로 쉽게 봉합할 수 없는 현실을 묻습니다.작가는 “제2, 제3의 4·3은 언제든 도래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탐욕을 겨눈 시선‘악마는 숨어서 웃는다’는 2007년 나리 태풍 참사를 재현하며, 개발지상주의가 불러올 재앙을 날카롭게 묻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개발이 불러온 재앙”이라는 문장은 지 직업 금의 제주에도 겹쳐, 현재형 경고로 다가옵니다.섬은 작가에게 그저 ‘고향’이란 의미, 하나가 아니었습니다.청정 자연과 관광지라는 외부의 화려한 이미지 아래, 4·3의 상흔과 개발의 그늘이 층층이 퇴적된 땅.작가는 이 모순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4월 7일 제주문화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장 사퇴 예술재단에서 열린 소설집 ‘제주항’ 증보판 발간 기념 북토크 현장. (제주작가회의 제공)
■ 노년의 성찰과 지혜표제작 ‘가깝고도 먼 곳’은 봉사 현장에서 만난 장애 청년의 순수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비추고, ‘열쭝이 사설’은 이름조차 잃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서 인간애를 길어 올립니다.‘사교’에서는 죽음과 병마 앞에서 흔들리는 가족을 그리며, 결국 모든 인간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삶의 진실을 응시합니다.팔순의 작가가 마지막으로 던진 이 이야기들은 그렇게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삶은 덧없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지켜낼 것인가.’
북토크에서 발언하는 고(故) 오경훈 소설가. (제주작가회의 제공)
■ 제주를 기록한 문학의 항구1944년 세화리에서 태어나 교사와 기자로 살았던 작가는, 1987년 ‘현대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했습니다.‘유배지’, ‘침묵의 세월’, ‘제주항’으로 이어진 궤적은 모두 제주 현대사의 기억을 문학의 언어로 길어올린 기록이었습니다.“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신념은, 마지막 책 속에서도 숨 쉬며 또렷한 목소리를 남겼습니다.“지금도 새벽 뱃고동을 들으면 마음이 곧바로 항구로 달려간다”던 작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항구에 닿았지만, 남긴 문장들은 끝내 바람을 타고 섬을 감싸며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생전의 고(故) 오경훈 소설가. 그 마지막 목소리는 이제 책 속에 남아 있다. (제주작가회의 제공)
■ 마지막 울림‘가깝고도 먼 곳’은 한 권의 소설집이자, 작가가 남긴 최후의 증언입니다.4·3의 상처를 파고들어 역사와 현재를 직조하며, 개발의 탐욕을 향해 날을 세웠고, 노년의 시선과 온몸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끌어안았습니다.섬의 비애와 분노, 그럼에도 지켜내야 할 사랑까지, 지울 수 없는 문장으로 빼곡이 새겨 넣었습니다.그 말들은 유언(遺言)이자, 흘러흘러 스스로 생명을 이어가는 유언(流言)이 되었습니다.작가는 떠났지만, 그 문장은 여전히 마음의 풍경을 흔들고 기억을 헤집습니다.문학의 항구에 닻을 내린 그대에게.묻습니다.“언제쯤 그리움의 항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가깝고도 먼 곳’ (오경훈 지음·도서출판 각·340쪽·2만 원)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