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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사동 길거리 한복판에 철로 된 사람 조각상 하나가 섰다. ‘현존하는 최고의 조각 거장’이라고 불리는 영국 작가 앤터니 곰리(75)의 작품이다. 몇 걸음 더 가면 건물 진입로 쪽에 쭈그려 앉은 조각상이, 골목 안에는 바닥에 주저앉은 작품이 하나씩 나와 있다. 해외의 세계적인 미술관에 들어가야 겨우 볼 수 있는 거장의 작품이 왜 강남 길바닥에 흩어져 있는 걸까.
지금 한국에서 곰리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는 총 세 곳이다. 10월 18일까지 야외 설치 작품을 비롯한 신작을 선보이는 신사동 화이트큐브 전시와 11월 8일까지 한남동야마토
타데우스로팍에서 열리는 개인전 ‘불가분적 관계’, 강원 원주 뮤지엄산에서 11월 말까지 열리는 대규모 전시다. 세계적 거장의 전시가 국내에서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곰리를 만나 물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여러 전시를 선보이는 이유가 뭔지, 길에 놓인 조각 작품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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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RVE IV' 너머로 웅크린 사람 형상의 'COTCH XIII'가 보인다. 화이트큐브 제공
▷화이트큐브 전시장 밖에 조각을 놓은 이유가 뭔가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전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현대핸드폰증권
인은 미술과 일상은 동떨어진 것이고, 미술관 입장권을 사거나 책을 읽어야만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바꾸고 싶습니다. 삶과 예술은 함께해야 합니다.”
▷감이 잘 오지 않는데요.
“이탈리아 피렌체를 예로 들어 봅시다. 광장, 건물, 성당 안팎 등 어디에나 놓인 조각은 피렌체인에게 단순한 장식품이주식달인정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 넓은 세상 속 어디에 서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닻과 같은 존재였지요. 하지만 20세기 들어 예술은 상품처럼 변했고, 미술관 수장고나 부잣집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제 목표는 삶과 예술을 다시 연결해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장소가 어디인지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더 가까이 느끼도록 돕는 겁니다릴게임공략법
.”
▷강남이라는 장소와 작품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서울은 전쟁의 고난을 딛고 급격한 성장을 일궈낸 세계적 대도시입니다. 특히 강남의 활력과 깔끔함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미래 지향적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다만 강남은 효율적으로 계획된 도시 공간이고, 그래서 강북과 같은 혼란과 편안함은 없습니다. 예컨대 두 빌딩 사이에 설치한 작품 ‘리트리트:슬럼프’는 강남 특유의 효율적인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숨구멍 역할을 합니다.”
빌딩 사이에 자리한 '리트리트:슬럼프'와 곰리. 화이트큐브 제공
타데우스 로팍에 전시된 'HERE'. 타데우스 로팍 제공
▷인위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싫어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틀’(Frame)로 세상을 내다보고 규정합니다. 그 모양은 주로 사각형입니다. 창문, 스크린, 빌딩, 도시 같은 것들이죠. 타데우스로팍 전시에 나온 작품에는 이런 환경과 인간의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인간이 틀 밖에 있는 모든 것을 희생시킨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을 불태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지속 불가능합니다. 우리 삶과 도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도시 역시 지구와 불가분(不可分)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불가분적 관계라는 전시 제목에는 이렇듯 우리와 주변의 관계를 돌아보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다 한국에서 동시에 전시를 세 개나 열게 됐나요.
“특별한 의도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세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조각은 어떤 의미이고,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시대인데, 실물로 봐야 하는 조각이라는 예술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럴 때일수록 조각은 중요합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매체 범람은 ‘정보를 받아들여서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한 것’을 혼동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이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조각은 실제 경험을 선사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런 혼동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림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 달리 조각은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는 ‘경험’은 시각을 깨우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몸으로 하는 경험은 왜 중요합니까.
“몸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젊은 시절 저는 인도에서 비파사나 명상(불교의 명상법)을 하며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정신적 자유를 발견하려면 역설적으로 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몸이 우리 존재의 출발점이자 근원이라는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화이트큐브 전시작 ‘리트리트: 슬럼프’의 네모난 구멍은 우리 모두가 가진 내면의 어둠 속 무한한 에너지와 잠재력을 들여다보는 창문 역할을 합니다.”
리트리트:슬럼프. 화이트큐브 제공
리트리트:슬럼프의 사각형 구멍. 성수영 기자
▷하지만 현대인은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에, 수행보다는 안락함에 익숙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호모 파베르(도구를 쓰는 인간)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비롯해 인간이라는 종족은 만드는 행위를 더 복잡하게 잘 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그게 꼭 예술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에 침대를 정리하고, 우리가 나누는 음식을 만들고, 지금처럼 우리가 대화를 만들어서(make conversation) 이해의 다리를 놓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처럼 만든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얻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직접 뭔가를 만들고 경험하는 일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제게 명확한 해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예술 작품을 더 많이 만들어볼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부자 동네의 불빛을 보며?‘나는 왜 저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내 삶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모두 결정된 것 아닐까’하는 패배감에 사로잡혔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패배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됐습니다.”
타데우스 로팍 전시장에 선 곰리. 타데우스 로팍 제공
화이트큐브 갤러리 입구. 작품 앞에 있는 유리창은 갤러리 속으로 숨은 작품과 일상의 거리감을 상징한다. 화이트큐브 제공
▷그건 당신이 탁월한 예술가라 가능했던 것 아닌가요.
“모든 사람이 예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이들은 자기 삶을 조각해 나가는 예술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이 모여 세상을 만듭니다. 우리가 삶과 세상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헌신할수록, 역설적으로 각각의 개인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이 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현존하는 최고의 조각가라고 합니다.
“그런 과장된 표현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선물입니다. 저는 남은 삶을 바쳐 사람들이 자기 몸을 경험하고, 예술과 함께하며 이 세상과의 연결을 체감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도록 돕는 조각 작품을 제작할 것입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