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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7-2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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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2020년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50차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에서 양자회담을 갖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은 미국이 자신들에게만큼은 예외일 거라 믿었다. 민주주의를 함께 차트신공
설계하고, 시장 질서를 공유해온 문명의 동맹이라는 기억은, 미국이 외교적 상호성을 계산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순간조차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14일, 브뤼셀에 모인 유럽연합(EU) 통상장관들은 그 믿음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미국은 예고 없이 선언했고, 유예 없이 밀어붙였다. 대서양 특권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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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EU가 제안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7월 초 EU 전체에 30%의 일괄 관세를 다시 통보했다. 유럽은 협상을 통해 관세 수위를 낮출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미국은 단 한 차례도 물러서지 않았다. 더 이상 설득은 없었다. 이제 미국은 다만 선고(宣告)할 뿐이다.한솔PNS 주식
철강, 자동차, 항공 부품 등 전략 산업이 일괄 타깃이 되었고, 항의는 곧바로 '보복'이라는 역풍을 불러왔다. 규범이나 제도를 근거로 따져 묻는 절차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위협과 통보, 그리고 상대 없는 언어였다. 말이 오가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의 명령이었다.
'자유주의적 리바이어던'의 퇴출
환율하락수혜주
이제 더 이상 단순한 통상 분쟁이 아니다. '관세'라는 외형 뒤에는 더 깊은 전략이 숨겨져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우방을 설득하거나 동맹을 조율하려 하지 않는다. 자국의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모든 관계를 비용과 수익으로 환산한다. 문제는, 유럽이 여전히 '관계의 기억'에 머무는 사이, 미국은 '거래의 법칙'으로 질서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황금성게임설명
이 불일치는 지금 세계 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균열을 드러낸다.
국제정치학자 존 아이켄베리는 그의 책 <리버럴 리바이어던(Liberal Leviathan)>에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힘으로 지배하는 제국이 아니라, 규범과 제도를 앞세운 리더십.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제도화된 협력으로 작동하는 세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의 언어를 자유주의적 이상으로 번역함으로써 동맹을 설득했고, 질서를 정당화했다.
그는 이 체계를 '자유주의적 리바이어던'이라 불렀다. 원래 리바이어던은 홉스가 그린 것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해 등장한 절대 권력, 곧 폭력의 규범자였다. 하지만 미국이 자칭한 리바이어던은 그것과 달랐다. 규범을 가장한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억제하는 규범의 체계였다. 적어도 미국은 스스로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고,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행동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리바이어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퇴색했고,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질서의 설계자도, 규범의 수호자도 아니다. 국제제도를 설계하거나, 동맹과 협의하거나, 규범을 선도하던 과거의 역할은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일방의 선포, 조건 없는 요구, 그리고 협상의 언어 대신 거래의 논리다. 미국은 지금, 자신이 설계했던 자유주의적 리바이어던을 스스로 퇴출시키고 있다.
20세기의 미국은 동맹을 "보호의 네트워크"로 간주했다. 일정한 제도적 틀과 규범 아래, 미국의 안보 제공은 일종의 국제적 공공재처럼 작동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국제통화기구(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으로 대표되는 제도들은 단순한 패권이 아니라 규칙에 기반한 협력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미국은 세계의 절대 주권자가 아니라, 규범의 중재자, 세계질서의 경찰로 자임했다.
'자유주의적 리바이어던'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미국은 자신이 가진 힘을 제도 속에 포장하고, 동맹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함으로써, 폭력 없이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세계를 구상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완전한 평등과 정의로 작동한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말이 존재했고, 협상이 가능했으며, 제도의 언어가 통용되었다.
미국은 이제 규범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규범을 무기화하거나 불편한 규범은 제거한다. 공익적 목적의 CBAM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규정한 것은 단지 통상 분쟁이 아니라, 규범적 전복을 의미한다. 자신은 보조금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타인의 규범은 '위선'이라 몰아붙이는 이중잣대는, 더 이상 숨겨지지도 않는다. 미국은 규범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규범을 선별하는 권력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WTO나 파리협정 같은 국제제도에 대한 불신, 혹은 탈퇴 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규범을 기반으로 구성된 국제질서는, 더 이상 미국에게 필수의 조건이 아니다. 규범은 선택 사항이 되었고, 제도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버릴 수 있는 카드가 되었다.
'베헤모스'로 변해버린 미국
▲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이오와주 데모인 박람회장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집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오늘의 미국은 무엇인가. 규범을 설계하던 국가도, 제도를 조율하던 패권도 아니다. 이제 미국은 자신이 만든 세계를 관리하지 않는 괴물, 심지어 그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괴물은 결국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갑각류는 성장을 위해 껍질을 벗는다. 그러나 자양분이 부족해 성장이 더뎌질 때, 가재는 자신의 보호막인 껍질을 안쪽에서부터 녹여 먹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지만, 그것이 곧 자신을 무장해제하는 행위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단기적 자양분을 얻기 위해 자신을 두르고 있던 보호막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저자 홉스에게는 <베헤모스>라는 덜 알려진 또 하나의 책이 있다. <리바이어던>이 무력으로 다스려지는 질서를 이야기한다면, 사후 발간된 <베헤모스>는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는 광기의 세계를 묘사한다. 전쟁과 무법 속에서 이성이 무력해지는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반(反) 질서 보고서다.
20세기의 미국이 자유주의적 리바이어던이 되고자 했다면, 21세기의 미국은 베헤모스로 변모하고 있는 걸까. 규범도 사라졌고, 제도를 통해 질서를 조율하던 리더십도 자취를 감췄다. 남은 것은 방향 없이 움직이는, 보호막 없는 괴물의 육중한 몸통뿐이다. 이 베헤모스는 적을 가리지 않고, 목적도 없이 돌진한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설계자가 아니라, 과거 자신이 만든 질서를 해체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국가가 중심을 설계하던 시대가 아니다. 미국의 해체적 리더십에 묻혀가는 것은, 그 체계의 붕괴와 함께 공멸하는 길에 다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추종이 아니라 자율이고, 동조가 아니라 저항이다. 각자의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고, 스스로의 규범을 제안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새로운 질서를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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