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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뉴욕에서 발행되던 미주조선일보에서 일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페미니즘에 뜻을 두고 있던 나는 당시 뉴욕에 있는 한국 여성들이 만든 여성청우회(Korean-American Women for Action)라는 페미니스트단체에 합류했다. 나는 그 단체에서 뉴스레터를 만들어 여러 신문사에 보냈는데 미주조선일보에서 거기 실린 내 글을 보고 인터뷰 요청이 왔다.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나를 인터뷰한 그는 조선일보 본지에서 온 여성 기자로 미국 서부로 유학을 가야 한다며 기자 경험이 있는 나를 자기 후임으로 추천했다. 릴게임 무료충전게임
그렇게 일면식도 없던 그이 때문에 1984년부터 미주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여성학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
미국 페미니즘 현장 누빈 기자생활
매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뉴욕타임스와 유에스에이(USA)투데이를 읽고 사무실로 들어가 오전 중 필요한 기사를 써 넘기고, 오후에는 학교로 가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다행히 내가 여성학2011유망주식
학부과정을 공부한 헌터컬리지는 신문사 사무실에서 지하철로 서너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이어서 진학한 뉴욕시립대 대학원(CUNY Graduate Center)도 걸어다닐 만한 거리였다. 그렇게 나는 매일 뉴욕의 맨해튼을 오르내리고 헤집고 다니는 뉴요커가 되어 국가에 의해 강제로 중단된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고 또 필생의 업으로 삼게된 페미니즘도 릴게임다운로드
공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모두 뉴욕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여성학 학부과정을 공부한 뉴욕의 헌터컬리지는 뉴욕시립대 소속으로 여성학을 개척한 페미니스트 대학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뉴욕시립대 대학원 역시 ‘프롤레타리아의 하버드’로 불리며 노동계급의 학생들이 몰리는 뉴욕시 공립대학 중 하나이다. 등록금이 비싸지 않아 직장 생활을 하면서야마토
파트타임으로 공부를 이어가는 학생들이 많았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내 신변에 커다란 변화가 또 생기고 말았다. 내가 1990년 늦가을, 7년째 근무하고 있던 미주조선일보에서 노동조합 결성과 연루돼 해고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학업을 병행하게 해준 회사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현지 채용직원들의 근무한미반도체 주식
여건이 열악했기에 노동조합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고, 노조결성 움직임에 동참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결성 직원들과 함께 집단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다 마치고 논문만 남겨놓은 상태였고 10년 가까운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기왕에 해고당한 거, 논문을 쓰는 1년가량의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전부터 알고 있던 한국의 여성신문 이계경 사장에게 연락해 ‘미국 여성운동의 현장’ 시리즈 기사 연재를 제안했고 여성신문의 흔쾌한 허락으로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1990년 12월7일치 여성신문에 ‘미즈 매거진 광고 없는 본격 여성대중지로 복간’ 기사와 ‘복간 미즈의 새 편집인 로빈 모건, 좌익 무장운동에서 출발한 여성운동가’ 인터뷰 기사를 필두로 ‘미국 여성운동의 현장’ 시리즈 기사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미즈 기사에 이어서 미국 여성운동의 본산지 나우(NOW·전미여성기구), 가족계획연맹, 페미니스트 전문서점 ‘주디스의 방’, 여성유권자연맹, 급진 페미니스트 단체 레드스타킹, 페미니스트 정치인 벨라 압주그, ‘성의 정치학’의 저자 케이트 밀릿, 뉴욕시 여성지위위원회, 위민메이크무비즈(WMM·Women Make Movies), 전국 여성정치위원회, 글로벌 여성센터 디렉터 샬럿 번치, 익명의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 게릴라걸스 등을 취재해 기사를 썼다.
예술계에 만연한 성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던 익명의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인 ‘게릴라걸스’가 만든 포스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여성은 꼭 벗어야만 하는가’라는 문구로 여성 작가 작품 전시엔 극히 인색하면서, 여성 누드화 전시는 흔한 유명 미술관의 풍토를 비판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페미니즘을 학생으로 공부만 하다가 다양한 여성운동가들을 기자로서 직접 만나고 취재하는 일은 너무나 설레면서도 뜻깊은 일이었다. 미주조선일보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여성신문에 1년 가까이 연재되었던 이 시리즈 기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까지 남게 된 이 시리즈 기사를 생각하면 나는 글에도 운명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리즈 취재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페미니스트는 ‘성의 정치학’을 쓴 케이트 밀릿이다. 그는 컬럼비아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자 강사로 있으면서 1968년 학생 파업에 참가해 학교 쪽으로부터 해고당했는데, 그 울분을 쏟아부어 완성한 박사 논문이 ‘성의 정치학’이었다. 그는 또 양성애자임을 밝히는 인터뷰가 나간 뒤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당하는 고난을 겪기도 한다. 그가 ‘성의 정치학’에서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 쟝 쥬네 등 남성 작가들의 작품, 특히 섹스 장면의 분석을 통해 보여주는 페미니스트적 관점은 당시의 나에게는 얼음을 깨트리는 도끼와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많은 소문과 편견들로 인해 무시무시할 것만 같던 그의 실제 모습은 만나 보니 너무나도 소탈하고 친절해서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1990년 가을 뉴욕 맨해튼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성의 정치학’ 저자 케이트 밀릿(오른쪽)과 필자. 필자 제공
뉴욕 언론 노동운동을 함께하다
미주조선일보에서의 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해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는 1990년 당시 뉴욕 데일리뉴스의 노동전문 기자였던 후안 곤잘레스이다. 77살의 고령에도 지금도 뉴욕을 대표하는 진보 언론인으로 활약하는 그는 당시 미국 주류 언론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수민족 매체였던 미주조선일보의 불법해고 사태에 대해 기사를 쓴 유일한 미국 언론인이었다.
조합원들의 시위 모습을 보도한 그의 기사는 성명서를 읽는 장면으로 시작해 옷차림까지 묘사하며 뜻밖에도 나를 중심인물로 놓고 기사를 썼다. 시위 현장에 직접 와서 보고 기사를 쓴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보도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우리는 42번가에 위치한 데일리뉴스 사옥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데일리뉴스가 곧 파업에 들어간다는 뉴스와 함께 바로 우리 기사를 써준 그가 파업위원장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데일리뉴스 파업과 함께 ‘노동자들의 영웅’으로 부상한 그는 실상 미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저널리스트였다. 미국 학생운동사에서 상징적 위치인 1968년 컬럼비아대학 학생운동에서 5명의 운영위원회 멤버 중 하나였던 그는 운전기사들의 파업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을 기자들의 파업으로 전환해 데일리뉴스 전 사업장 파업으로 확대시키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한 사람이었다. 당시 동종업자의 파업 뉴스를 다른 뉴스와 함께 공정하게 보도하는 미국의 언론을 보며 무조건 침묵만 지키던 한국의 언론과 대조적인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인으로 유일하게 1990년 가을 미주조선일보의 불법해고 사태를 보도한 뉴욕 데일리뉴스의 노동전문 기자 후안 곤잘레스(오른쪽)와 필자. 필자 제공
42번가 데일리뉴스 사옥 앞에서는 거의 매일 수천명 규모의 파업 지지 시위가 열렸다. 그 현장에는 제시 잭슨 목사,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 존 오코너 가톨릭 추기경, 루 메신저 맨해튼 자치구청장 등 뉴욕 정치·사회 거물들이 참석해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감사인사를 위해 방문한 우리 일행을 맞은 곤잘레스 기자는 나에게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해 파업 지지 시위 찬조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당황해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거절했다. 그렇지만 그는 비백인 아시아 여성으로서 노동계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를 설득했다. 이후 연설 때 보고 읽기 위한 원고를 써 가기는 했지만 수천명의 시위대 앞에서 파업 지지 연설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오랜 생각 끝에 덧붙였던 “뉴스는 일시적이지만, 노동자는 영원하다(News are transient, but workers are forever!)”라는 마지막 문장과 그에 대한 시위대의 환호성은 지금도 생생하다.
유숙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