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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새 지저귐 따라하는 흉내지빠귀 / 자기 것처럼 더 아름답게 탈바꿈시켜
“흉내지빠귀는 박새, 쇠박새, 숲지빠귀의 감미롭고 청아한 노래를 마구 훔쳐오는 뻔뻔한 좀도둑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포크 음악을 멋진 교향곡으로 만드는 쇼스타코비치처럼 그 노래들을 멋들어진 음악으로 탈바꿈시킨다.” (제니퍼 애커먼의 ‘새들의 천재성’ 195쪽)
“나는 미메시스형 인간이다.” 내가 간혹 하는 말인데 누군가를 따라 하길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모방본능이야 엄연히 인간 생존의 전략이긴 하지만 나는 좀 심하다고 생각해 왔다.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내가 친구 눈 깜빡이는 걸 따라 하다가 덜컥 버릇이 옮겨붙어 아직도 고생하고 있으며, 공부 잘하는 친구의 교과서를 빌려서 그 아이의 필기 흔적을 따라가면 훨씬 공부가 잘됐던 기억이 있다. 커서도 마찬가지다. 시를 쓰던 대학 시절엔 김용택 시를 읽으면 김용택 시가 나왔고, 기형도 시를 읽으면 기형도 시가 나왔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읽고 감동받은 시를 흉내 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라도 무안이 고향인 선배를 자주 만나던 때에 경상도 출신인 내가 그의 입버릇 중의 하나인 ‘염병허네’와 ‘우째야쓰까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가만히 보니 나는 말투뿐만이 아니라 내가 자주 접하는 이들의 사소한 습관 중 나에게 없었던 것을 은연중에 학습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메시스형 인간’이라는 말은 그 시점에 내뱉은 것이다.
사실 이런 습성은 그리 자랑할 만한 게 아니다.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해 왔다. 독창적이지 못하고 자기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누군가와 대화할 때 주로 듣는 편인 나는 말 좀 하라는 지청구를 꽤 들어왔다. 왜 그리 말이 없냐고 말이다. 그런데 늘 우물쭈물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래서일까. 제법 말을 하게 된 중년의 이 시점에도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타인의 말이 멈춘 지점을 타고 들어가 추임새를 넣고 그 추임새가 열어주는 공간에서 짧은 몇 마디로 해당 주제를 마무리하는 식일 때가 많다.
그러니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부러울 뿐이다. 그런데 ‘새들의 천재성’이란 책을 읽고 꽤 많은 위안을 받았다. 뇌과학과 동물행동학 분야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들의 행동에 깃든 천재성을 방대하고 재미있게 다룬 책인데 중간쯤에 ‘흉내지빠귀’라는 새가 나온다. 조류학자들은 이 새를 ‘좀도둑’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다른 새의 지저귐을 훔쳐서 자기 것인 양 지저귀기 때문이다. 그 지저귐의 종류가 한둘이 아니라 수십 가지가 넘고, 자신만의 편집을 통해 더욱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저자가 델라웨어 해변에서 만난 흉내지빠귀는 마침 캐롤라이나굴뚝새에게서 ‘훔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배우 베트 미들러가 앤드루스 시스터스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흉내지빠귀의 대목을 읽다가 나의 오랜 습관을 떠올린 건 아직 스스로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일 것이다. 흉내를 내더라도 나답게 내고, 때로는 제법 아름다운 것도 뽑아내 보자고 말이다. “새들은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한다”는 저자의 말이 유난히 가슴에 깊이 박혀 왔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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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