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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7 08:24
[미션&피플] 남수단 난민 위해 우간다에서 사역하는 정붕진 목사·손미애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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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피해 온 남수단 사람들 살릴 떡과 복음 전합니다”정붕진 목사와 손미애 사모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황톳빛 광야 위 나무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볕에도 푸른 잎을 틔웠다. 그리고 그곳엔 하얀색 방수 원단으로 덮인 텐트 수백 동이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평화로운 이 풍경을 정붕진(59) 목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 같았습니다.”

정 목사가 말한 에스겔 골짜기는 내전을 피해 온 남수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간다 북쪽 굴루의 난민촌이다. 남수단은 2011년 독립한 뒤 격렬한 내전을 겪었다. 피해를 입은 건 국민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나라를 떠나야 했다.

정 목사는 매일 아침 손미애(56) 사모와 함께 왕복 8시간 거리인 굴루로 향한다. 강을 건너려면 오전 7시30분 첫 배를 타야 해서 새벽 4시엔 출발한다.

정 목사는 2016년부터 이곳 난민들을 위해 사역했다. 3년간의 사역은 험난했다. 당초 정 목사가 마음에 담은 곳은 우간다가 아닌 남수단이었다. 2014년 온누리교회 두란노 해외선교회(TIM)에서 장기선교사 훈련을 받던 중 남수단 이야기를 들었다.

“늦은 나이에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청년이 되면서 교회와 멀어졌다가 아내를 만나 교회로 돌아왔고 40대 후반에야 서울장신대에 들어갔어요. 55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 사역을 결심했을 때 자식들은 이미 장성했었죠. 오지 사역도 겁나지 않았어요.”

아프리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서 그해 6월 아내와 함께 2개월간 한국인 선교사의 집에 머물며 남수단 탐험에 나섰다. 50년 전 한국처럼 낙후된 남수단에 정 목사 부부는 따뜻함을 느꼈다. 손 사모는 “시골 정류소 같은 공항, 냇가에서 손빨래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정겹고 좋았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부부는 TIM에서 장기선교를 위한 훈련을 받고 5년 장기선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교회의 권유로 농업 훈련도 9개월간 받았다. 2016년 3월 31일 남수단 파게리에 도착해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고난은 바로 닥쳐왔다. 파송된 지 두 달도 안 돼 정 목사가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다. 치료를 위해 우간다와 가까운 도시 마뮬레로 옮겼다. 그해 7월 남수단에 2차 내전이 터졌다. 미국 선교사는 자국 헬기로, 우간다 사람들은 트럭으로 탈출했다.

손 사모는 눈시울을 붉히며 “남수단 사람들이 우리에게 ‘너희도 떠날 거냐’고 묻는데 우린 안 간다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버티던 부부도 외교부의 철수 명령에 따라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우간다에서 난민촌을 만났다. 마실 물도, 먹을 음식도 부족했다. 정 목사의 가슴을 울린 건 난민들의 얼굴이었다. 죽음을 목격하고 온 사람들의 얼굴엔 생기가 없었다.

“사역은 나라와 지역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난민은 ‘이 시대 강도 만난 자’였고 이들을 위해 사역하기로 했죠.”

TIM 소속 NGO 베터월드(Better World)가 정 목사의 사역을 후원했다. 난민촌에 정수기부터 설치했다. 농업사역도 시작했지만, 시행착오를 겪었다. 난민들의 자립을 위해 100만원을 주고 땅을 사 남수단 사람 12명과 가축을 키우고 작물을 심었다.

“그들의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들은 오늘 1000원이 생기고 내일 1만원이 생기면 오늘 생길 1000원을 생각했어요. 가축이나 농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당장 배가 고프니 쥐를 잡아먹으려고 농장에 불을 놓았어요.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지요.”

우간다 북쪽 굴루에 있는 남수단 난민촌 모습. 정붕진 목사 제공
그러던 중 난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졌다. “예멘, 시리아 등에서 난민이 대량 발생했고 세계적 이슈가 됐습니다. 교회와 TIM도 난민사역에 본격적으로 나섰지요.”

베터월드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 지부를 설립했다. 난민촌에서도 9700여명이 모여 사는 부두리라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보살피기로 했다. 텐트만 서 있던 이곳에 지난해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급식과 급수를 책임졌다. 난민들이 자립하도록 재봉틀센터를 만들었고 올해 안에 학교 정수시설을 전역에 보급할 계획이다. 내년엔 중·고등학교도 세울 예정이다.

정붕진 목사가 지난해 NGO의 도움을 받아 부두리 난민촌에 세운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급식을 먹기 위해 운동장에 줄을 서 있다. 정붕진 목사 제공
정 목사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도 나섰다. 난민촌에서 만난 청년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있는 신학대학원에 보냈다. 정 목사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저희는 떡과 복음을 함께 주기 위해 왔습니다. 실패와 좌절도 겪었지만 그걸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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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처우 개선 위해 지난달 1일 시행강사법 시행으로 신학대 강사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한 대학의 빈 강의실 모습. 국민일보DB

지난달 1일 시행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으로 신학대 강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강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신규 채용의 벽도 높아졌다. 경력을 쌓을 기회마저 사라진 젊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교수의 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16일 주요 신학대 등에 따르면 강사와 학교 모두 강사법을 반기지 않고 있다. 일반 종합대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신학대들은 강사법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충족하기엔 부담이 크다.

강사법에 의하면 강사 채용 시 대학 측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기 위해 정량평가를 해야 한다. 정량평가는 객관적으로 수량화할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강사 경력과 논문 편수 등이 당락을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 갓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 학자들은 정량평가를 통과할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신학대 A교무처장은 “박사학위 논문의 수준과 미래 가능성을 보고 강사를 뽑던 시대는 끝났다”면서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학위를 막 마친 이들도 강사로 임용되는 게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진학자들이 대학에서 경력을 쌓을 기회가 없다 보니 악순환만 반복될 것”이라면서 “결국 강사 사회도 빈익빈 부익부가 만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사법 시행 전 대학들이 강사 수를 대폭 줄인 것도 문제다. 강사 채용을 위한 재정 부담을 피하고자 대학들은 수년 전부터 강사 정원을 줄여왔다. 지난 5월 대학교육연구소가 4년제 사립대 152개교의 ‘2011~2018년 전체 교원 대비 전임교원’을 분석한 결과 대학 강사 수는 2011년 6만226명에서 2018년 3만7829명으로 2만2397명 줄었다. 광주의 한 신학대의 경우 이 기간 무려 89.1%의 강사를 정리했다. 10명 중 9명의 강사가 대학을 떠난 것이다.

빈자리는 기타교원과 초빙교원으로 메웠다. 기타교원과 초빙교원은 4대 보험을 제공하는 다른 직장에 다니는 교수 요원을 말한다. 대학은 강사를 채용할 때 부담해야 할 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학대들은 교회 담임목사를 임용 1순위로 꼽는다.

수도권 한 신학대 B교무처장은 “강사 채용 절차가 복잡해졌고 4대 보험과 방학 중 인건비 지급 등으로 재정 부담까지 커져 기타교원 등을 선호한다”면서 “소규모 대학이다 보니 강사법에 따라 강사를 위해 다수의 강의를 개설해도 수강생이 없어 폐강이 속출하는 등 제도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크다. 편법이 느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사학위 소지자들 사이에선 ‘보따리장수가 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보따리장수’는 여러 대학에 출강해야 하는 시간강사를 풍자하는 표현이다. 서울 감리교신학대 강사인 C씨는 “강사가 돼야 보따리장수라도 할 수 있는데 이 길이 좁아지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주변에 박사과정에 입학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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