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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29 10:33
[교정중] [영화리뷰]장사리: 잊혀진 영웅들(Battle of Jangsari) (스포 있음)
 글쓴이 :
조회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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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장사리:잊혀진영웅들(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배급: 위너 브러더스 코리아(주)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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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쟁,

그 한가운데 군복이 아닌

교복을 입고 싸웠던 772명의 학도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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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역사 장사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D-1

‘이명준’ 대위가 이끄는 유격대와 전투 경험이 없는 학도병들을 태운 문산호는

인천상륙작전의 양동 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위해 장사리로 향한다.

평균 나이 17세,

훈련 기간 단 2주에 불과했던 772명 학도병들이

악천후 속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맞으며 상륙을 시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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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줄거리


영화 <친구>, <극비수사>, <암수살인>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과 드라마 <아이리스2>, <아테나: 전쟁의 여신>, 그리고 영화 <포화속으로>의

김태훈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은 '잘 모르고 있었던 한국 전쟁 당시 학도병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며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힌 바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위치한 장사리.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선 알았지만, 부끄럽게도 장사상륙작전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러므로 이번 영화를 통해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고자 한다.

1950년 8월 3일 UN 군은 인민군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다리를 격파한다.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극단으로 대치하며 UN 군 사령부는 인천, 주문진, 군산에서의 상륙작전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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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맥아더 장군은 크로마이트 작전(인천 상륙 작전)을 전달하였고, 미국 국방당국에서는 극심한 조수간만의 차와 주변에 많은 섬들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크다고 야기했다.

맥아더 장군 또한 5000:1의 도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점을 역 이용하면

적을 기습할 수 있을 것이라 설득하였고, 8월 28일 최종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이 승인되었다.

그렇게 UN 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 전선 반격작전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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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교란과 보급로 차단이 목적이었던 낙동강 전선에

가장 크게 기여한 장사상륙작전.

결과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9월 14일에 일어났다는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날인 9월 15일에 수행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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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에서 문산호가 출발한 건 9월 14일이지만,

해군 항해일지에는 1950년 9월 15일 06시로 장사동 해안 부근에 도착했다는 설명과 함께 날짜가 정확히 기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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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는 인천 상륙작전이 들킬까마 UN 군에서

작전 활동 중지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같은 날 교란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영화는 772명의 학도병을 태운 문산호

안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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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부산 출발 13시간 만에 도착한 영덕군 장사리.

하지만 거센 파도와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배는 좌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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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총탄이 날아오는 와중에 고무보트를 타고 넘어간 다음 소나무에 밧줄을 묶어 대원들의 상륙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물에 빠지고, 전사하는 동료들이 많았지만 힘들게 상륙을 감행한다.

실제 학도병 유격대가 탄생하고

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참으로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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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피난민들 사이에 있던 북한군 게릴라.

대구 시내에 박격포탄이 떨어지며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그로 인해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자원했던 학도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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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대부분 대구 경북지역이나 그곳으로 내려온 피난민들로 20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17세, 18세였으며 간혹은 중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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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일은 미 8군 특공대 임무였는데,

한국군에게 북한군의 복장을 입고, 그들의 후방을 침투해서 교란하자는 의미에서 한국군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장사상륙작전 개시 10시간 만에 북한군 5사단을 격파하고, 인민군 대규모 부대를 상대하였던 772명의 학도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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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9월 19일 오전 6시경

조치원호가 왔지만 인민군의 폭격에 조치원호는 탈출을 서둘렀고, 30여 명의 학도병은 장사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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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로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사망한 학도병을 제외하면 모두 행방불명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상륙작전에 동원되었던 문산호 LST-120은 1991년 3월쯤에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6일간의 비극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이룰 승리와

제군들이 바친 피 끓는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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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영원토록 기억해 줄 것이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미군들이

지금 한국에 있는데,

왜 어린 학도병들을 보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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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들은

자신이 총알받이라는 걸 모르죠?


 
   

아이디 : woomter    패스워드 : 1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