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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1960∼2009)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일영 교수님은 2009년 11월 23일 영면했습니다. 향년 만 49세. 학자로서 훌륭했고 인간적으로도 따듯했던 분이었죠. 넘치는 재기(才氣), 유려한 글쓰기와 언변까지 겸했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그런데 술, 담배도 않는 분이 간암으로 요절했을 때, 하도 그의 재능이 안타까워 “딱 10년만 더 살고 가지…” 하고 원망을 했는데, 벌써 그 10년이 지나갔군요. 세월이 유수(流水) 같습니다. 사후 선생님의 메모에서 향후 10년간 연구 계획서가 발견됐다는데 그것도 못 마치고 왜 그리도 빨리 가셨는지요.
선생님과 저는 학연·혈연·지연 등 어느 부분에서도 겹치는 것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생 선배이자 선배 학자를 만난 것은 저에게 행운이었습니다. 진지함과 열정, 냉철한 논리와 뜨거운 가슴을 적절한 비율로 가진, 그래서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습니다. 많은 학업과 일을 하시면서도 언제나 평상심을 잃지 않은 것도 경이로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현대한국정치사, 한국외교사, 동아시아 정치경제 발전 모델, 국제관계론의 젊은 석학이었고, 법(法)정치학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은 업적을 내고 대가로서의 자리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계셨고, 한국정치학계와 한국현대사학계를 이끌 차세대 리더였습니다. 해서 김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부재(不在)는 실로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큰 손실이었고, 한국 사회 자체의 불운이었습니다.
우리 세대 대다수 학자가 그렇듯이 학창 시절 좌파의 길을 모색하다가, 학문이 무르익으면서 이성적인 우파의 길을 가며 한국 사회의 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파당적인 이데올로그가 아닌 균형 잡힌 이론가이자 역사가였습니다. 그 결과는 이론과 사실(史實)의 조화 속에서 탄생하는 독창적인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닌 학구적 분석을 통해 이승만·박정희 시기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고, 특히 이승만의 농지개혁에 대한 분석은 그 후 학설사의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연구와 저술을 통해 한국현대정치사를 편향되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했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해 주었습니다. 사회활동도 적극적이었고 사회적 발언도 활발했기에 참여하는 지식인의 풍모도 갖고 계셨지요. 선생님이 추구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품격 있는 사회였습니다.
선생님 사후 학문적 지인들이 ‘김일영 유고집 간행위원회’를 결성해서 유고를 가다듬고 미완성 작업을 완결했습니다. 여러 권이 나왔지만, 그중 백미는 그의 주옥같은 글들을 모은 ‘한국 현대정치사론’(김도종 편, 논형, 2011)입니다. 향후 이 분야를 공부할 때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저서가 됐습니다. 또한, 공역하기로 했다가 느닷없는 변고로 속절없이 무산됐던, 그리고 선생님이 한국에 꼭 번역돼서 읽혀야 할 대표적 저서라 평가했던 존 개디스의 ‘미국의 봉쇄정책’(Strategies of Containment, 홍지수·강규형 역, 비봉출판사)도 얼마 전 출간됐습니다. 선생님이 병상에서 이 책의 번역을 부탁한 지 꼭 10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쁩니다. 선생님도 천상에서 기뻐하시겠죠?

선생님이 살아계신다면 전문 분야뿐 아니라 한국 지식사회의 지형은 현재와는 많이 (물론 긍정적인 면으로) 달랐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치가 새삼 절실히 느껴집니다. 요즘도 가끔 듣는 얘기가 “김일영이 살아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탄식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을 보기 싫어서 먼저 가셨는지요. 야속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강규형(명지대 교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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