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해 비전케어 이사장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책에만 파묻혀 지내던 내게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주신 분들은 초등학교 은사님들이었다. 4학년 담임선생님과 6학년 담임선생님 두 분은 모두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보이스카우트 지도 교사셨다. 선생님들은 유독 부끄러움 많던 나를 넉넉한 사랑으로 품어주셨다. 새 학기 환경미화를 할 때면 항상 나를 불러 함께 교실을 꾸미셨고, 숙직하실 때는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시며 따뜻한 저녁을 차려주시곤 했다.
특히 선생님들
릴게임방법 은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 내내 내게 봉사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기셨다. 그 어린 나이에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혼자 학교 화단에 물을 주고 청소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때 그 고요한 아침의 시간은 내 평생의 자산이 됐다. 철 따라 피고 지는 식물들, 겨우내 죽은 것처럼 보이던 마른 가지에서 봄빛을 따라 푸른 새잎이 돋아나는 경
릴게임손오공 이로운 생명력을 지켜보며 나는 천지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어렴풋이 배우고 있었다. 3년간 묵묵히 화단을 가꾸던 그 작은 순종이 훗날 척박한 아프리카 환자들을 돌보는 섬김의 근육을 키워준 것 같다.
신앙의 뿌리 역시 이 무렵 깊게 내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친구를 따라 나가게 된 신촌교회는 내게 영적인 고향이
모바일바다이야기 됐다. 주일마다 정성껏 우리를 가르쳐주시던 주일학교 선생님들 덕분에 힘든 학과 공부와 집안 사정 속에서도 믿음의 꿈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내 평생 잊지 못하는 순간은 중등부 여름 수련회 마지막 날 밤이었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눈을 감고 결단의 기도를 드리는 시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시면 누구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라는 인도자의
릴게임뜻 말에 침묵이 흘렀다.
평소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던 내가 침묵을 깼다. 하나님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내 삶에 늘 함께해 달라고 생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간구했다. 내 안의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입술을 열어주신 순간이었다.
그 무렵 친구 어머니셨던 한 권사님의 손에 이끌려 중학생 신분으로 어른들만 모이는 부흥회에 참
사이다릴게임 석하곤 했다. 국어 교사 출신이셨던 권사님은 내게 설교 말씀을 글로 정리해 볼 것을 권하셨다. 그때부터 시작된 설교 노트 기록은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후 나는 교회 고등부와 대학부에서 주보와 소식지를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은혜로운 간증과 자료를 모으고 글씨를 잘 쓰는 친구들을 섭외해 마스터 인쇄로 찍어낸 갱지 소식지를 나눌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공동체를 한마음으로 묶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청록파 시인이셨던 외할아버지 박두진과 국어 교사이셨던 아버지의 피가 내 안에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꽃피우고 있음을 느꼈다.
아침마다 화단을 가꾸던 꼬마 봉사부장, 그리고 밤을 새워 교회 소식지를 만들던 문학 소년. 하나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당신의 도구로 빚어가고 계셨다. 훗날 비전케어를 설립하고 소식지 ‘꿈꾸는 사람들’을 창간해 세계에 나눔의 비전을 전하게 될 줄, 잉크 냄새 가득했던 그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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